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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꽃과 12월을 보내며...


BY 들꽃편지 2001-12-28



가을이면 길가 트럭에서 국화꽃 한 다발을 사곤했습니다.

트럭은 꽃차가 되어
하루종일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해 뒷포장을 걷어 놓습니다.
허름한 아저씨가 운전석에서 나오시고
난 자주색이나 보라색의 자잘한 소국을 사곤하지요.
신문지로 둘둘말은 가을날의 국화...
난 가을을 하나가득 가슴에 안고 집으로 옵니다.

외출복도 갈아입지 않고 친정에서 고추장을 담아왔던
항아리에 물을 받아 꽃을 꽂고
몇가닥은 줄기를 짧게 잘라 유리컵에 꽂아 식탁에 올려 놓습니다.

항아리에 꽂은 국화는 오디오 스피커 위에 올려져 있습니다.
텔레비젼을 보면서도 국화꽃을 먼저 보았고
신문을 보면서도 국화꽃을 한번씩 보았고
간식을 먹으면서도 국화꽃에게 먼저 보여주고 먹곤 했습니다.

식탁에 꽂은 꽃을 마주보고 있으면
혼자 있어도 다정한 친구와 함께 앉아 있는 듯 합니다.
차를 마시면서도 식탁에 앉아 거실창을 바라보면서도
누군가와 함께 있는 듯 다정한 시간이 됩니다.

가을은 멀리 갔습니다.
국화꽃도 쓰레기통으로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비어있는 항아리는 거실 구석지에서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멍청하게 앉아 있고
유리컵은 가끔씩 맥주를 마시는데 쓰여지곤 합니다.

한 해가 갑니다.
이맘때는 고향집 처마밑 시래기엔 싸랏눈이 쌓이고
신발을 벗어 놓는 봉당에도 싸랏눈이 들이치면
볏짚으로 만든 몽당비로 할머닌 자꾸만 자꾸만 빗질을 하시겠지요.

도시엔 올 해 눈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내리긴 했었는데 감질나게 내려서 남아있는 눈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눈도 내리지 않는 겨울이 깊어가고
눈도 내리지 않는 12월이 갑니다.

겨울 국화는 꽃트럭에 없습니다.
유리샷시가 잘 되어 있는 꽃집에 있을겁니다.
겨울국화는 겨울대로 아름답겠지요.
한다발을 가슴에 앉고 집으로 들어오는 길은 가을길과 분명 다를겁니다.
비어 있는 나뭇가지 사이로 겨울하늘이 걸러지지 않고 보일 것이고,
여백이 많은 겨울...
그래서 아름답고 침묵하는 시간이 많은걸까?

국화 향기에 취해 무얼할는지....
겨울이기 때문에,
한 해가 얼마남지 않은 12월이기에...

외롭고 슬프고 고단하고 힘들었던 일 모두 다 잊으려 국화를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