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언제쯤이었을까..
아마도 70년대 초반이었던 것 같습니다.
친구들과 수락산에 등산을 갔어요.
때는 겨울이어서 날은 춥고 바람도 불었지만
뜨거운 청춘의 피를 주체하지 못하고
우린 산으로 산으로 내달았지요.
아침일찍 종로에서 집결하여 시외버스를 타고
의정부행 버스를 타고 산으로 향했습니다.
재잘재잘 떠들면서 산으로 올라가는 길.
추운날씨탓에 산에는 눈이 그대로 쌓여있어
길은 미끄러웠습니다.
특별한 등산장비도 없이 그저 만남이 좋아서
함께 다니던 시절이었지요.
정상을 정복하고 내려오던 길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다람쥐처럼 날렵하게 산을 타던
체력이어서 누구보다 앞장서서 걸었답니다.
그런데..
가파른 내리막길에서 함께가던 친구가 말했습니다.
"수니야~ 너 여기서 미끄럼 타고 내려가라--
참 재미있을꺼야."
눈이 수북이 쌓여있는 산길은 정말 스키라도 타고 싶을만치
비탈이 좋아 보였습니다.
"좋았어!! 한번 해보자구~~~"
조금의 망서림도 없이 전 그대로 주저앉아 미끄럼을 탔습니다.
주르르르-----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다.
순식간에 전 바윗덩이 처럼 구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멈추려해도 멈출수가 없는데다 가속도까지 붙어서
쏜살같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여기저기 보이는 나뭇가지라도 잡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너무도 빨리 굴러떨어지는지라 풀한포기조차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를 그렇게 내려갔을까..
저 만치 앞에 커다란 바윗덩이가 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 신이시여..
저 바위에 부딪혀서 콩가루처럼 산산조각이 나면 전 어찌
합니까--
부모님께 효도도 해야하고,
뜨거운 사랑도 해야하고
꿈같은 신혼이라는 것도 지내봐야
하는데...
오우--
제빌 절 버리지 말아 주세요--
드디어-
쿵!!
부딪혔나구요?
아닙니다.
전 어느님의 품안에 안겨있었습니다.
약간의 술냄새와 스피아민트향의 껌냄새
를 풍기는 남정네의 품안에서 스물세살의
내 청춘은 목숨을 건졌던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더이상 무슨말이 필요했을까요.
그저 할딱(?)거리며 그말만 반복하고 있었지요.
그제서야 그남자 절 품안에서 내려놓으며
"조심하십시요...
큰일날뻔 했습니다.."
그러더니 제가 굴러내려온 그길을 오르기 시작하더군요.
아무런 말도 없이 묵묵히....
그사람 올라오던 길에 쏜살같이 내려오는 여자를 보고
아마도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인줄 알았나봐요.
그러다가 안아보니 천상의 여인이 아닌 땅위의 여인임을
알고 포기를 해버린걸까요.
ㅎㅎㅎㅎㅎㅎ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울음소리가 들리면서 친구들이 내려오기 시직했습니다.
나보고 미끄럼 타라고 말한 그 친구.
눈화장이 다 지워져서 팬더 눈처럼 시커멓게 변한 모습으로
엉엉 울면서 그러데요.
"지지배야-- 너 죽은 줄 알았잖어-- 잉잉.--"
그려 넌 울어도 마땅혀.
친구를 생으로 보내버릴려구 했잖어.
안전을 확인한 친구들과 얼싸안고 한참을 생환의
기쁨을 누리다가 보니 어느덧 겨울 짧은 해는
서산에 기울기 시작하고..
우린 산에선 절대로 미끄럼을 타선 안된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은체 하산을 했답니다.
나중에서야 안일이지만 온몸이 얼마나 부딪혓던지
티브에서 보는 폭력남편한테 맞은 모양데로
전신이 피멍으로 얼룩져 있었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저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는 일이지만
그일을 떠올릴 때마다 절 안아서 구해 주었던 그 생명의
은인은 지금쯤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 하고 궁금해집니다.
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얼굴도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보통정도의 키에 선비처럼 조용한 느낌의 남자였던 것
같습니다.
아--
그님은 지금쯤 어느하늘아래서 살아갈까요.
너무도 보고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