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작은 아이 기침때문에 잠을 설치다
새벽녘에야 잠이 든 어젯 밤.
아이들 방학과 동시에 시작된
나의 게으름 탓에 열시나 되어 늦은 아침을 먹고
창문을 열어보니 알싸한 냉기가 푸석한 얼굴로
싸하게 꽂혀온다.
그제야 정신이 드는 것 같다.
소란 떨던 아이들 도서관 간다고 가방 싸들고
빠져나가고 나니
혼자남은 집안에 어쩜 어제와 하나 다를 것 없는
풍경들.
신기하리만치 거의 같은 자리에 놓여진 나만의 일감들이
오로지 내 손만을 기다리며 널브러져 있다.
거실장위에 아이가 쓰다 잠든 일기장이 얹혀 있고,
식탁위엔 아침 먹은 빈 그릇들, 소파위의 펼쳐진 신문들,
벗어 논 옷가지들, 쌓인 씽크대의 엉킨 그릇들,
함부로 짜다가 삐져나간 욕실 타일벽에 묻은 치약 찌꺼기,
여기저기 흩어져 싸 놓은 개똥에,
방마다 빠져나온 흔적만 콩하니 뚫려있는 이부자리들,
현관에 뒤엉킨 벗어 놓은 신발들.........
어차피 늘 해야하고 하고 있는
아침의 일과이면서도 아직 준비돼지 않은
몸의 컨디션은 그냥 깔려 있는 이부자리로 쏘옥 들어가
공상이나 하면서 설친 잠을 마져 잘까..
자면 잘수록 늘어만 가는
잠속으로 묻혀버릴까 하는 달콤한 유혹을 느껴보기도 한다.
그러던 참에 전화가 울린다.
일년에 한 두번 듣는 목소린데도
단박에 외숙모의 목소리임을 알게 된다.
매년 어머니의 기일 꼭 하루 전날에 전화를 주는 외숙모는
나보다 서너살 위인 나이인데도 참으로 어른스러운 사람이다.
친구같은 대화내용은 막힘없이 이어지고
난 고마운 마음에 엄마가 하늘에서 참 고마워 하고 있을 거란
말로 전화를 끊었다.
엄마에게 늘 죄인 같은 딸이라서 인가, 늘 이맘때면
며칠을 두고 꿈을 꾼다.
곱게 옥색 한복을 입은 어머니의 화사한 모습을 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내가 누군가를 위해 많은 음식을 지고 나르고 하기도 하고,
어젯밤 꿈에도 새로 이사를 해서
집들이 음식을 차리는데 음식이 담긴 접시가 갑자기
밑둥이 높은 제기로 변하는 것이다.
어머니 기일 십 여차례를 단 한번도 잊어본적 없이 미리 알고
지내왔는데, 왜 늘 며칠을 꿈이 이상한건지..
곰곰 생각해 보면 아마도
어머니가 내겐 늘 마음의 못으로 박혀 있기 때문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꼭 지금 내 나이에 위암 말기란 사형선고를 받으시고
항암제 투여로 고통스런 이년이란 시간을 더 계셔 주셨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간은 어머니께 너무나 큰 고통만
안겨드린 부질 없는 시간일 뿐이었다.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막막함,
절망감에 진찰실 바닥에 쿵 주저 앉아
통곡을 하며 듣던 어머니의 시한부 선고.
며칠을 밤을 새고 울다 잠깐 자고 일어난 새벽은
무너진 하늘 밑에 깔려 숨막혀 죽을 것 같은
암담함으로 늘 맞이하곤 했었다.
엄마 없인 못 살 것만 같았으므로.
대학에 진학해 날아다니는 친구들과는
난 애당초 달라야만 했다.
내 얼굴에 그려진 수심의 그림자는 아마 그 때부터 였을 것이다.
난 어머니의 병간호에 늘 어머니 그림자가 되어야만 했고,
그런 어머니 또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어두운 얼굴로 다니는 파릇한 나이의 대학생 딸이
마음 아파 안타까워 하시면서도 내가 곁에 있어야 편안해 하셨다.
긴병에 효자 없다고 엄마의 수족 노릇을 한지
겨우 일년만에
그런 어머니를 두고,
난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밤을 새며 놀기도 했고, 술이 깨어 어머니의 아픔에 찌든
얼굴이 떠오르면 다시 술을 목에 들이붓고 하는
벗어나고 싶은 잊고 싶은 버거운 현실을 외면하려
애쓰며 방탕한 생활에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런 사이 진행되는 엄마의 죽음의 길로 향한
투병생활은 거의 살아 있음이 죽음보다 못한 처절한
고통의 연속일 뿐이었다.
아무런 희망 없는 어차피 죽음으로의 길인 것을
현대의학이란 잔인한 치료법은 돌아서 돌아서
모든 진을 다 뽑아내고서야 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
밖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날도 남자 여자 서넛이 모여 밤새 술을 마시다가
어느 남학생 집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요란한 밸소리에 전해오는 울음 섞인 동생의
목소리는 엄마의 사망소식을 알리고
술이 덜깬 건지 충격이 컸던 건지
난 그대로 일어나 무엇에 끌려가는 혼 빠진 사람처럼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노란등이 대문 앞에 걸려있고
집 전체가 환한 백열등 빛으로 밝혀 있고,
오랜만에 보는 많은 친척들이 대문 앞을 서성거리며
담배에 수다를 떨고 있고,
올만한 사람들은 다 온 상태에 이제서야 나타난
망자의 맏딸인 나.....
그렇게 보내드린 철부지 망나니 딸이 나다.
그 때 박힌 가슴의 못은
빠지지도 않거니와 빼고 싶지도 않은
늘 짊어지고 가야할 내 영혼의 십자가가 된 것이다.
그토록 못되 먹은 그 딸이
여자라고 남자 만나 아이 낳아 아내에 엄마가 돼 있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 괘씸하시겠지만
그래도 딸이라고 미움 삭이셨는지 아직 잘 살아가고 있다.
꼴에 엄마라고 밤새 기침하는 아이때문에
밤잠 설치며 애닳아하는 날 보시면 역시 사랑은
내리사랑이구나 하시며 위안삼으실까, 아니면 저런
괘씸한 것이 지 새끼한테는 어미구실을 하는구먼 하며 그나마
다행스러워 하실까,
자식 구실 제대로 못한 난 늘 한 많은 딸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혹 알아주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