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적
달뜨는 밤이면
소리없이 대문이 열려.
아주 어릴 적
선잠에서 깨어나면
늘 안방에서 나즈막하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어
밤에 온 손님은 언제나 검은 가방속에
눈물 한 보따리 열어 풀어내고
엄마의 흐느끼는 소리는 스물스물 문틈으로 기어나오지
깡마른 내 종아리는 까치발로 더 조여들어
소리없이 대청마루를 살곰거리며 다녔지
문틈사이로 그 무서운 김일성이란 빨갱이 이름이 나오고
무서움에 뒤집어쓴 이불속에서 콩당거리는 가슴을 진정해야했지
무서워... 무서워... 저녁이되면 달음박질로 할머니댁으로 향하고
작은 내 입술은 말 없이 움직일 뿐이었지
내 입술이 크게 벌려지면 무서운 경찰 아저씨들이 달려들거 같았지
밤달손님이던 그 사람 이제 낮달이 웃는 낮에도 집안에 들어오고
어느날 우리 사형제 불러 모아 놓으신 엄마는 말씀하셨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외삼촌'....
긴 침묵은 아버지 헛기침으로 깨어지고
다음날 부터 외삼촌이 오실때면 늘 두 남자가 함께였다
밥상위에는 늘 낯선 두 남자의 밥그릇까지 놓여있어야했다
박형사 그리고 피형사...
왜 형사들이 외삼촌을 따라다녀야하는지
퍽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다.
유학을 준비하던 큰 오빠가 신원조회에서 문제가 생겼고...
납북되어 김일성대학을 마치고 남한으로 내려온 삼촌
자수란 이름으로 보상받은 것이라고는
자유가 있다는 땅에서 자유 없는 몸이 되는 것
나라가 준 몇푼의 돈은 남한을 배우는 수업료가 되고
신동이라 불리우던 어릴적 아련한 기억이 삼촌을
위로하기에는 너무 작았기에 굳게 닫힌 입속에 퍼 붓는
술과 적응 못하는 방황 만이 분단이란 이름이 준 선물이였다.
이제 작은 동네에서 아이들 모아 한자와 서예를
가르치며 초로의 노인으로 살아가시다
분단의 아픔도 없고 자식과의 생 이별도 없고
그 긴 방황의 끝도 없는 곳으로 가셨다.
상이 생각이 난다
외삼촌아들이면서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고 죽어간 아이
행여 아들에게 미칠 또 다른 영향때문에 아들이라고
밝히지 못하고 가슴앓이하던 외삼촌에게
문상이는 복수라도 하듯 열일곱 나이에 훌쩍
이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죽은 후에야 자신의 죽엄 앞에 앉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불러 보진 않았을까
이제 그 부자는 어떤 만남을 가질까...
혈육의 죽음이 슬프기보다 분노가 치미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