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고향은 경북 안동이라는 곳이지요.
아래 youni70님이 안동찜닭을 얘기 하시길래
옛날 생각에 몇자 적어봅니다.
안동시내 중심에 자리한 구시장 한 귀퉁이에는
닭집이 줄지어선 일명 <찜닭골목>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값도 싸고 양도 많아
특히나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젊은이들이나 학생들에게는
인기있는 메뉴지요.
물론 맛도 있습니다.
토막낸 닭고기에 감자와 당근 등의 야채를 곁들이고
당면을 부드럽게 삶아 푸짐하게 담아내는 찜닭.
고추가루는 쓰지 않고 간장으로만 간을 해서
맛이 깔끔하고 담백하지요.
다른 반찬 없이도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워내는 건
일도 아니지요.
요즘 서울 대학로에서부터 안동찜닭 바람이 분다지요?
그게 이 찜닭이랑 같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강원도가 고향인 한 후배는
"왜 이렇게 맛있는 게 안동에만 있는 거야."
라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고
멀리 나가있던 친구들은
안동에 오면 찜닭부터 찾아서 먹곤 했지요.
그 곳, 찜닭 골목에 모여있는 닭집들은
크기가 다 비슷비슷합니다.
입구에 주방이 있어서
요리하는 모습을 지나면서도 다 볼 수가 있지요.
사실 주방이랄 것도 없이
문 앞에 커다랗고 검은 솥은 걸어놓고
지지고 튀기고 볶고 하지요.
건물도 오래 된 것들이라서 우중충하고
유리창도 지저분합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작은 방이 한칸 있고
앉은뱅이 탁자가 너댓개 정도 있지요.
그리고 한쪽 구석에는 예외없이
다락으로 올라가는,
좁고 가파른 나무계단이 있습니다.
그 계단을 오르면 높이가 1m를 조금 넘을듯한,
그래서 일어설 수도 없는 작은 다락이 나옵니다.
물론 그곳도 손님을 받는 홀(?)입니다.
아마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서
손님을 받으려는 의도였겠지만
우리들에겐 그 다락이 더 인기가 좋았죠.
어두컴컴하고 좁은 그곳이 왠지 더 은밀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멋내느라 치마를 입고 간 날은
낭패를 보기 일쑤였지요.
그 다락은 천장이 나무합판으로 되어있었습니다.
(혹은 도배가 되어있었거나.)
그러나 그건 중요하지 않죠.
왜냐하면
그 다락에서는 여백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낙서들이 있었거든요.
'○월 ○일 ○○가 다녀가다'
'@@는 %%를 사랑한다.'
'&&야, 사랑해. '
'우리 우정 영원히!!'
따위의 낙서들이 천장과 벽을 빼곡이 채우고 있었죠.
무엇을 그리 남기고 싶었을까요?
하여간
그곳에서 우린 얇은 주머니를 털어서 배를 채우고
쓴 소주잔을 부딪히며 사랑과 삶을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저녁시간엔 운이 좋아야
빈 자리 하나를 차지할 수 있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되는,
그래서 우리가 보기에는 돈도 제법 벌었을만한데
이상하게도 구질구질한 가게는 수리도 안 하더군요.
더 이상한 건
넓고 깨끗하게 차려서 개업한 찜닭집은
장사가 잘 안 된다는 것이었어요.
우리부터도 그 집은 잘 안 가고
구질구질하고 좁아터진 오래된 집으로만
발길이 가더군요.
그 곳에 안 가본 지 꽤 오래 되었는데
아직도 그대로일지 궁금하네요.
예전처럼,
수다스럽고 잘 웃는 친구들과
백열등 하나 달려있는
그 다락방에서 찜닭 국물에 공기밥을
비벼먹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