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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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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쵸코파이,,우유,,,,그리고 눈물,,,,,


BY 장 마 2001-12-23

의정부의 306보충대에서 백골 부대로 자대배치를 받은 우리 250명의 훈련병들은 우

리를 수송하기 위해 부대 측에서 빌려 놓은 '아리랑 관광 버스'에 나눠 타고 철원으

로 떠났다.

말로만 듣던 전방으로 향하면서 소문으로 익히 들은 '백골부대'에 대한 공포감을 서

로 나누던 우리는 38선 휴게실을 지나 '여기부터 38선입니다'라는 안내문을 넘어서

30분이나 계속 북으로 달려가는 버스 안에서 점점 말을 잃어갔다. 모두들 말을 안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 '이러다 북으로 넘어가는 거 아냐'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

었다.

창밖을 보며 어처구니없어 하던 우리는 길거리마다 '코카콜라' 대형간판 크기 만하

게 걸려져 있는 해골들을 보며 오싹함을 느꼈고, 가장 큰 해골이 걸려 있던 '신병

교육대'라는 곳에 들어서면서 그 앞에 걸려져 있던 구호를 보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

았다.

'민간인에서 정예 전투 요원으로... 백골이 되자!!!'

젠장......


이윽고 버스가 멈추더니, 버스 문이 열리고 해골 모양의 하이바를 쓴 조교가 버스에

승선했다.

눈이 안 보일 정도로 하이바를 깊게 눌러 쓴 그 조교는 우리를 보고 나즈막히 말했

다.

"연병장에 4열 종대로 집합하는 시간 25초 준다. 만약 늦는 새끼가 있다면..."

그렇게 말한 후 조교는 하이바를 살짝 쳐들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말했다.

"죽. 인. 다. "

우리는 세면백(수영가방이랑 비슷한 크기의 세면 도구가 담겨 있는 가방)을 허리에

찬 채로 졸라게 버스에서 튀어내려야 했다... 왜냐면... 조교의 눈은 인간의 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우린 태어나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공포감에 시달리며 생활을 해야 했다.

우리들에게 조교들은 대학교에서의 교수 꼬붕인 만만한 '조교'가 아니라

'하이바'를 깊게 눌러 쓰고 구타라는 먹이를 찾아 헤매이는 '하이에나'였다.

그들은 무슨 일이든지 우리들을 심한 욕과 구타로 윽박질렀다.

"옷 벗는데 30초 실시!!"

"샤워 하는데 3분 실시!!"

"전투화 끈 매는데 10초 실시!!"

그들은 시간내에 우리가 완수하지 못할 때엔 자신이 쓰고 있는 하이바로 우리가 흔

히 말하는 '주탱이'를 골프 풀스윙하듯 후려갈겼다. 무방비 상태로 맞은 아이들은

입안이 다 터져 며칠동안 밥도 제대로 못 먹을 정도였다.


이렇게 숨쉴수 없는 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

중요한 훈련을 눈 앞에 두고 내무반에서 조교들이 훈시를 하고 있었을 때였다.

훈련병 시절 중 가장 중요한 훈련에 대한 설명이었기에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살벌했었고 모두들 조교의 일거수 일투족에 눈빛을 초롱거리면서 집중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뿌우우웅~~~!!"

난 내 옆에 앉아 있던 넘의 히쁘 쪽에서 터져 나오는 이 소리에 흠? 놀라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 순간, 모든 훈련병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오는 것을 느꼈고, 난 '무궁화 꽃이 피

었습니다' 놀이를 하듯 돌처럼 굳어 버렸다.

"......"

"......"

숨막히는 정막이 흘렀다.

방구를 꾼 내 옆의 놈은 물론이고...

방구소리에 놀라 이쪽을 쳐다보는 훈련병들의 모든 눈엔...

공포의 '하이바 주탱이'가 날라올 것이라는 공포감이 가득했고...

방구 소리가 인근 지역에서 들려 주범으로 오해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과 지독한

방구냄새가 코로 밀려 들어와 숨도 제대로 못 쉬는 나는 두 가지의 복합적인 고통

앞에 정신이 아득해져갔다.


"흐음..."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구타에 예외를 두지 않던 조교가 아무 말 없이 하던 말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 역시 생리현상은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였던가.

기가 막힌 표정으로 내 쪽을 쳐다보던 훈련병들은 안도의 눈빛으로 시선을 거둬들였

고...

나 역시 안도의 눈빛으로 내 옆에서 방구를 낀 진짜 주범을 쳐다보았고...

내 옆에서 방구를 끼고 본인 스스로가 더 놀랬던 그 놈 역시...

나를 안도의 눈빛으로 쳐다보며 한숨을 쉬는 찰라에...


"푸식... 푸식... 푸시식..."

오옷!!!!!!

이 미친 자식이!!!!!

너무나 안심이 된 나머지 기도 안 막힌 방구소리를 내었던 것이었다!!!


더 이상의 용서는 바랄 수도 없었다.

평소 깊게 눌러 쓴 하이바에서 눈동자를 발견할 수 없던 조교가

하이바를 벗어버리고 내 쪽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분명 '어느 자식이야!!'라고 묻는 게 역력하였는데...

그 눈빛에 나는 본능적으로 '185번 훈련병 이!원!영!'이라는...

내가 범인임을 자수하는 관등성명을 대 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 순간...

"휘이익!!!"

빛보다도 빨리 하이바가 내 주탱이를 날려 버렸고

그 뒤로 태권도 3단을 자랑하는 조교의 이단 옆차기가 내 가슴을 즈려 밟았다.

그리고 약 10분 동안...

내무반에서는 무협지에서나 볼 수 있는 모든 초식들이 전개되었다.


허공답보 (허공에서 실전되는 초절정 고수들의 경공술. 내공이 바탕되야 됨)

금나수 (소림에서 사용하는 무술로 손으로 잡아 공격하는 기술)

태극권 (무당에서 사용하는 무술로 남의 힘을 빌려 공격하는 기술)

복호장 (아미파에서 사용하는 무술로 호랑이를 잡을 때 쓰는 장법)

매화권법 (화산파에서 사용하는 매화의 모습에서 유래된 권법)


물론 위의 말은 웃자고 한 말이지만-_-...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렇게까지 맞을 수 있었는가 싶을 만큼 참 많이 맞았다.

언제나 한탄스러운 건...

그런 순간에 기절이라도 해서 의무대로 실려가면 좋으련만...

내 맵집은 그걸 다 맞으면서도 더 맞을 수 있다는 게 슬픈 현실이었다-_-


그 뒤로...

그는 나를 자신의 생명의 은인으로 떠받들고 살았다.

친구를 위해 기꺼이 희생한 나의 높은 인격을 존경한다며...

그는 자신의 종교를 팔아서 얻은 초쿄파이를 내게 갖다 주었고...

아침식사 때 딱 한번 나오는 피같은 250미리 우유도 가끔 내게 주었다.

내가 아무리 사양해도

'개도 은혜를 갚는다'라는 말로 내게 강권을 했다.

시골에서 자랐고 고등학교도 농업고등학교를 나온 그는

농사짓는 분들의 그 정직하고 성실함을 그대로 본받았던 사람이었고

앞으로 훌륭한 영농지도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는

내 인생에서 가장 순박했다고 기억되는 사람이었다.

자신은 언제나 남을 위해 댓가없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으면서도

자신을 위해 자그마한 은혜를 베푼 사람에겐 두고두고 갚는

그야말로 훌륭한 인격체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 힘든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훈련소 생활만큼이나 힘들었던 군생활을 거의 마쳐가던 어느 날...

제대를 얼마 안 남겨 놓고 군 역사상 기억될 수해가 일어났었다.

그때의 물난리는 내가 쓴 '소 떠내려가는 거 봤니'라는 글에 잘 나와 있지만

정말 '소가 떠 내려가는 것'을 봤을 정도로 대단한 물난리였다.

이 물난리로 수 많은 군인들이 죽었고

군악대였던 나는 그들의 장례식에 진혼곡을 연주하기 위해 찾아 갔었다.


난...

그곳에서 우연찮게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는...

고립되 있는 동료들을 구하다가 자신은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한 채...

지금은 이렇게 관에 누워서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관 앞에 멀쩡히 웃고 있는 그의 사진을 보고...

그 앞에서 진혼곡을 연주하는 내 마음은...

아마...

평생을 연주하면서 또 그런 상황이 있을까 싶었다.

군대만 아니었더면...

내 그를 위해 마음 놓고 울어라도 주었으련만...

눈물을 참아가며 연주를 하는 나의 가슴은 갈레갈레 찢어나가는 듯 했다.

나중에 제대한 후 사회에 나가서 맘 놓고 만나보자고 했던 우리였건만...

그 힘든 군 생활을 다 끝내고 얼마 남겨 놓치 않은 이 상황에서...

이럴순 없었다... 이래선 안 되는 거였다.


난 지금 그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처음부터 그의 이름보다는 그의 훈련병 때의 번호였던 186번을 기억하고 있

다.

그러나 그가 나에게 남겨 놓고 간 형상들은 많이 남아 있다.


쵸코파이...

우유...

농촌...


그리고...



눈물...



오늘 텔레비젼에서 드라마를 보다 문득 눈물을 흘린 나는...

눈물을 흘릴 때마다 기억나는 이 친구를 떠올리며...

이렇게 몇 자 끄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