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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남자.......


BY 배경순 2000-08-06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곳은 충청남도 태안의 사목해수욕장.
넓다란 해안선 대신 아주 아담한 해변과 소나무들.
그곳에 우리는 두개를 텐트를 친다.
하나는 우리 가족들의 것이고 또 하나는 이웃에서 같이 온 이웃집의 텐트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다.
휴가때라고 해서 가족끼리 합세하여 어디로 떠난다는 것은
어쩐지 뒤부산스러워서 꺼려지곤 했다.

하지만 요번 여름 휴가에 과감히 동행하게 된것은 평소 내 이웃의 절친한 아줌마가 주는 재미있는 '게잡이'의 설명 때문이었다.

그녀의 시댁은 바로 태안의 원북이다.
그녀의 남편이 그곳에서 나고 자랐음으로 그쪽 해변이나 지형에
커다란 자부심이 있었다.

그집 아저씨와는 수다가 길어지는 저녁 퇴근길에 만나면 눈인사만 하고 줄행랑을 치기가 일쑤여서 2박3일 동안 같이 지내는 것은 처음 이었다.

남자는 정말 성실하였다.
내 남자가 두더지 굴같은 텐트속에서 아침이고 점심이고 간에
"밥 줘. 밥 줘." 하고 소리치는 동안 남자는 비가 내릴것에 대비하여 텐트 주변에 흙을 파고, 설것이를 하고, 모자란 식량을 사다날랐다.

우리집 남자는 "안주 좀 만들어봐"하며 꼭 집에서 시키는 것처럼
나를 닥달하는 동안에도 그집 남자는 그저 환하게 웃으며
옆구리에 양동이 하나들고 굴을 딴다고 물 빠진 바다로 나가고
돌아오면 석쇠위에 싱싱한 굴을 올려 놓고 초고추장을 발라주었다.

거기 까지 가서도 일주일치 신문을 다 복습하고,
밥 주면 다시 텐트속으로 퇴근해서 잠을 자는 내 남자는
정말이지 밉고도 싫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날밤, 우리는 술이 엄청 취한 남편이 깨세라 조심 조심
그 유명한 '게잡이'에 나섰다.
남자는 밧데리의 용량이 엄청난 후레쉬를 들고 다시 30여분의
차를 운전해 신두리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남자가 불을 밝혔다.
하얀것들은 무조건 주우라고 해서 보니 세상에 바닥에 있는 것이 다 게 였다.
얼마나 빠른지 게를 잡으려고 쫏아 다니는 동안 온몸이 땀에 흠뻑 젓었고, 목숨을 건 사투에 게들은 사정없이 장갑을 낀 손가락을 물고 놓지 않았다.

10여분을 잡았는데 금세 양동이는 가득차고, 게들은 그야말로
다시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빗자루로 쓴다고 하더니 정말 빗자루로 게를 다 잡은 것 같았다.

너무 신이 나고도 추억에 남을 만한 여름밤의 풍경이었다.

아이가 말했다.
'와, 저기 하늘좀 봐. 별이 쏟아지려고 해"
정말 그랬다.
어쩌면 저렇게 많은 별들이 하늘에 있었을까?

깊은밤, 텐트로 돌아와 보니 내 남자는 잘 자고 있었다.

이웃집 남자가 게를 닦으러 간사이 나는 간장을 다렸다.
간장에 지금 자는 남자가 먹다가 남긴 소주 반병과 양조 간장 진간장, 양파, 마늘, 뿌리채 달린 대파, 설탕을 넣고 폭폭 간장을
고았다.

다음날, 내 남자가 물었다.
'저 게는 뭐여...난 왜 안데꾸 갔어'하고.
아이고...뜬금없는 남자. 평소에 잘 했어야지.



**이번 휴가때 정말 아름다운 추억들을 만들어준 나의 이웃집 아
줌마, 아저씨께 정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