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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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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의 산책


BY 얀~ 2002-01-07

늦잠을 자고 있는데 딸이 침대 앉아 심심하다고 밖에 나가자고 했습니다. 잠자고 밥먹고 또 잤습니다. 어제 밤 빈속에 술 서너잔 받아 마신게 탈이었는지, 어지러워 일어나기 힘들었습니다. 비틀 거리며 세수를 하고, 내친김에 남편의 생일을 준비해주려고 나섰습니다.

딸의 머리를 빗어주고, 옷을 입고 손을 붙잡고 여덟살 딸과 동무해 산책을 나섰습니다.
-우리, 케익도 사고 갈비도 사자
-좋아
편지는 일단 전해줬고, 산에 가려고 계획을 세웠었는데 몸이 안따라주니 가족끼리 편안한 시간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나란히 걷고 있는 그림자가 편하게 따라오고 날씨도 포근하여 외투를 벗어들었습니다.

신탄진초등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엄마, 목마르다 물 마시면 좋겠네
-응, 뭐 마실래 콜라?
다정히 음료수 캔을 들고 교정에 들어섰습니다. 이 학교는 친정아버지가 다녔으며 내 아이들 둘이 다닙니다. 오래된 나무도 있고, 축구를 하는 아이들의 공을 여러차례 차넣어주며 눈을 돌려봤습니다. 좋아하는 딸아이의 모습과 재잘거리며 말하는 걸 들어주었습니다.
-선생님이 무서워, 어떤 남자애는 선생님이 혼내면 웃는다. 속으론 무서워 하는지 모르지만, 혼나도 웃어.
-그앤 맨날 혼나겠네
-그렇지, 전학 온 앤데
종알 종알, 얼마만에 딸과의 오붓한 산책이란 말인가.

아스팔트가 깔린 곳으로만 걷다가, 샛길을 발견했습니다. 사실은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길래 호기심이 발동한거였습니다.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옛고향을 떠올렸습니다. 삼십년전의 내 고향과 흡사한 곳이 남아 있음에 놀랐습니다.
-엄마 고향이 이랬어. 담장대신 대나무나 탱자울타리였어. 화장실은 똥을 ?렝만?퐁당 소리가 났구....

-엄마 케익은 빵굽는 나라에서 사면 되구
들어서 케익을 고른다.
-네 맘에 드는 거 골라봐라
-이거
포장을 하고 돈을 치룬다
-이건 내가 들테니 엄마는 갈비산거 들어
골목 골목 호기심에 바라다보니 나도 어느덧 8살로 돌아간 기분이고, 딸아이와 친구가 된거 같아 좋았다.


고향으로의 산책


탱자나무 울타리 돌면 8살 딸과 친구가 된다. 딸이 다니는 신탄진초등학교가는 길목 안쪽, 고층건물에 싸인 가려진 고향이 있다. 대청에 올라서면 파도치는 대숲이, 참새가 내려 앉은 햇볕드는 마당에 강아지가 짖어대며 실랑이하던 곳.

딸의 손을 잡고 나즈막한 언덕에 올랐다. 비석이 콘크리트 마닥까지 파여 쓰러진 곳, 토사들 슬픔처럼 흘러내리고 호기심 반반 올리서니 이곳 저곳이 파였고, 겨울 채소가 봉분의 그림자에 가려 싸늘했다. 이곳 주인은 어디로 옮겨졌을까, 곧 번듯한 건물이 들어서겠지, 산사람의 건물을 위해 죽은이가 떠난 곳.

건물들에 숨은 낮은 집들, 허리 꺽인 어른들이 낮은 집을 지키고, 비가새면 버린 장판 쒸우고 돌을 얹거나 못질하여 성한 곳 없는 30년전 사진속 내 고향을 닮은 곳, 고향이 세월이란 그림자와 함께 지붕에 올라 앉아 무겁게 내려앉은 곳.

기형의 집들, 도로에 한쪽이 잘려지고, 개발로 담장이 넘어지면 나무로 지탱하거나 굵은 철사로 얽고, 폐벽돌을 쌓아올려 요새가 된곳, 외로운 섬마냥 떠있는 곳.

페벽돌, 장판, 나무, 돌들을 쌓아 조만막한 텃밭을 일구고 오랜새월을 그렇게 일궈진 요새속 지붕만 보일랑 말랑한 폐품수집으로 경비를 세운 야릇한 곳.

살아 있는 사람보다 죽음이 가까운 곳, 현재보다 과거의 추억이 가까운 곳, 땅주인과 건물주가 달라 헐거나 새로 지울수 없는 그런곳, 추억 보존 지구로 형성되어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에 바람만 공허한 손님이 된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