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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는 겨울과...일상(4)


BY 들꽃편지 2001-02-25

눈이 부실부실 내린다.
떡가루 뿌려놓듯 눈이 내린다.
아마도 이 눈이 마지막일듯 싶다.
부엌창을 통해 아랠 보면서 잠시였지만 짧은 생각과
깊은 생각을 한다.
짧은 생각은 또 눈이 오는구나였고,
깊은 생각은 내 심연을 완전히 채울 때까지 눈이 쌓이고 쌓여
나를 많이도 아프게 하더니...
기다리는 사람은 소식도 없고,
기다리지 않는 눈만 안개처럼 내리는구나.내리는구나...
눈이 이내 비로 바뀌어 살풋 쌓였던 눈마져 데리고 갔다.

막내 아들은 내복만 입고 오락을 하고 있고,
큰 딸은 힙합 청바지를 입고 컴퓨터에 앉아 있다.
늦은 아점을 먹고 설거지를 해 놓고 난 창밖을 내다보았다.
다시 겨울인양 눈내리는 창밖을...

찹쌀가루에 계란 하나를 틱 깨서 넣고,
소금과 설탕을 적당히, 우유로 반죽을 한다.
아이들 간식을 만드는 중.
초2학년인 아들은 신나서 계란 꺼내 주고,우유 갖다 주고,
식용유 꺼내 오고,자기도 반죽하는 거 도와 준다고 손 씻고 그런다.
중학생인 딸은 H.O.T 보느라고 그 자리에 꾸부정하게 앉아 있다.
그 놈의 H.O.T를 그냥...헤채설이 있던데...그랬으면 오죽 좋아.
내 속으로만 열내고 있으면 뭐하남! 저 지지배는 꿈쩍도 않는데...
에구! 반죽이 지네.
후라이팬에 기름 두르고 반죽을 한 입 먹기 좋게 떼어서
동글납작하게 만들고 그 위에 건포도 다섯알 얹어서 노릿노릿하게
구우면 맛있는 화전 아니 건포도전이 된다.
화전은 진달래꽃으로 만들지만 우리집 화전은 건포도를 얹어서
만든다.
진달래꽃으로 부친 화전은 언제 먹어 봤나?
어릴적 고향에서 지천인 진달래를 소쿠리 가득 따서는 할머니께서
곱고 고웁게 부쳐 주셨었지.
정발산 틈틈이 진달래가 피면 아이들과 올라가기로 했는데,
조금만 기다리면 화들짝 피겠네.

우유와 함께 건포도전을 먹었다.
아이들이 너 오랜만이다하며 맛있다하며 잘도 먹는다.
지식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것이 제일 행복하다더니...
저절로 입이 흐뭇자를 만든다.

또 설거지를 하러 부엌창에 선다.
눈이 왔었는지 비가 왔었는지...
밖은 어제처럼 우요일이다.

오늘는 토요일이라 한복집에 안나가는 날이다.
토요일과 일요일과 빨간 글씨는 대부분 쉰다.
직장이라 할 수 없는 일터이지만 쉬는날은 빼먹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날은 늘어지게 누워있고,퍼질러 앉아 있다가
앞베란다 창이나 부엌창이나...창가에 한참씩 서 있는다.
네모난 아파트에 살며 네모난 창가에 서서 네모난 하늘을 본다.
11층이라 똑바로 서서 보면 하늘만 보인다.
땅을 보려면 창문에 바짝붙어서 내려다 봐야 나무가 보이고,
도로가 보이고 앞뜰이 보인다.
맨처음 이사와서는 앞베란다를 나가면 어지러워서 발발발 떨었는데
이제는 창문에 매달려 유리창도 닦을 수 있다.

내일은 다시 추워진다고 한다.
겨울이 이대로 떠나기 아쉬운가보다.
겨울이 며칠만 더 유리창에 머무르고 싶은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