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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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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95) * 뜻밖의 방문 *


BY 쟈스민 2002-02-07

어느날 보험회사에서 날아든 한통의 우편물에 황당함을 감출수 없어서
나는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어 조목조목 따져 물었다.

얼마전 연말에 소득공제용으로 쓸까 하고, 개인연금보험에 대하여
사촌동서가 보험설계사를 한다고 하니 문의한 적이 있었는데,
나의 자필서명도 없이 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되어 있는 서류가 날라온 것이다.

서로 아는 처지에 손위사촌동서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기도 난감하고,
그래서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어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고,
보험 가입이 어떻게 본인의사도 없이 될 수가 있는지 너무 의아하고, 황당하다는 의사표시를 해 주었다.

1회분 보험료를 이미 납부한 상태로 처리되어 있었으니,
그 설계사의 입장을 생각하여 그냥 보험료를 계속 납부하여야 할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되었다.
모질게 거절을 못하는 경우라면 그런 경우 10년간 꼼짝없이 보험료를 납입하여야 하는 상황인 듯 했다.

나중에 직접 방문하여 그 우편물을 가지고 가야 한다고...
갑자기 전화를 하더니 사촌동서는 직접 방문을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전날 핸드백 정리를 하다 그 서류를 집에 놓고 출근한지라
사무실로 찾아온 동서를 모시고 집에 오게 되었다.

아는 처지이니 대충 못이기는 척하며 들어주어야 하는 게 미덕일지는 모르지만,
요모조모 따져 보니 별로 좋은 상품이 못되는 듯 하여 결정을 미루고 있던 차에
일이 그렇게 된 것이다.

말은 못해도 속으로는 손아래 사촌동서인 나를 많이 야속하다고 생각하였을까 생각하니
또 맘이 편하질 않았다.

남의 사정 보아 주자고 이리 저리 끌려 다니자니 들어주어야 할 보험이 도처에 널렸고,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상품이 분명 있을꺼라는 가정하에 이런 저런 자료를 수집하는 건
보험가입전에 필수적인 절차일꺼라고 생각하는 나였으니 ...
그녀에겐 깐깐하기만 한 손 아래 사촌동서가 그리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사실 평소 주변에 아는 분들이 보험을 들어달라고 찾아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럴때마다 그들의 청을 다 들어주기에는 우리의 경제력이 허락치 못하고,
인정사정 없이 뿌리치자니 매정한 사람처럼 보인다.

"동서는 밖에서 일하니까 집안일은 사람 쓰지?"
너무도 태연하게 물어 온다.

"글쎄요, 돈을 주면 해결되는 부분일지는 몰라도,
아직은 마음이 내키질 않아 그냥 제 손으로 하며 살지요."
난 그렇게 대답한다.

뜻밖의 방문을 하게 된 그녀는 이리 저리 집안을 휘 둘러보며 하는말이
"어머 ... 직장다니면서 살림도 참 야무지게 하나보네 ...어쩜 이렇게 깔끔하지?"
마치 지저분한게 당연하다는 듯 말한다.
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인사치레의 말을 할 수 있는 것이기에
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솔직히 자신이 사는 공간을 누구에게 보여준다는 건
좀 망설여지고, 그런 건 사실이다.
하지만 어쩌랴 그 우편물을 가져가야지 선납한 보험료를 반환받는 모양이니
먼데서 오신 분을 다시 오라고 할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모처럼 오셨으니 반찬없는 밥이라도 부지런히 해서 저녁을 드시게 해야지 하며
우선 차 한잔과 과일을 드렸다.

그분은 연신 여기 저기 핸폰을 걸더니만, 중학동창을 만나기로 하였다며
우리 아파트 앞으로 그 친구를 오라고 하신다.
난 당연히 여자친구려니 했더니, 키도 크고 건장한 남자친구분이었다.

남녀공학 학교를 다닌적이 없어서인지 평소 내외가 좀 심한편이었던 나는
영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좋은시간 보내시라고 인삿말을 남기며 그분을 배웅해드리고 들어오면서도
왠지 마음 한켠에 석연치 않음이 느껴짐은 왜였을까?
내가 너무 고리타분하고, 진부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어서였을까?

아뭏튼 나라면 그렇게 자연스럽게 남자동창들한테 전화를 걸지 못하였을 것 같았다.
아마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러하지 않을까?
뜻밖의 방문은 내게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을 남겨주었다.

서울에서 대전까지 내려왔으니 그냥 갈수는 없는 일이라며
그녀는 또 다른 보험상품을 내게 권한다.

스스로 선택하는게 아닌 본의 아니게 끌려다니는 듯한
강압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너무 적극적인 태도에
있는 말 없는 말 동원하여 함께 대화를 하는 자체 마저도 참 피곤한 일이다.
일을 하는 이들에겐 또 얼마나 애로사항이 많을까 이해가 되다가도
하도 많은 이들이 그런 부탁을 해 오니 나중엔 머리가 다 아프다.

어찌되었든 나는 따뜻한 저녁을 대접해서 보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런 것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
오로지 한건이라도 실적을 올려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는지
뭔가 치열함이 보였고, 왠지 모르게 사는게 서글퍼 보였다.

결국은 또 보험 하나를 가입하고 나서야 내게 걸려오는 전화공세에서
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왠지 기분이 개운치가 않다.

오히려 인간적인 대화를 먼저 하고,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솔직하게 터놓을 수 있어서
내가 꼭 도움을 주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면 내 마음이 그렇지는 않을 것인데 ...
그녀는 오로지 보험가입에만 관심이 있는 듯 했다.

나는 그래도 사촌동서라고 그간의 사는 이야기도 주섬주섬 해 가며
서로 걱정하고, 염려할 수 있는 사이라고 생각했건만,
모처럼의 방문이 의례적이고, 지극히 사무적으로 되어가고 있음에
약간은 화가 났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필요할 때 먼저 손을 내밀수는 있겠지만
그 이전에 자신이 꼭 손내밀 수 있는 이에게 그러해야 하는 것 아닐까?
나는 잠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서로 서먹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일 이야기만 하는 그녀가
참 열심히 살고 있구나 싶다가도 지나치게 세상살이에만 연연하는듯
해서 나는 나대로 좀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는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고 살지만
언젠가 내가 누군가에게 뭔가 부탁을 해야 하는 처지라면
그 부탁이전에 그분께 나의 내면을 좀더 잘 알려줄 만큼
솔직하게 다가간 후에 부탁하는 말을 남기고 싶을 것 같다.

매끄러운 인간관계는
어쩌면 그런 일련의 일들에 큰 도움을 가져다주는 노하우가 될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인간관계는 하루 아침에 쌓아지는 것들이 아닐테니
오늘 하루도 나를 스치고 가는 이들과
좀더 많은 정을 쌓아보는 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