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다니는 딸아이에게 역사공부를 시켜주자고 경주로 놀러갔습니다
어디부터 구경할까...연구하다 경주시내에 들어서자 마자 눈에 쏙 들어오는
오능이란델 갔습니다 멀리서도 능의 일부가 보이는 웅장한 왕의 무덤들이 모여있는 오능은 경주를 지날 때 마다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날씨는 좋고 하늘은 푸르고 한산할 정도로 사람들이 없어서 낮선 땅에 온 느낌이었습니다 앞을 봐도 사람들 뒤를 봐도 사람들이 바글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보니 저는 그렇게 사람들이 없는 곳엘 가면 기분이 너무 좋더라구요 아이들도 신이나서 넓은 잔디받위를 마구 뛰어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잠깐 제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갑자기 아랫배가 사르르 아파오더니 걷잡을 수 없이 볼일이 보고 싶어진겁니다
둘러보니 입구 쪽에 화장실이 보이더군요 남편에게 아이들을 보라고 이르고 화장실로 휘리릭 뛰어갓습니다 화장실은 작았고 아주 지저분하지도 그렇다고 깨끗하다는 인상도 풍기지 않는 그저 그런 곳이더군요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문득 휴지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 것이었습니다
여행다니다 보면 휴게소나 관광지의 화장실이 예전보다 굉장히 깨끗해 진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늘 아쉬운게 휴지가 없는 경우가 많더군요
워낙 사람들이 많이 들락거리다 보니 휴지 사용량도 어마어마 할것이고 그러니 제때 제때
비치해두기도 쉽지 않겠지요 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사실 휴게소 휴지는 마구 마구 써재껴야 되는 걸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좀 많은가요?
없어지는 순간 착 갖다놓기가 보통어려운게 아니겠지요
암튼 제 예감은 바로 적중을 했답니다 화장실이 두 개인데 아무데도 휴지가 없더라구요
난감했지요... 그러나 아시다시피 화장실 들어갈때맘하고 나올 때 맘이 다르다는소리가 왜 있겠습니까? 그까짓 휴지가 없다고 안봐도 될 볼일 이라면 그런 말도 안생겼겠지요?
볼일을 볼까 말까 하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만치 급했던 저는 난감한 가운데 일단 볼일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잠시후 몸서리 처지는 고민의 순간을 맞았던 겁니다
누구라도 와주면 좋으련만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오능에 와 있는 사람들은 열 손가락에도 못 미쳐 보였고 그중 여자는 또 절반 ...그러니 그 작은 수 중에 그 시간에 화장실에 올 사람이 있을거라는 생각이 안드는 겁니다
생각이 그기에 미치자 왜 여긴 사람들이 안 올까 산더미 만한 능만 다섯 개 덩그러니 있어서 볼게 없다고 여겨서 안오는 사람들이 참 안타깝더군요
이곳에 있는 다섯 능은 신라시조인 박혁거세왕과 제2대 남해와 제3대 유리왕,
제 5대 파사왕과 혁거세왕의 왕후인 알영왕비의 능으로 전해옵니다
당연히 많은 전설이 깃든곳이고요 아이들에게 꼭 한번 보여주고 들려줘야 할
이야기와 유적지라고 생각합니다
이런곳엘 안오고 도대체 어디를 가는거야 싶은게 막 짜증이 날려고 하더라구요
옆길로 빠졌습니다만 암튼 전 독자적으로 해결해야할 운명에 처해진 것입니다
저는 찬찬히 제 의복을 점검해보았습니다
긴팔 남방하나 ,,,바지하나...그리고 팬티스타킹..스커트. 팬티. .. ....
이중 팬티 스타킹은 재질이 재질이니 만치 제외시키고 남방과 스커트 역시 몸에서 떼어내면 스트립쇼를 해야할 판이니 당연히 남은 건 팬티 뿐 이더군요
일단 비장의 결심을 하고 10분만 기다렸다가 남편이 안 오면 실행에 옮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기다리다보니 문득 인도여행기를 읽은 기억이 파팍 나더라구요
인도를 여행하시는 분들은 화장지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데 이유는 그 쪽 사람들이 모두 손으로 뒤처리를 하기 때문이라는 거죠
밥 먹는 손은 오른손 처리하는 손은 왼손 ,,뭐 그렇다는군요
그런데 그게 우리가 보기엔 지저분해 보여도 자기네는 엄청 깨끗하다고 우기고 있으며 오히려 우리가 지저분하다고 말한다니....음 저는 잠시 그들의 말이 정말인지 실험을 해볼까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세면대가 바로 옆에 있으니 걱정도 없구요 들어올 때 보니 비누도 있더라구요 그런데 제가 오리지날 한국인이라 그런지 그 실험이 참 어렵더군요 손이 뒤로 갔다간 돌아오고 하는데 제 손이라고 다 제 맘대로 안 된다는 걸 첨 알았습니다
저는 제 자신에게 최면도 걸어보았습니다
(이 순간 너는 인도인이다..얍! 얍!)
그러나 최면은 안 걸리고 몸이 덜덜 떨리는 것이었습니다
양다리에 쥐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인기척이 나면서 발자국 소리가 난 것입니다 사람인기척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있을까요?
귀를 기울이니 옆 화장실을 똑똑 노크하고 들어가고 있더군요 저는 잠시 그사람이 볼일을 보는 시간을 준 후 이윽고 아주 정중하게 말을 했습니다
(저기요 혹시 휴지 있으세요?)
(홧? ?아유 토킹 어바웃?)
오 마이 갇! 저쪽은 외국인이었습니다 표를 끊을 때 같이 끊고 들어온 키 크고 뚱뚱한 외국인 부부와 어린 딸이 있었는데 바로 그 부인이 분명했습니다
젠장...이 어려운 시기에 할 줄도 모르는 외국말까지 해야하다니...그러나 그렇다고 천우신조의 기회를 놓칠 제가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덩치가 덩치니 만치 분명 휴지를 듬뿍 갖고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저는 우선 인사부터 했습니다
동방예의지국 국민 아니겠습니까?
(아....핼로우? 하우 아유?)
(오 예 아임 파인 앤디 유?)
(아임 파인 ,,)
이제 휴지를 좀 달라고 해야겠는데 순간적으로 휴지라는 단어가 생각이 안나더군요
할 수 없이 휴지는 한국말로 해보았습니다
(두 유 해브 휴지?)
( 홧? 홧 디더 유 세이? )
무슨 소리 냐고 묻는 겁니다 사실 전 지금 육개월째 영어 회화를 배우고 있습니다
3개월은 폰 스쿨이라고 미국에서 꽤 살다온 분에게 직접 배우기도 했구요 지금은 책으로 혼자 하고 있지요
그런데 6개월 배운 실력으로 휴지 좀 달라는 소릴 못하고 있으니 땅을 칠 노릇이었습니다
저 쪽 말을 알아는 듣겠는데 말이죠 알아 들으면 뭐합니가 저쪽에서 알아듣게 해야지
양다리가 이미 감각이 없을 만치 저려오는데 전 휴지라는 영어 단어를 생각해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저쪽은 그새 볼일이 끝났는지 벌써 물을 내리고 있는겁니다
그러니 더 이상 생각할 겨를이 없지요 그녀가 나가면 큰일이니간요
전 소리쳤습니다
(익스큐즈 미)
(예스 홧 이즈 잇?)
전 제발 휴지 비슷한 단어라도 더 오르라고 속으로 외치며 그녀에게 제 의사를 전달하기위해 그리고 그냥 나가는걸 막기위해 떠들어야했습니다
(아 익스큐즈미 벗 두 유 헤브 휴지? 유 노우 휴지? 아 아이엠 소리 벗 켄유 기브 미 휴지? ) 그녀는 말이 없었습니다
저는 불안해서 소리쳤습니다
(핼로/ 헬로우~~~?)
(.........)무심하게도 반응이 없더군요 너무나 낙담도 되고 화도 나서 내가 이백원짜리 휴지라도 하나들고 다닐걸 하고 생각하다가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그때 문득 갑자기 티슈라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겠습니까?
티슈 티슈 하루에도 수십번 쓰는 이 단어가 말입니다
뿐입니까 토일럿 페이퍼 ,,,토일럿 티슈...연달아 휴지의 모든 단어가 생각이 나고 있었습니다
항상 이렇게 뒷북 치는게 저의 특기인 것을 또 한번 깨닳아야 햇습니다 아주 씁쓸하게
마지막 방법을 쓰려고 하는데 노크 소리가 똑똑 나더니 문 아래 한뼘이나 되는 빈 공간으로 티슈 한뭉치가 들어왔습니다
오 마이 갇! 저는 하마터면 울 뻔 했습니다 영 가버린 줄 알았던 그녀가 가서 티슈를 갖고 온것입니다
제가 티슈라는 단어를 안 써도 그녀는 눈치로 때려 잡았던 것입니다 하기사 화장실에서 그렇게 애걸 복걸 할 일이 뭐있겟습니까만....
제가 무사히 사태를 수습하고 나오니 문 밖엔 안면있는 금발의 여성이 환하게 웃으며 서 있었습니다
(땡큐 베리마치 ! )
(유얼웰컴 !)
사는 곳과 생김새는 달라도 사는 모양은 다 같은가 보다고 여겨지며 그녀가 참 정답게 여겨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와 악수를 나누고 쳐다 본 하늘은 아까 보다 더 푸르고 공기는 더 맑았습니다
좀 전 까진 오능에 사람들이 너무 안온다고 걱정이 되더만 무사히 나오고 보니 웬걸
탁 트인 공간에 사람들이 몇 안되는게 너무 좋아서 저 멀리서 뛰어 다니는 아이들에게 저도 모르게 소리쳤습니다
(얘들아 맘껏 뛰어다녀라...어디서 이렇게 뛰어다녀보겠어...와 너무 좋다...)
아무리 뛰어다녀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는 이 없는 조용하고 넓은 잔디 깔린 곳에서 우리 가족은 왕족처럼 누비고 다니며 우리의 이야기 인냥 옛 전설을 도란거리다 왔습니다
영우맘으로 또 네임을 바꾼 갈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