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네나 다름없이 가까운 거리에 사는 오랜친구는
신도시의 대형아파트에 살고 있다.
큰 도로를 경계로 친구의 집과는 안양시와 의왕시로 갈라지고
평촌 신도시 고층아파트와 내가 사는 이십년된 주공 저층아파트로 나뉘어진다.
넓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는 형편이 여유로운데다가 마음씀이 너그러운
사람이라 살붙이보다도 더한 편안함이 있고, 다니며 쓰는 경비는 주로 친구의
배려로 열리는 주머니의 몫이된다.
신혼 시절만해도 공부만 하던 남편때문에 늘 쪼들려 푼돈을 내게 꾸어쓰던
형편이었는데 큰 발전 없이 사는 내가 이젠 친구에게 목돈을 빌려쓰니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이렇게 남는 장사가 어디 있겠나 싶다.
며칠 전,
친구의 생일이 되어 선물을 할까하다 바람도 쐴겸 아름다운 호숫가에
비교적 저렴한 값에 월남 쌀국수를 파는 분위기 좋은 카페엘 갔다.
오랜만에 내가 쏜다고 큰소리를 치며 불러냈는데..
어쨌든 기쁘게 잘 먹어주어 고맙긴했다.
점심과 커피를 한 자리에서 마시고 가려니 아직 시간이 일러
모처럼 외출에 서둘러 들어가 일찌감치 저녁준비에 김치냄새 묻히고 싶지 않은
마음은 같은 주부로 상통하는 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른 데 가서 한 잔 하자."
요 며칠 남편과 사소한 갈등으로 마음이 편치 않은 친구,
생일이라고 마련되어질 남편의 어색한 이벤트도 아이들의 재롱도
내년으로 미루고 오늘은 그저 마음 맞는 너와 나, 엎어지자 한다.
호수주변보다는 한산하지만 분위기는 더욱 좋은 한적한 절가는 길의
작은 카페에 들러 마침 내려주는 여린 빗줄기를 넓은 창으로 바라보며
넘기는 술잔에 한숨은 섞였지만 편안하기 그지없다.
내가 워낙에 술은 동생의 남편이라도 좋으니 남자와 마셔야 술맛이 난다는
주의라 여자와는 웬만해선 잘 갖지 않는 술자리건만
세상에 둘도 없이 편한 친구와 때맞춰 내려주는 비와 그리고 벽난로의
장작 타는 소리가 더 없이 좋은 안주되어 아늑한 술기운에 젖게 하는 것이다.
몇 잔 술에 술이 약한 친구의 커다란 입이 헤벌죽 벌어진다.
소녀적 해맑게 웃던 그 모습이 떠올라 고1 소녀로 돌아가는 듯,
술기운과 함께 아련한 그리움을 불러내더니
함께 따라웃는 눈가의 겹겹 그어진 주름들이 까만 눈동자가 고왔던
친구의 마흔을 일깨워 주며 조금은 서글퍼진다.
친구의 모습은 곧 내 모습이므로...
짧은 겨울 해는 서둘러 넘어가고, 작은 언덕에 자리한 카페에 어둠이 깔리우니
취흥에 젖은 두 여자는 집도 아이도 잊은채
그렇게 마흔의 생일을 맞이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