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날이다.
오전에 아이들 학교에 보내고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혼자서 창이 마주 보이는 식탁에 앉아 조용한 점심을 먹었다.
라디오를 크게 틀었다.
그리고 문을 활짝 열고 바람을 잡안으로 불러 드렸다.
화분에 물을 한 바가지씩 주고,
시들어 버린 꽃을 엄지와검지 두 손톱으로 가위를 만들어 잘라냈다
라디오에서 이소라의 '제발'이 나왔다.
지지난주에 이소라의 프로포즈에서 이 노래를 알게 되었다.
목이 매어 몇번을 부르다가 말다가 그랬던 노래다.
그 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있는 걸 보면서
나도 따라 눈물이 흘렀었다.
이소라는 직접 가사를 쓴다고 했다.
그래야 감정이 잡혀 부르기가 편하다며...
'제발'이란 노래는 얼마전에 남자친구와 헤어지고서 쓴 거라고 했다.
'나만 원한다고 했잖아.
그렇게 웃고 울던 기억들이
다른 사람으로 잊혀져 지워지는게 난 싫어.'
이 부분이 눈물나게 슬펐다.
작은 아이가 들어왔다 나가고,
큰 아이가 얼굴이 빨게 가지고 들어 오더니
"이런 날씨.정말 싫어.화가 막 나는 날씨야."
슬픔에 젖었던 내 감정이 순식간에 현실로 돌아왔다.
"그러니까.스타킹을 신고 다니지"
"스타킹 안신었다고 추운게 아니야."
내 참! 아니 이 날씨에 맨살로 다니니 안 추운 사람이 어딨냐고...
그래.오늘은 편하게 좋게 살자.쉬는날이잖아.
"스파게티 먹을래?"
"네" 금방 대답을 이쁘게 한다.
부엌에 가서 국수 삶고 소스 데우고 치즈 스틱 튀기고...
한 접시 담아서 큰아이를 불렀다.
"알맞게 삶아졌지? 엄마 잘하지?"
그랬더니 웃는다.이제는 먹으면서 조잘조잘 떠든다.
"수학 선생님이 맘에 안들어.어쩜 그렇게 못 가르치냐고...
사회 선생님은 남편한테 얻어 맞고서 우리에게 화풀이 한다.
선생님을 우리가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해.
3학년이니까 어떤 선생님이 잘 가르치는지 알잖아.
국어선생님과 미술 선생님은 맘에 들어."
요즘 애들은 영악한거야 똑똑한거야.
작은 아이는 꼬박꼬박 높임말을 쓰는데,
큰아이는 꼬박꼬박 반말이다.
무슨 일을 부탁할때나 내가 화가 났을때만 존대말을 쓴다.
큰 아이는 딸이다.
제일 큰 고민이 키가 작은 거고,제일 좋아하는 것이 h.o.t다.
질투나게 나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데 지져분해서 방이 폭탄 맞은 것 같다.
그것도 한 방이 아니고 열 방은 맞았을거다.
내가 지져분하다고 사람들에게 흉보면 안 믿는다.
피부가 뽀시시하고 눈이 만화에서 나오는 소녀같이 크고 맑다.
코가 오똑하고..얼굴이 주먹만하다.
무슨무슨 날이면 사탕과 장미꽃을 바리바리 안고 온다.
같은반 남자아이들이 준 것이다.
눈들은 있어가지고...
남자들이란 크나 작으나 이쁘면 무족건 좋아한다니까.
얘 방보면 질릴것이다. 나도 질렸으니깐.
아이들이 들락날락 거리다보면 하루가 간다.
제주도 가셨던 친정엄마는 오셨나?
오늘 오신다고 했는데 전화 걸어봐야겠다.
얼마나 봄바람에 흔들리고,
꽃향기에 어지러운지 물어봐야겠다.
나도 봄바람 맞고 싶은데...
나도 꽃향기에 취하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