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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호스 아줌마의 신문읽기 53 - 유학 母子-자취아빠 , 가족 해체


BY 닭호스 2001-03-14


서울 K대 정경학부 교수 6명 중 3명은 가족들을 미국에 보내고 혼자 살고 있다. 최명수(가명·45) 교수는 99년 아내와 남매를 아이오와주에, 후배인 김동수(가명·42) 교수는 올 초 아내와 두 딸을 워싱턴주 소도시에 유학보냈다.
두 사람 다 강남의 아파트를 전세 주고, 각각 남양주와 상계동에 조그만 집을 얻어 자취 중이다. 350만원 가량의 월급은 거의 전부 송금하고, 대학원 근무수당 29만원과 ‘마이너스통장’으로 용돈을 해결한다. 이들은 자기네를 ‘한총련(한시적 총각들의 모임)’이라 부른다. 인터넷 무료전화와 이메일로 가족과 소식을 주고받는 것이 유일한 낙이고, “자식 얘기, 나이 들어서까지 노모 고생시키며 사는 얘기가 한총련의 주요 의제”라고 최 교수는 말했다.

“못 떠나서 한이지 갈 수만 있다면야….” 한국교육을 인내하지 못해 탈한국을 택하는 많은 사람들은 ‘가족해체’도 불사한다. 가족을 모두 떠나 보내고 홀로 남아 뒷바라지 하는 가장들. 이런 「맹모 아빠」 「외기러기 아빠」는 이제 뚜렷한 사회현상이 됐다. 추락하는 한국교육이 빚어내는 신이산가족들이다. 미국 교환학생 알선업체 ‘CHI’의 한 간부는 “요즘 유학가는 애들 10명 중 한명은 아빠 팽개치고 엄마와 함께 떠난다”고 말했다. 교환교수나 외국 주재원 근무를 마치고 귀국하면서 가족을 남겨놓고 오는 경우는 보편화됐다.

“우리나라 교육은 말하자면 부도난 겁니다. 부도난 회사에 뭘 기대하겠어요." 오는 9월 딸과 아내를 미국에 보낼 예정인 서모(50)씨는 "이 나이에 자취생 노릇 하고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며 "그렇지만 가스실 같은 한국교육에 아이들이 질식하는 모습은 더이상 보기 싫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자식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 해도, 생이별이나 다름없는 이런 생활이 정상적일 수는 없다. 돈 벌어다 바치는 「기계」로 전락했다는 가장들의 자괴감도 깊다. 99년 말 아내와 딸(12), 아들(10)을 영국에 보낸 변호사 강모(39)씨는 『그렇지 않아도 아이들은 사춘기가 지나면 부모품을 떠난다는데, 이러다 영영 멀어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고 했다.

장기간의 별거가 가족의 비극적인 해체로 이어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미국 서부지역에 고등학생 아들과 함께 가있는 정모(46)씨는 "주위에 이혼소송 중인 부부도 있고, 시간이 남아 골프 치러 다니다 눈이 맞아서 필리핀 남자와 사는 아줌마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난관과 부작용이 이미 한국교육에서 마음이 떠난 사람들을 되돌려 세우기란 역부족이다. 미국 동부에서 중학생 외아들과 살고 있는 강모(42·여)씨는 "매번 1등만 하던 친구 딸이 대입 막판에 수학 한두 문제 삐끗해서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보고 마음을 정했다"면서 "내신성적 올린다고 주말에 농구 과외까지 해야 하는 한국 교육은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쳐진다"고 했다.

기를 쓰고 국내 일류대학 나와봐야 세계 무대에선 별 경쟁력이 없다는 자각도 날로 확산되고 있다. 최모(62·호텔임원)씨는 아들(29)을 초등학교부터 줄곧 미국에서 공부시켰다.

"어떤 투자라도 하겠다"는 마음에 79년 미국 근무를 마치고 귀국할 때 떨어뜨려 놓고 왔다. MBA와 로스쿨까지 미국에서 마친 아들은 졸업 후 미국 10대 로펌에 꼽히는 한 회사에 입사했다. 현재 4년차인 그가 받는 연봉은 24만5000달러. 최씨는 "교육비에 생활비에 그동안 아마 200만달러는 들어갔을 것"이라며 "그래도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이 좋은 교육환경에서 빈틈없는 실력을 갖추고,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으며 당당한 삶을 사는 것이 무엇보다 자랑스럽다"면서 "설령 한국에서 최고 대학을 다녔던들 그게 가능했을까 의심이 든다" 말했다.

이런 저런 방법으로 자녀를 유학보낸 사람들은 취재에 응하면서 거의 예외없이 「익명」을 요구했다. 특히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언젠가 떠날 사람」으로 낙인 찍힐까 두려워 더욱 신분 드러내기를 거부했다. 교육부가 집계하는 조기유학 사례의 20%쯤에는 「편법」 딱지가 붙어있다. 자녀 유학보내기가 때로 「범법」까지 감수할 것을 요구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한국교육 탈출을 강행한다. 그 길 말고는 다른 해법이 없다는 믿음이 워낙 절박하기 때문이다.

「외기러기 3년차」라는 한 대기업 고참부장(47)은 "나를 손가락질 해도 별 수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 교육은 난파선 신세입니다. 배가 가라앉는데 그냥 가만히 있다 죽으란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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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이민 박람회에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러고보니.. 내가 국민학교도 들어가기전 이모네 가족이 미국으로 공부하러가던 때가 생각이 난다.

우리는 어느 식당에서 걸판지게 송별 파티를 했는데.. 당시 석사학위를 가지고 모 대학에 교수로 재직중이던 이모는, 역시나 모 대학에 석사학위를 가지고 재직중이던 이모부와 함께 나에게는 이종 사촌이 되는 네살박이 아들을 데리고 고향을 떠나 낯선 타향으로 떠났다.

이모와 이모부가 박사학위를 따기까지 걸린 세월은 짧지 않았다. 그 사이에 외할머니도 한 번 미국 물을 잡수셨고, 엄마와 다른 이모들은 외국에 가족이 나가산다는 그 때 당시로는 흔치 않았던 사실에 대해 희미하나마 자랑스러움 같은 것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모가 사이사이 보내준 예쁜 물통이 달린 미제 도시락을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사치까지도 나에게 허락되었던 것을 보면 이모의 그 세월이 이모 자신에게는 어떤 의미였는지 모르지만 주위의 사람에게는 과히 나쁘지만은 않은 시간들이었던 듯하다.

이모가 보내온 편지에서 보면...
나의 이종이었던 네 살박이 소년의 성장에 대한 코멘트가 간간이 실려있었는데..

언젠가..
그는... 우체부가 되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밝혀 이모로 하여금, 미국이라는 사회가 주는 그 편견없음과, 풍요로움에 대한 재고(再考)를 가능케 했다는 이야기를 썼던 것을 읽었다.

"우체부가 자동차를 몰고 다니며, 손만 뻗으면 닿을수 있는 거리의 우체통에서 우편물을 꺼내가고, 또 우편물을 부려놓는 것을 보며 그 아이는 나름대로 우체부가 가장 편안한 직업이라는 생각을 했나봅니다."

라고 이모는 할머니께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었던 것 같다.

이모는 내가 국민학교에 들어가고도 한 참 뒤,...
중학교에 들어갔을 무렵인가 박사학위를 딴 후, 가족들을 이끌고 귀국을 했는데...머리만 우리와 같은 검은색이었을 뿐, 꼬부랑말을 쓰는 그 이종 사촌 동생이 어딘지 낯설어 보였다.

그리고 몇 년후, 그 동생은 고등학교 1학년을 마지막으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고교를 다니고, 대학으로 진학할 것이라 했다.

동생은... 훌륭하게 성장하여, 명문사립고교를 나와 명문 대학 건축학과에 진학하였으며, 엄청난 속도로 미국사회에 학업에 적응했다고 했다.

지난해 한 학기 이모는 연구차 다시 미국을 반년동안 다녀올 기회를 가졌다. 그 때는 이모가 미국에서 돌아와 불혹의 나이를 넘기고 가진, 그래서 아직 초등학생인 둘째 아이를 동반시켰다.

반년을 공부한 둘째는 엄마인 이모에게 미국에서 살고 싶다는 의향을 밝혔다고 한다.

미국에서의 학업에 매력을 느낀 초등학생 아들의 당찬 포부에 대해 이모는 대견스러움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모네와 같이 여유가 있는 집안에서도 둘씩이나 공부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한국의 교육은 풍랑을 만나 좌초되기 일보직전의 배처럼 술렁이고 있다고 한다.

잠들어 있는 8개월짜리 딸 아이의 얼굴 위로 년간 수천만이 든다는 해외 유학에 대한 이야기들이 겹쳐지면 수심이 깊어진다. 그리고 어느샌가 나도 신문지상에서의 이민 광고를 무심히 넘겨버릴수 없는 애처러운 한국 엄마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