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7시 40분.
띵동! 여지없이 초인종이 울린다.
목에 야무지게 목도리를 두르시고
오늘도 어머님은 당신의 아들, 며느리,
그리고 당신의 손자를 위해 셋째 며느리집으로 출근을 하신다.
어머님 연세 예순넷.
이제는 당신의 친구들과 등산도 다니고
여유롭게 노년을 보내실 나이에
손자나 돌보러 오시는 어머님.....
용돈이야 두둑히 드리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식의 도리이고.
하지만 우리 어머님 우리 애들 돌봐주는데는
무언가의 사정이 있다.
맞벌이로 결혼생활을 시작한 우리부부.
처음부터 각자 사회생활을 인정하고
결혼한터라 서로 많이 도와주어 몇년동안은 별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결혼 4년쯤 되었을까
어느날 갑자기 남편이 취중에 "내가 결혼은 왜 했는가 모르겠다
저녘에 퇴근후 불꺼진 집에 들어오면 그냥 서글퍼. 한두번도 아니고. 비참한 기분
이 들때도 있고"
취중진담이라고.........
아무리 내가 퇴근이 자기보다 가끔 늦는다고.
이런 말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이러다가 남편 밖으로 돌면 어떡하지......
덜컥 겁이 났다.
이건 분명히 우리 가정의 위기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평소 남편은 신중한 사람이라 남에게 섭섭한 말을
쉽게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1주일을 고민한 끝에
그래 가정에는 따뜻한 안주인이 있어야 돼..........
생각하고 회사에 사표를 냈다.
무조건 남편의 찬성하에........
그로부터 1년후
다시 직장생활을 하고 싶어 남편과 합의하에 공부를 하는데
이번에는 시어머님이 반대를 하시는 거였다.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알뜰하게 살림하고
애나 잘키우지 뭔 직장이냐고...........
그러던 어느날
어머님이 당신 다니시는 절에 같이 가자고 하여
난 애를 데리고 따라나섰다.
오후 한나절을 절에서 여러 가지 음식도 같이 하면서
놀고 있는데 조용히 부르더니 큰스님에게 같이 가보잔다.
큰스님에게 인사를 시키더니 이번에는 잠시 나가 있으란다.
한 30분이 지나서 어머님이 스님방에서
아무말도 없이 나오셨다.
평소 인자하고 말이 없으신 어머님이지만
셋째며느리인 나하고는 친한지라........
(딸이 하나뿐인 어머님은 결혼전부터 지금까지 "누구엄마야"하지 않고
내이름을 불러주신다.)
눈빛만 봐도 어머님의 마음을 대강은 짐작할 수 있는 사이라고 자부한지라.
분명히 큰스님에게 나에 대해 물으셨을 것 같은데.....
궁금해서 "어머님 큰스님에게 뭘 물으셨어요."했더니
어머님왈 "큰스님께서 앞으로 나보고 네 애들이나 봐주란다."
그날 이후로 어머님은 정말 내가 직장을 다시 잡을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고 애를 봐주셨다.
어머님의 도움으로 내가 다시 직장을 잡고 출근하자,
어머님도 직장을 잡으셨다. 셋째며느리집을 직장으로.....
아침에 출근하고 저녘에 퇴근을 하시는 직장을.
연세드신 부모님에게 제일 큰 불효가 애들 맡기는 거라
하던데......
큰스님이 뭔 말씀을 하셨길래
우리 어머님은 지극정성으로 우리 애들을 돌봐주시는 걸까.
당신손자라는 이유만은 아닌데.....
하여튼 큰스님덕분에 난 다시 직장을 다닐수 있었고
어머님이 둘째애도 돌봐주신다며 무조건 애하나
더 낳으라는 압력에 서른셋에 둘째도 낳았고.......
애들걱정 크게 없이 직장생활 하고 있다.
그런데 어머님은 아직도
큰스님과의 대화내용을 나에게 자세히 말씀을
해주지 않으신다.
사실은 몹시 궁금한데.....
이유야 어째든간에 어머님께는 죄송한 마음뿐이다.
연세드셔서 애들 키우면 많이 늙으신다는데..........
정말 많이 늙으신 것 같다.
자식들과 돌아다니시는 것을 좋아하시는
어머님을 위해
이번주 일요일은 가까운 시외로 나갈 기회를
한번 만들어봐야겠다.
사정이야 어쨌든 어머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