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무척 친하게 지내는 19층 현신엄마, 늘 생글생글 잘 웃고, 씩씩하고, 운전도 잘하는 현신엄마가 한동안 보이지 않더라구요.
일부러는 아니더라도 더러 엘리베이터 앞에서나, 동네 슈퍼에서나 오가는 길에서 마주칠 법도 하건만 보이지 않으니 궁금해져서 집에 전화를 걸면 아이들이 전화를 받는데 목소리들이 밝지가 않았어요.
행여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나... 걱정이 되었는데.
해서, 바쁜 와중에 핸드폰으로 전활 거니 병원에 있다는 거예요.
"왜? 어디 아파? 감기 걸린거야?"
"아니...그냥 좀..."
"대답하기 불편하면, 나중에 전화할까?"
"그렇진 않은데...."
"그래... 그럼, 내가 다시 전화할게.안녕"
전화를 끊으면서두 바닥에 깊게 가라앉은 듯한 그 목소리의 우울한 느낌이 석연치 않았지요.
다음날, 현신엄마가 저를 찾아왔어요.
화장도 안 한 맨얼굴이 무척 까칠해 보였는데, 눈을 보아하니 무척 운 것 같았어요.
"왜? 무슨 일이야?"
눈이 휘둥그레져 묻는 제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던 현신엄마 두 눈에서 닭똥같이 굵은 눈물방울이 툭! 뚝! 떨어지고 있었지요.
"우리 언니가 백혈병이래... 그래서 병원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데...."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이 터져나오는 현신엄마의 어깨가 몹시 흔들렸지요.
삶이란 어쩜 이렇게 숨가쁘기만 한 것일까?
한 고비 넘겨, 또 한 고비란 그 말이 어쩜 이렇게 한 글자도 틀리지 않을까?
그 언니에겐 이제 중2가 되는 아이와 5학년, 2학년되는 아이가 있다고 하였어요. 둘도 아니고 셋이 당해야 하는 슬픔.
부부 금술도 너무 좋고, 가난하고 힘든 시골생활이지만 항상 웃음꽃피고, 검소하게 생활하는 언니라 걱정하지도 않았다던 현신엄마의 말이 더 가슴을 아프게 하더군요.
그 이후 현신엄마를 가끔씩 만나거나, 전화로 얘길 들어보면,
무균실에 입원해 있다가, 항암치료가 시작되자 머리를 모두 깎았고, 뼈와 살이 다 타들어가는 치료 중에도 꿋꿋하게 견디고 있던 언니.
그 언니를 위해 기증받을 골수를 찾는 작업이 시작되었대요.
일단 가족부터 검사를 하고, 그 중 맞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다행한 일일까? 이왕이면 결혼하고 애도 낳은 자매들 보다는 건강하고 훨씬 젊은 막내남동생이 골수가 맞으면 정말 좋겠다... 이런 생각도 했었대요.
그리곤, 어제 현신엄마와 모처럼 마주 앉아 차를 나누었지요.
"골수이식 검사 결과 나왔어????"
"바로 나래...바로 내가 기야.."
"어머? 정말? 정말 잘 됐다!!!"
"자긴 정말 착한 사람이야. 그 소리들었을 때 내 마음은 어땠는 줄 알아?"
난, 내가 아니길 빌었어. 처음 골수이식 검사를 하러 갈 때는 우리중 누구 하나라도 똑같은 골수가 있어 살려낼 수 있기를 빌었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자 내가 해당될까봐 두려운 마음이 들었던거야..
막상 내가 기증해야 한다고 결과를 통보받으니깐 난 내 언니보다 더 나를 사랑하고, 내 몸을 더 중하게 여기는 내 자신을 보았어. 왜 하필이면 나야, 몇년전 대수술을 받아 전신마취를 한 적이 있어 벌써부터 건망증이 심해진 듯 해서 우울해하는 왜 하필 나냐구? 젊고 건강한 남동생이 맞으면 얼마나 좋을까? 왜 하필 나냐구?
현신엄마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 내렸어요.
그래요... 왜 하필이면 나죠?
왜 수많은 사람을 두고, 하필이면 나에게만 이런 시련과 고통이 있는거죠?
우리가 살아가며 수없이 내뱉게 되는 그 말.
현신엄마는 뚝뚝 떨구던 눈물을 훔치며 금새 웃어보이더군요.
"그래도, 내가 기증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만약 아무도 없었더라면 우리 언니는 살 수 없을거야. 재발이 쉽다고 하니, 수치가 높아질 때마다 계속 기증해야 한대. 그래두 우리 언니에게 뭐라두 줄 게 있으니 정말 다행이야. 나 많이 울었지만, 정말 언니를 위해 주고싶어."
현신엄마 앞에서 저두 한참 울고, 붉어진 눈시울을 서로 바라보며 언니가 병마와 잘 싸워 예전처럼 다시 건강해지길 소원했어요.
속이 터질 듯 힘든 고통이 옆에 있어도, 원수같이 보이는 누군가가 우리를 괴롭혀도 건강을 잃는 것만큼 처절한 것은 또 없을거예요.
아무리 강조해도 건강한 것 만큼 감사한 일은 없을거예요.
내게 허락되어진 것에 대해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내게 주어진 것에 대해 만족하면서 살면 어떨까요?
봄이 아직도 저만치 떨어져 있지만, 곧 아리따운 목련을 터뜨리며 개나리 웃음으로 다가오리라 믿어요.
모두 평안히 주무세요.
아름다운 토요일밤이 깊어갑니다. 좋은 추억이 하나씩 쌓이면 좋겠네요.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