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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85) * 마음을 다치는 일 *


BY 쟈스민 2002-01-19

토요일엔 점심시간이 없이 오후 1시까지가 근무시간이다.
그런데도 사무실 식구들은 12시가 가까워지니 배가 출출해지나보다.
어제 저녁 회식도 있었고 그래서인지 뭔가 슬슬 해장할 꺼리를 찾느라 서성임이 역력하다.

오전 내내 몇잔의 아메리칸 스타일의 커피를 마시며
어제 마신 술에서 깨어나려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어제 마신 술냄새로 사무실 공기를 다소 오염시키는 이들도 있었다.

나름대로들 메뉴가 정해졌는지 슬쩍 슬쩍 같은 계별로 자리를 한 이들이 하나 둘씩 빠져 나간다.

나는 모처럼 토요일 한가한 시간을 맞아 대대적인 책상 정리,
나의 신변 정리를 하기로 한 날이라 오전내내 뭔가를 하느라 몸이 더웠다.

내가 온통 정리하는 일에 정신을 쏟고 있을 때 쯤
주위의 직원들은 사무실에 전화받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건지
누구하나 같이 밥 먹으로 가자고 빈말을 하는 이가 없었다.

원래 주어진 점심시간이 아닌 시간에 밥을 먹으러 외부로 나가는 일이
좀 떳떳하지 못하기는 한 건지 빈 사무실에 걸려오고 있을 전화가 걱정이 되긴 했는지 ...

겨우 몇 사람들만이 자리를 지킨 사무실에 걸려오는 전화를
난 그래도 예의를 갖추며 받기로 한다.
하지만 기분이 영 개운칠 않았다.

누구는 전화받으려고 자리를 지켜야 하고,
또 누구는 그 시간에 빈 위장을 채우며, 희희덕 거려야 하는 ...
같은 시간대를 그렇게 다르게 보내야 한다는 한 사무실 사람들의 인심에서 ...

내가 그동안 뭔가 잘못 살아온 건 아닌가?
뭐 그런 생각들이 잠시 머리속을 스치고 지났던 것 같다.

학창시절 부터도 난 쉬는 시간에 도시락 까먹어
수업들어 오신 선생님들에게 반찬냄새 풍기는 걸 유난히도 싫어했던 그런 아이였으니
지금에까지 그런 내 고집이 이어 지고 있는건지 ...
도대체 옆길로 샐줄 모르니 그와 동시에 재미도 그만치 덜하지 싶다.

세상인심이 아무리 야박하다고 하여도 ...
옆에 앉은 직원들에게 같이 가자는 빈말 한마디라도 있었다면
함께 가지도 않을 사람이지만, 그리 서운한 맘도 물론 남지 않았겠지 ...

법으로 정하든, 그렇지 않은 약속이든
그건 지켜져야 하며, 지키라고 있는 것인데
어느덧 사람들은 어물쩡 넘어가는 일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듯 했다.

그 시간 내가 사무실에 앉아 대표로 총대를 메고,
전화를 받아야 할 의무는 물론 없었다.

나도 그 길로 일어나 밥을 먹으러 가버리면 그만일테지만
무책임한 그들의 뒷모습이 왠지 씁쓸해서 함께 동참하고 픈 생각이
저만치 달아난 것이다.

어찌하여 다른이는 안중에도 없고, 항상 나 부터 챙기는 일에 그리도 익숙해져 있는 걸까?

1시간이 다 되어서야 직원들이 들어오더니만,
슬슬 퇴근준비를 하는 눈치였다.

그네들의 이론대로라면 식사하러 가지 않고 한 시간 내내 자리를 지킨 이들은
그들보다 일찍 퇴근해 버려도 그들은 할 이야기가 없는 것이 아닐까?
너무나 화가 났다.

그런 작은 집단에서조차 질서가 느껴지지 않을 때 ...
나는 그 집단에서의 이탈을 꿈꾸게 된다.
아니 내 자신으로부터의 한바탕 반란을 일으키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해야 옳을 것 같다.

어쩐지 정해진 규칙을 잘 지켜내는 이가 마치 바보같고,
매사를 어물쩡 넘기는 이들은 아주 약게 세상을 잘 살아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 아이러니함이 그렇게 오랜 세월 한 곳에 몸담아 온 나의 마음을 다치게 한다.

그건 아마 밥 한그릇의 인심이 야박해서 일수도 있고,
지키기로 한 약속을 쉽게 묵살해 버리는
시간약속에 둔감해져 버린 이들의 의식 때문이었으리라...

정시에 퇴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그때까지도 개운치 못한 생각들을 쉽게 떨구어 내질 못했다.

혼자 먹는 점심이 쓸쓸한 것임을 알면서도
오늘 만큼은 친구에게도 전화를 걸지 않는다.

인스턴트 우동 한 그릇으로 간단히 먹는 점심이지만
그래도 난 누가 알아주건 말건 내 자신에게 떳떳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커피를 마시며, TV를 켰더니 "백만장자가 사는 법"이란 프로가 나오고 있었다.

세계에서 선택되어진 부류에 있는 사람들의 이색적인 아프리가에서의 휴가 이야기와, 갖가지 야생동물들의 이야기였다.

어마 어마한 저택과, 넓은 평원이 펼쳐진 대자연이 주는 혜택을
그네들은 고스란히 누리며 사는 듯 했다.

돈뭉치와, 품위을 갖고 갈 수 있는
그건 선택된 사람들만의 몫이었다.

그런데 TV화면에 비친 오래된 성의 모습이나 그런것들이 나의 맘을
사로 잡는 거였다.

신기한 듯 바라보다가, 나중에는 나도 저런 꿈을 꿀수 있을까?
잠시 여행을 떠난 기분으로 전환이 되었다.

살다 보면 이렇게 어떤것이 옳고, 어떤것이 그른 일인지
그 감각이 무디어져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할 때가 종종 있나보다.

하지만 세상엔 원칙을 지키며 살때 더 마음의 편안함을 느끼며 사는 이들이
휠씬 많을 거라 믿으며,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싶다.

소수가 갖고 있는 정의가 때때로 큰 사회의 물결처럼 그리되어
지켜내야 할 약속에 좀더 민감한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

내 자신의 일익보다는 주위를 한번쯤 둘러볼줄 아는
따뜻한 마음가짐을 자주 자주 점검해 볼 줄 알아
주변까지 환하게 만드는 가로등 같은 이들을
더 많이 만날 수가 있었으면 ...

그런 바램으로 토요일 오후는
나로 하여금 모처럼의 달콤한 낮잠조차
달아나게 한다.

나이를 더해갈 수록
마음을 다치는 일이 점점 늘고 있음에
서글픔과 아쉬움이 범벅이 되어
그것을 털어내기까지엔 항상 어느만큼의 시간이 요구된다.

나 때문에 누군가가 마음을 다치는 일은 없었는지
하루 하루 꼼꼼하게 체크하며 살아야 하는 건 아닐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