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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가방을 든 여자


BY 임진희 2000-10-21

아침 아홉시 사십분 집을 나선다. 검은 바지 검은 자켓 그리고

검은 구두에 검은 백을 든 모습은 흡사 경호원 비슷하기도 하고

갱 영화에 나오는 조직원 비슷한 차림인데 이 복장은 순전히 주

최측이 요구한 복장이기도 하다. 걸음이 항상 곧아서 언젠가 어

느 어머니가 말하기를 사관생 엄마 같다고 농담을 한적도 있는

내 걸음걸이다.운동도 하지 못하고 이번 주일 내내 똑같은 옷을

입고 출근?을 했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바꿔 타면 한시간 정

도 걸린다. 이름 하여 자원 봉사자의 복장이다.나는 내 모습에

무슨 비밀 첩보원 같은 생각이 들어 실소를 금치 못했다. 요며칠

똑같은 옷을 입고 나가는 내 모습을 살펴 본 사람이라면 웬일인

가 의아해 했을지도 모른다. 그 주변은 아셈 때문에 경비도 삼엄

한데 검은 복장을 한 아줌마가 매일 같은 시간에 줄지어 서 있는

전경들의 숲을 헤치고 나아가자니 어찌 기분이 이상 했다.비밀

첩보원이라도 된 기분인데 실은 내가 하는 역할은 일본어 통역

일이였다.그것도 자원 봉사라는 이름을 달고 ..아셈 주최측이

아니고 백화점에서 뽑은 손님들을 위한 통역이였다.기회가 주어

져서 잘은 못해도 해 보는 것도 경험이 될것 같아 모든 스케줄?

을 뒤로 하고 출근을 했다. 십칠일 부터 근무 했는데 그날은 별

로 말할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 영어 담당 파트너와 살아가는 이

야기만 나누었다.점심 시간이 되자 구내식당으로 내려 갔는데 메

뉴는 두종류 였다. 육계장과 김치 볶음밥이였는데 나는 김치 볶

음밥을 선택 했다.맛은 그런대로 괜찮았다.잘못 들어간 식당의

음식맛 보다 훨씬 낫다고 할까.

육백명의 직원이 식사한다는 그곳은 영양사의 손길이 닿은 것이

맛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외출 하지 않으면 매일 집에서 혼자 밥

을 먹는데 많은 사람과 먹으니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전업주부

라서 더욱 그렇게 느끼는지도 몰랐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세시

까지 근무 하면 내 할일은 끝이였다.오후 담당은 일곱시 반까지

다. 나는 처음 오전에 운동도 하고 오후에 일을 할까 하고 생각

도 했지만 원래 오후 여섯시 이후에 혼자서 나가는 일이 없어서

늦게 들어오는일이 번거롭게 생각되어 오전을 택했는데 역시 잘

선택 했다. 왜냐하면 오후 담당은 끝날때까지 맨입에 앉아있다

그냥 퇴근 한다고 했다.우리는 매일 메뉴를 바꿔 가며 밥을 먹었

는데...

김을 사러온 일본 남자를 만났다. 그는 구이김을 샀는데 먹기좋

게 잘라 놓은것 만을 샀다.자르지 않은 김은 멘도우쿠사이까라

{번거롭다고} 싫다고 했다. 외국인 모두에게 선물로 주는 펜단트

를 주니까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날은 끝이 났다

오늘도 직원 식당에서 짜장 ?쳄슝娥?우거지 갈비탕이 있었는데

나는 우거지 갈비탕을 먹었다.러시아 사람들이 직원들을 위해 노

래와 연주를 들려 줬다. 점심을 먹으며 노래를 감상하는 즐거움

을 느끼기도 했다.우리 노래도 들려 줬고 귀에익은 곡을 연주를

해서 밥을 먹는 중간에 박수도 쳤다. 수정과로 입가심 까지 하고

매장으로 올라왔다.일본인 남자 네명이 쇼핑백을 들고 지나갔지

만 액수가 적어서 부가가치세를 되돌려 받을수가 없는 금액이였

다. 준비한 선물을 돌려주니 오늘도 내가 책임질 시간은 끝이났

다. 직원이 나에게 다가와 아셈때문에 여러가지로 손해라는 말을

했다.가뜩이나 경기도 나쁜데 길을 통제 하고 이부제 마져 하니

백화점 측에서는 많은 손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한가지를 위해서

는 다른 여러가지가 손해를 볼수도 있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렇지

만 택시 영업을 하시는 분은 매일 요즘 같으면 일할 기분이 날것

같다고 하는 말을 듣기도 했다. 어쨌건 집에만 있던 나는 이번

의 경험이 새롭게 느껴지고 인생 공부를 했다고 생각 한다.낮에

는 인도네시아 영부인이 휠체어를 타고 쇼핑을 왔는데 자체 통역

이 있어서 우리는 상관 없었다.대체로 아셈 손님들은 쇼핑몰에서

쇼핑을 하고 그쪽에 없는 물건을 사려고 오는 손님들 뿐인것 같

았다. 어제는 어느 스님이 길을 통제 해서 뺑뺑 돌았다며 애꿎은

우리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가끔은 화장실을 묻는 내국인도 있었

다. 외국인을 위한 선물도 모두에게 주는건줄 알고 일부러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앞으로도 기회가 주어지면 내가 할수 있는한

도움이 되는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