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폰을 향해 들려오는 목소리는 낯선 목소리 입니다.
" 도장 갖고 오세요 "
( 우체부 아저씨는 분명 아닌데.. 아마도 택배 회사인가보다. )
급한 마음에 도장을 챙겨서는 서둘러 나갑니다.
역시나 내 생각대로 현대택배차가 서 있읍니다.
홈쇼핑도 가끔은 이용하지만.
여기저기에서 간간히 물건도 오기에 꽤나 낯이 익은
총각인지, 아저씨였읍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그 아저씨는 실~실 웃습니다.
정말로 표현그대로의 실~실 말입니다.
그것도 아래, 위를 훑어 보면서 말입니다.
( 우이쒸~ 기분 나쁘게.. )
마음속으로만 궁시렁 거리고는 집 안으로 들어 옵니다.
아까의 그 택배직원의 웃음이 궁금해 거울을 들여다보고는
나 역시도 실~실 웃음을 흘립니다.
아니, 정확히는 실~실 이 아니라 픽~픽 이 맞겠지요.
빛 바랜 유아용 하늘색 츄리닝에 새빨간 양말.
현관을 쳐다보니 내가 신고 나갔다온 신발은 한 여름 샌달.
참 가관입니다.
내 모양새가 말입니다.
염색을 미처 하지 못한 내 머리는 싸락눈이라도 맞은거 마냥
희끗희끗~
달력에 행사 표시 없는 날엔 화장이라고는 해 보지 않는얼굴.
얼굴은 분명 40 대 인데...
차림새는 초등학생 이었으니.
아마도 그 택배직원의 눈에는 내가 시큼하니, 한 맛 간 사람으로 보였나 봅니다.
제 에미보다 훨씬 커버린 아이의 옷을 언제부터인가 내가 그냥
꿰어 입고 다닙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말입니다.
물려줄 아이도 없고, 그렇다고 멀쩡한 옷을 버릴수는 없는것이고.
시나브로 들어온 아이의 양말은 거의가 원색입니다.
빨갛고 노랗고 분홍과 보라. 기타등등
무지개의 일곱가지 색상은 모두 갖추었나 봅니다.
언젠가부터 딸 아이는 시체말로 쪽 팔린다며
색깔이 들어간 양말은 신지 않으려 합니다.
여름엔 하얀색, 겨울에는 검은색.
빨래가 밀려 미처 양말이 준비되어 잇지 않아 다른색을 줄라치면.
아이는 내게 눈을 흘깁니다.
" 엄마는... 내가 뭐 어린애인줄 알아? 유치하게... "
" 예는 어때서 그러니? 색깔이 곱기만 한데. "
" 엄마, 나 그거 신고 학교에가서 친구들에게 쪽팔림 당하면 엄마가 책임질꺼야? "
" 별게다 쪽 팔린다 "
결국은 드라이로라도 검은색 양말을 말려줘야 합니다.
재활용에 넣자니 그렇고.. 버리자니 아깝고.
그러다보니 항상 아이의 작아진 옷과 양말은 내 차지가 됩니다.
때론 브래지어까지 말입니다.
초등 4 학년부터 내 딸아이는 브래지어를 했읍니다.
스포츠브라 라는걸요.
몇번을 하지도 않았는데...
아이는 정신없이 마구 크는 겁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어느것하나 아이는 제 에미보다 작은게 없읍니다.
( 청승 떨고 살지 말자 )
싶은 마음에 과감히 쓰레기로 내어 놓았다가도 아까운 마음에
다시 집어와서는 세탁기에 넣습니다.
어느날은 말입니다.
아이의 츄리닝 한벌에 아이의 무지개표 양말에
아이의 작아진 조끼를 걸치고 또한 작아진 운동화까지 신고는 자전거로
동네 슈퍼에를 갔는데.
그만 딸의 담임선생님을 만나고 만 것입니다.
인사를 하고는 돌아서는데 왜 그리도 챙피스럽던지요.
한편으로는 제 에미보다 훌쩍 커버린 딸아이가 대견도 스럽지만.
상대적으로 자꾸만 작아지는 내가 싫어도 집니다.
그렇찬아도 작은 키가 훌쩍큰 딸로 인해 더욱더 작아보이니까요.
이제그만 딸아이의 대물림을 하지 말아야할까 봅니다.
아무렇지 않게 입고 신고 하던것이 그 택배아저씨의
실~실 거리는 웃음으로 인해 내가 참으로 궁상맞아 보입니다.
집과 여자는 가꾸어야 한다는데...
그저 아깝다는 이유하나로 게으름을 피우는 내가 한심스럽습니다.
버릴것은 과감히 버리고
화장도좀 하고...머리에도 좀 투자하고.
그렇게 여자다웁게 나 다웁게 살아야 할까 봅니다.
하지만 난, 나를 잘 압니다.
버린다고 박스 하나가득 담아 놓았다가는...
다시금 골르고 골라서는 세탁기로 들여 보낼것을요.
이런내가 궁상맞고 청승맞은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