이번에도 설을 쇠러 딸애는 설 전날, 제 아빠에게 갔다.
아이가 없으면 단박 적적해질게 걱정되어,
"아빠한테..... 갈거냐?" 슬쩍 물었더니
"어우~ 그럼!" 하며 단박에 대답한다. 순간 슬며시 마음이 언?아
졌다. 딸애가 제 아빠를 만나는게 언?은게 아니라 딸애 없이 혼자
있을 시간이 막막해졌다. 한두 해도 아닌데.
설 전날 오후,
딸애와 함께 간단히 시장을 보았다.
잡채를 좋아하는 딸애를 위해 잡채거리를 비롯한, 각종 전, 적, 떡국
거리와 과일을 샀다. 재료를 준비하고 아이에게 전을 부치게 했다.
가스불을 어찌 조정하는지,
기름은 어느 정도 부어야 하는지,
어느 정도 노릇하게 구워야 하는지......
여느 아이들처럼 딸애는 음식 만드는 것을 즐겨했다.
온집안에 기름 냄새가 가득하기 시작하자 비로소 명절 분위기가 났다.
서둘러 만든 잡채까지 먹고서야 아이는 청량리의 제 아빠 큰집으로
떠났다. 아이를 기다리는 애아빠의 전화벨 소리는 계속 울렸다.
딸애가 집을 떠나자 후다닥~ 음식하던 손길에 힘이 쭈욱~ 빠졌다.
몇 가지 되지도 않는 설거지를 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냥 방바닥에
퍼질러 앉아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었다. 해마다 설이나 추석 때마다
제 아빠 집에 보냈는데도 딸애가 없는 집안은 어찌도 이리 황망한지.
내일 아이가 돌아올 때까지의 깔깔한 시간들을 어찌 지내야 할 지.
아이가 더 어렸을 때에는 이렇게까지 마음이 허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 아이가 커가면서 많은 것을 함께 하니 아이 없는 시간은
여느 시간과 똑같지 않다. 바쁜 와중에 이리 한가하게 짬이 난다면
도리어 더 유용하게 썼을 텐데. 허둥허둥대며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결국 딸애가 부친 굴전을 안주로 카프리 2병을 먹고서야 잠들었다.
읽던 책을 옆으로 밀쳐두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엄마! 나 없으니 심심하지?"
아침에 걸려온 딸애의 목소리는 높았다.
"그래. 심심해 죽겠다. 얼렁 와!"
오후에 돌아온 딸애는 세뱃돈 두둑이 받은 얘기며, 제 아빠 새로 산
차 얘기며, 개구쟁이 남자 사촌동생과 이복동생 등등의 얘기를 했다.
조금 크면서부터는 제 사촌들과의 어울림이 좋은가 보았다.
난 전에 없이 애아빠 흉을 슬쩍슬쩍 보았다. 이제는 아이가 제 엄마
말도, 제 아빠 말도 전적으로 듣는 나이도 아니거니와, 나름대로 사고
의 균형을 잡아가고 있는 것을 알기에 때론 솔직하게 제 아빠의 허물
도 들추어낸다.
"엄마~~, 아빠가 얼마 전에 새로 차 샀거든. 그러면서 엄마도 맨날 수리
하는 돈으로 차라리 새차 사서 할부금 내래요."
"참나, 네 학원비도 안 되는 양육비 부치면서!! 누가 새 차 살 줄 모른
다니? 원 참."
"할머니가 엄마 혼자 대학 다 마쳤다고 참 대단하대요."
"흐응! 그게 모 대단하니. 별게 다 대단하네.
널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혼자서 잘 키운 게 대단하다면 대단한 거지~"
"너랑 아빠랑 내 얘기하면 그 아줌마가 눈치 안주냐?"
"엉~ 안 좋은 눈치주지만, 그런거 신경 쓸 필요 없잖아요?"
어쨌거나 딸애가 돌아오니 집안도 내 마음도 꽉 찬 느낌이 든다.
오후에는 미루어 두었던 해리포터 영화를 봤다. 난 만화 같은 내용에
허리가 비비 꼬였는데, 아이는 나름대로 평도 하며 너무 재밌어 했다.
역시 사람이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은, 함께 가는 길동무다.
현재 나에게 가장 중요한 친구는 딸애다. 멀지 않은 장래에 딸애도
친구가 더 중요한 시기가 오겠지. 그 때를 생각하면, 주변의 친구 관계를
두텁게 하여 그 때에도 마음을 함께 나눌 좋은 인연의 친구를 늘 곁에 둘 일이다.
강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