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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의 기일


BY cosmos03 2001-12-28

오늘은 어머님의 기일이다.
참 힘들게도 사시다가 여생을 마치시고, 그렇게 조용히 숨죽여 떠나가신...
왜 그리도 여생을 힘들게 사셧는지.
당신속으로 8 남매를 두셧고.
남편의 외도로 인해 아들 하나를 더 얻고는
힘들게 힘들게 마음고생만을 하시다...
어느날 내 눈앞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셧다.

내가 기억하는 어머님은 참으로 고지식해서는
상대방을 무던히도 답답하게 하셧지 싶다.
한자락 급한 성품을 갖고계신 당신 남편의 비위를 맞추지못해 설움도 많았고.
무슨 신내림이라는것도 있어서는 무녀 불러다 푸닥거리도 많이 하셧다 한다.
이름도 없이 앓고있는몸.
시름거리며 매일을 편치않으시니 집에 들여다 푸닥거리를 한 무녀들만 해도
그 숫자가 참으로 많았다한다.

그저, 있는듯 없는듯. 어머님은 성정급한 남편의 그늘에
가리워서는 제대로의 숨 한번을 크게 쉬시지도 못 하시고는
설움과 가슴에 응어리만을 안고 가신분이다.

처음, 시댁에 인사를 하러가니 어머님은 나를 외면 하셧다.
그냥...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눈이큰것도 못 마땅 하셧고.
얼굴에 큰 흉터가 있는것은 더더욱이 못 마땅하신대다.
궁합이라는것을 보니 그리도 우리 사이가 좋지 않다고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신다.
모처럼 뵙고는 큰 절이라도 올릴라치면
어느새 당신의 몸은 뒤쪽으로만 보여주셧던...

어렵사리 결혼식을 마쳤어도. 어머님의 나에대한 미움은 가실줄을 모르셧다.
이유는..
다른사람처럼 평범하니 시집을 왔으면 후사를 이어줘야하는데.
내겐, 도통 아이가 생길 기미가 보이질 않는것이다.
유난스레 둘째 아들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음에도.
미운 둘째 며느리에게서는 태기가 보이지를 않으니.
입장이 바뀌었어도 과연 나도 어머님처럼 며느리를 그리 힘들게 대했을까?
힘들게 보낸 7 년세월.
그동안의 고통과 설움은 말해 무엇하랴?
시댁에라도가서 때가되어 밥이라도 한술 먹으려면..
" 넌, 시집오면 남들 다하는 밥값도 못 하면서 밥이 목으로 넘어가냐? "
아무리 배가 등 까죽에 붙었어도.
쉽게 그 밥은 내 목을 타고 내려가지 못 했다.
죄인처럼. 아니, 죄인으로...
푹 숙인 고개.
흐르는 눈물.

그렇게 보내는 세월속에 어머님은 쓰러지셧다.
중풍.
바람을 맞은 것이다.
그때부터 어머님은 뇌 활동이 멈추고. 유년기의 어린아이로 돌아가신것이다.
거동을 할수도. 당신 손으로 음식을 먹을수도.
대, 소변 조차도 가릴줄도 모르는....
마냥 어린아이가 되어 버리셧다.
그럼에도 어쩌면 그 기억하나는 확실히 남아계신지.
내게 자식없음에 나만은 똑 바로 바라보지를 않으신다.
갈때마다 기저귀도 갈아드리고.
밥도 떠서 먹여드리고. 세수도 발도 모두 닦아드려도.
질질 흘러내리는 침을 닦을수조차 없는몸으로도.
매번...내게 흘겨지는 눈은 어쩔수가 없다.

신이 도왔을까?
어렵사리 내게서 딸 아이를 하나 얻을수 있었던것은?
아이를 안고 어머님의 코 앞에 들이대드리니...
어눌한 말투로 어머님은 내게 물으신다.
" 아들이냐? 딸 이냐? "
그 말이었다.
딸 아이라는 그말씀에...우리 어머님.
고개를 획~ 돌려 외면 하신다.
달고 나오지 않았다고... 하나 달고 나왔어야 당신의 손자라고.
당신도 여자이면서...
아니, 그 보다 7 년만에 본 아들의 자식인데...

그땐 설웁지 않았다.
어머님의 그 투정도 내겐 그냥 귀엽게만 보일뿐.
나도 당당히 유씨 집안에 들어와 밥값을 했으니 떳떳하다.
어머님께 딸이 아니라 그 반쪽이라도 당당할수 있었다.
하지만 어머님은 아들이 아니라는 서운함을 끝내 감추지 못 하신다.
고사리손이라도 어머님의 손안에 담아드리면...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시는 걸까?
매몰차게 뿌리쳐 버린다.
24 시간을 그냥 누워서만 생활하시면서도...
내가 당신의 대, 소변 부터 시작한 그 시중들을 다 들어드려도 말이다.
다행인것은 그 때는 아버님께서 생전에 계셧기에
모든 어머님의 수발을 아버님께서 다 들으셧다.
지청구를 밥 먹듯 하시면서도...

딸아이를 낳은지 6 달만에.
내 시어머님은 다시는 못 오실곳으로 그렇게 연기처럼 떠나시었다.
끝내, 따스하게 내 손한번을 잡아주시지 않은채로...
며느리손도, 손녀딸의 손도. 끝끝내 매몰차게 뿌리치시고.
내 가슴에 설디 설은 응어리만 남겨주신채로.
어머님의 연세 59 세 였다.
살아생전 당신 스스로가 항시 말씀하시길.
" 난, 환갑도 못 먹어보고 갈꺼야 "
를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더니.
무녀들과 가까이 그렇게 친구가 되시더니 당신의 운명을 스스로 점 치신것인지.
어머님의 예언대로 환갑도 못 자셔보고는 그렇게 북망산천을 넘어가신거다.

벌써, 어머님이 돌아가신지가 12 년.
어머님 돌아가셔서 삼일장을 치루도록 내내 날씨가 매서웠는데...
바람불고 눈 오고.
뼈 속까지 에이도록 추운 날씨는 장례식 내내 사람들의 입술에 꽤나 오르내렸는데.
오늘은 날씨가 어떨래나?

부지런히 집안 치우고 준비해서는 큰 댁으로 나서야만 한다.
그렇게 몇번의 어머님 기일을 보내도 새삼스러울것이 없었는데..
금년 어머님 기일은 지난일이 자꾸만 생각이 난다.
이 다음...
아주, 이 다음에
나 역시도 이곳을 떠나고 나면. 어머님을 만나 뵐수 있을까?
그때는 또 그때대로 아직도 넌 아들을 못 낳았느냐고 책망하시지는 않을까?
그냥, 우리 부부.
예쁘고 고운 딸 아이 하나로 만족하고 사는데..

어머님! 맛난거 많이 준비해 놓을께요.
이따가요 아버님과 손 붙잡고 오셔서는 맛잇게 많이 잡숫고 가세요.
어머님의 미움만을 받고 살아온 둘째 며느리...
손녀딸과 함께 찰찰 넘치도록 하나가득 어머님께 잔 올릴께요.
이제 그만 노여움과 미움... 푸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