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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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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둘째만...


BY cosmos03 2002-01-29

시 할머님의 기일이다.
딸아이의 학원에서 오는 시간을 맞추려다보니 조금 늦엊다.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온 시간은 4시 10분.
" 빨리 준비 하거라 "
" 나 안갈래. 엄마 혼자 가 "
" 응? 왜? "
" 가면 뭐해? 이제는 애들 아무도 안오잔아. 심심하니까 차라리 인테넷하고 집에 있을래 "
" 괜찬겠니? "
" 걱정 하지마. 어린애 아니니까 "

한편으로는 빈 집에 아이 혼자 놓고 간다는것이 걱정이 되었지만.
아이의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믿고 싶었고.
큰댁이 너무 좁고 사람들은 많은지라 너라도 줄여보자 싶은 마음에
과감히 혼자서 큰댁으로 향했다.
마음은 급해 오지만 그래도 며느리가 어디 나 하나뿐이랴~
싶었고. 이젠 나도 조금은 뒷자리에서 물러서도 되지 않을까? 라는
혼자만의 생각으로 버스를 타고 큰댁에를 갔다.
도착을 하니 시간은 6시.
이른 시간은 아니지만서도 그렇다고 해서 제사때까지 준비를 못 할것도 없고.
시집온지 벌써 햇수로 20여년이 들어가니 부엌일에는 어느정도 이력도 생겼다.
까짖 30여명 먹는 저녁준비쯤이야...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니 부침개의 고소한 냄새와
반겨 맞아주시는 시 작은 아버님의 얼굴이 보인다.
늦게온 미안함에 넙죽 큰절부터 올리고는 부랴부랴 주방으로 들어갔다.
입식 주방이 아닌, 싱크대 한개 덜렁 놓인 주방에서.
바지 가랑이에 물 튀겨가며.
열심히 밥을 않히고 고기를 썰고 버섯도 손질해 놓는다.
이미, 세째 동서가 와서는 부침개는 모두 해 놓았고.
나물을 무치려 준비중이었나 보다.
막내도, 다섯째도 그리고 서울에 있는 네째도.
오지않고 그래도 나는 두번째로 도착을 하엿건만...

시 작은 아버님이 그러셧다 한다.
" 둘째 그러면 못 쓰지. 일은 안 한다해도 일찍일찍 와야만 아랫사람이 본을 받지.
걔 그렇게 안 봤는데. 못 쓰겠고만. "
비록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기분이 씁씁하다.

우린 육동서.
그런데다 큰 형님이 며느리 둘을 보았으니 며느리만 여덟이 되는것이다.
형님 다음의 서열이 바로 둘째 며느리인 나.
결혼식도 채 올리지 않은 동거시절부터
죽어라~ 하고 시집의 대, 소 간의 일은 제일로 먼저 참석을 하였다.
작게는 시 어른들의 생신부터
시동생, 시누이 결혼들.
명절, 제사...
어느것하나 빠지지 않고 내 깜장대로는 성의껏 하였고.
시 작은 아버님 역시도 생신때 못 가면 전화라도 꼭 드렸고.
어디, 생신 뿐인가?
껀수 있는 그 모든날들...
어느것하나 소홀하지 않고 내 그릇만큼은 해 왓다고 자부했는데...
조금 늦엊다고.
그것도 일부러가 아닌 아이 때문에 조금 늦은걸갖고 말이다.
미리 전화도 드렷었고
이유 또한 설명도 해 드렸건만...
못 쓰겠다니. 그러면 안 된다니...
그냥, 동서가 전해주는 말에 씁씁히 웃고 말았지만.
집에 돌아오고 곰곰 곱씹어 생각을 하자니
섭섭함과 야속함,
어찌 생각하면 마구 화가 난다.
왜 꼭 둘째 며느리만 일찍 와야되고
왜 다른 사람은 늦어도 되는것인데 둘째 며느리는 늦으면
못 쓰는 며느리가 되어야 하느것인지...

형님 역시도 그렇다.
할머님 기일 바로 사흘전에 형님의 생일이 있었다.
기일날이나 가야지~ 하고는 내 딴에는 그냥 지나기 섭섭하여서
방송국에 축하 사연을 띄우고
그 글이 방송으로 나오고. 그것도 미안하여 전화를 드렸었다.
전화를 받은분은 아주버님.
지금 집에 안 계신다고 하여 대신 아주버님께 말씀을 전한것이다.
" 형님 생신 축하드린다고 꼭좀 전해주세요 "
그랬건만...분명코 나는 전했건만.
이튿날 형님께온 전화는 섭섭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다 안해도 괜찬은데 동서는 전화 안하면 섭섭하다고.
그러며 하루종일 기다렸다고...
" 아주버님이 아무 말씀 안하세요? "
" 아니, 아무 한테서도 전화 안왓다던데.. "
" 저요. 분명히 했어요. 아주버님께 여쭈어 보세요 "
왜 나는 전화를 안하면 안 되는 것일까?
다른 사람들은 안 챙겨도 섭섭치 않은데 왜 나는 섭섭한걸까?
왜 둘째 동서만이 형님의 생일도 꼭 챙겨야만 되는 사람일까?

전에 아버님, 어머님 할머님...모두 생전에 계실때도 그랬다.
둘째 며느리는 무엇이던 당연히 해야되고.
다른 며느리들이 그냥 지나가는것도 둘째 며느리는 그냥 지나치면 안 되는거고.
명절때도 다른 며느리들은 명절 당일날 와도 되지만
둘째 며느리는 그 보다 한참이나 여러날을 앞세워서 와야 되는...
할머님 역시도.
다른 손부들의 손에 사탕이 없으면 그럴수 있는것이지만.
둘째 손부의 손에 사탕과 과자가 없으면
아주 못된 손부였다.
왜일까?
?告?
왜 둘째만... 왜 나만...

다 똑 같은 며느리고 동서이건만.
유독 나만이 무어라도 소홀하다 싶으면 이야기거리가 되어서는
몇날이고 며칠이고를 그 분들의 입술에 오르내려야 했다.
나도 이제는 뒷전에 서고 싶다.
그냥 뒷짐지고 해 주는 밥 얻어먹고도 싶고
조금은 유도리있게 행사에 빠질수도 있고.
힘들면 안갈수도 있고.
명절 당일에나 가서는 하얀 봉투에 돈이나 몇푼 넣어서는 생색도 내고 싶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그렇게 해온 내 발자취려니~ 이해는 하지만서도.
가끔씩~ 아니, 껀껀히 입에 오르내리는게 싫다.
지나친 관심이 버거웁다는 얘기다.
이제 19년차 주부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편해질때도 되었건만...
지금도 조금 늦엊다고 종종걸음을 쳐야하는 내가 한심스럽다.
그 사람 못 쓴다는 그런 얘기도, 관심 보다는 듣기싫은 잔소리로만
내 귀엔 거슬린다.
이젠...
작은 아버님.
형님.
그리고 남편이여.
언제던 나는 당신네들 주위에 있으니
내 숨통 조금만 틔워주시면 안될까요?
섭섭해 하지들 마시고 한발만...조금만 뒤에 서서는
그럴수도 있겠구나~ 그리 생각해 준다면...
그러면 조금은 편해지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