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밥을 주려고 상을 차리려는데 마땅한
반찬이 없다.
이럴땐 그저 영양많고 손쉬운 계란부침이 그만이다.
계란 두알을 꺼내서 후라이를 만드는데 그만 노른자가
하나 터져버렸다.
어쩔수 없이 성격이 깔끔하고 까탈스러운 딸네미에게
온전한 것을 주고 터진것은 털털한 아들에게로 주게된다.
어릴때 아버진 유난히도 내 바로 밑의 동생을 이뻐하셨다.
생김새도 곱상하게 이쁘지만 하는 행동 또한
애교가 많아서 언제나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던 동생.
아버지는 언제나 동생을 무릎에 앉히고
"에고--- 우리 종달새야--
어쩜 이리도 이쁘노-- "
어느땐
"우리 귀연 손수건아--
아부지 얼굴좀 닦아주라--"
이러시면서 넷째딸을 엄청 귀여워 하셨다.
천성이 무뚝뚝하고 말이 없었던 난 그저 그 곁에서
부러움과 시샘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손가락 길이는 모두 다르지 않은가.
어느땐 사랑을 독차지하는 동생이 미워서
어른들 안계실때 쥐어박기라도 하면
동생의 고자질로 그날은 죽도록 매타작을
하는 날이 되었으니.
사랑하는 종달새를 아프게 만든 벌로 추운겨울날
내복바람으로 내?길때도 있었으니 울 아부지의
자식 편애는 참 유별나셨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처럼 무뚝뚝하신 어머니와
평생을 사신 아버지가 왜 그토록 동생을 이뻐하셨는지
이해가 간다.
아버진 아마도 아내에게 못받은 애정을 딸에게서
보상받으시고 싶으셨던지도 모른다.
체격이 비슷했던 동생과 나는 새옷이 생겨도
언제나 선택권은 동생이 먼저였다.
하다못해 군고구마를 먹어도 잘생기고 크기가 적당한 것은
동생꺼...
크고 못생긴 것은 내차지..
학교에 갈때면 아버진 동생의 길고 윤기나는 갈색머리를
쫑쫑 땋아주시며 등도 토닥토닥 해주셨지만
시커멓고 숱이 많았던 나는 그저 단말머리를 혼자서 빗으로
쓱쓱 빗어넘기면 그만 이었다.
동생이 신랑감을 데려 오던날.
지금도 아버지가 하신 말씀을 잊지 못한다.
"우리 아이 정말 주기 아까운 사람이네..
잘해주게.
이런 사람 만나기 쉽지 않다네.."
결혼식장에서 유일하게 우셨던 때가 바로 그 동생이
결혼할때였다.
결혼을 하고 여전히 동생은 그렇게 공주처럼 잘 산다.
남편이 경제적으로도 풍족하게 해주지만
동생을 어찌나 사랑하는지 날마다 발 맛사지까지 해준단다.
어느날을 둘이서 차를 마시려고 물주전자를 올려놓고
깜빡해서 그만 주전자가 새카맣게 다 타버렸단다.
그것도 두번씩이나 연속으로다.
그런데 남편이 자기 잘못이라면서 그걸 다 닦았다고 한다.
자기 색시가 세상에서 제일로 이쁘고 교양있고 그래서
존경스럽다고 하니..
지금도 친정에 가면 공주처럼 이쁘게 차려입은 동생은
우아하게 차만 끓인다.
죽어도 공주가 못되는 난 밥하고 설거지하고 다른사람 역시
그게 당연하다고 여긴다.
울 아부지 병원생활 하셨을 때도
몇날을 대소변 받아내는 일은 당연히 언니와 내몫이다.
동생은 그저 맛있는 것 싸들고 와서 조근조근 이야기
하며 아버질 즐겁게 해드리기만 하면 된다.
성경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님께서 어느 자매의 집을 방문하셨을때
한사람은 예수님 곁에서 이야기만 듣고 있었고,
또 한사람은 부엌에서 음식준비하느라 분주히
일만 했다.
나중에 음식만들던 언니가 예수님께 불평을 했을때
예수님이 하신 이야기가 생각난다.
각자의 몫이 있으니 불평하지 말라--
그래..
어차피 난 공주로 살 사람은 아니다.
천성적으로 애교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그런 사람이고 멋도 낼줄 모르는 수수한
사람이니 그걸 부러워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사람마다 각자의
몫이 있다는 것이다.
난.. 그저 나일뿐이다.
산과 들을 좋아하고 그래서 언젠가는
자연과 더불어 살다가 생을 마치고 싶은
그런 여인일 뿐이다.
나...
공주로 살지 못했음을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