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지난 편지-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지.
내 아이들아,
이제 막 여름이 끝나고
가을의 전령사로 오시는 비 인가 보다.
창 밖으로 보였던 강물이며
내리는 빗줄기며 다 자란 해바라기,
모든 것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않았니?
엄마는 오늘 멀리 있는 친구와 정겨운 통화도했고,
도올 선생의 강의도 잠깐 들었고 ,
깡패신부라는 문신부님의 영상물도 보았고
공감하고 박수를 보내기도 하며 나의 자아는 외롭지 않다는
다짐을 또 한번씩 하는 순간들이었다.
나의 아이들도
이다음에 성인이 되었을 때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의미나 진실,
또는 존재의 의미 따위로 고뇌에 빠져 힘들때
너희들을 지켜 주고 또 해답과 삶의 방향 을
지시해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자아>이다.
엄마 가 생각하건데 이것이야말 로 인생 행로의 지표이고
인생의의미이고 인생의 가치이다.
<자아>가 없는 삶은 곧 주검들의 행진이다.
엄마는 그렇게 생각한다.
마흔 두 해를 살아 오면서 버리려,도망치려 해도
도저히 버려지지 않았고 도망쳐지지않아 다시 끌어안고보니
그것이 내인생의 최고 보물이었던 것을
지나간 젊은시절엔 엉뚱한 허황된 것들에게서
내 삶을 일구어 보려 했었지 뭐니?
내 아이들아
<자아>를 멀리 하거나, 현실에 살아남기에 불편하다고
도망치려 하거나 버리려 하는 실수로 인해 언제 다시올지 모를
인생길을 너무나 돌아서가는 일이 없기를....
그것이
이 엄마가 너희들에게 주고 싶은 최고의 유산이기도 하고
너희들을 이 세상에 낳아 인생길을 걷게 한
깊고 깊은 염려로인해 너희에게 쥐어주는 한장의 지도 일까,
한 켤레의 운동화 일까?
돈과 지식은 너희에게 줄 수 있다 한들
너희가 겪을 희노애락에 대한
나의 무 책임을 미워하며 괴로와 한날이 많았단다.
그러니, 이 엄마가 너희에게 최고로 주고싶은 것은
돈도 아니오, 지식도 아니오
<자아>를 잘 형성시킬 수있게 도와 주는 것이란다.
깡패신부라고 불리우는 문신부님은 나이가 많이드신 분인데도
젊은 날의 표현과 다름이 없는 것 같더구나.
슬거머니 물러앉아 타협하는 편리함이나 노련함을 거부하고
불의에 직설적으로 맞서 소리질러 행동하고
때론 그 연세에 울먹이기도 하시고
다시 어금니 깨물며 입술에 힘주어 분노를 드러내는 그 모습.
너무도 내 모습과 닮았 다고 생각하며
아! 사람들 앞에서 불의와 나혼자 싸우다 분통터져
눈물 보였을때 듣는 지지자들의 위로가 오히려 서글퍼졌을때,
나는 때로 남 앞에서 나의 자아를 쏟아내는 지나친 분출력을
내 나이에 맞지 않다는 생각에 부끄러워 하고 후회 한적이 많았지.
그러나 오늘 문 신부님를 보고
'그래 솔직하게 행동 하는것이 부끄럽게 느껴지면
그건 이미 자신을 놓쳐버린 건지도 몰라.'
자주 울어도 오히려 힘있게 느껴지고
'저 사람은 확실해'라는 느낌을 받기는 정말 처음이었다.
옳은자의 편에 서야하고, 가난한 자의 편에 살고
힘 없는 자의 일부가 되어 살겠다는 젊은날의 문 신부의 서약이,
세월이 몇 십년 지나 할아버지가 되어서는 오히려 더 펄펄 끓는
피로인해 깡이 되어 버린 문 신부의 모습에서 내가 느낀건
저 사람은 한 순간도 아까울 세월이 없겠구나!
어느 한 세월도 자기를 배신하며 산 적이 없겠구나!
마음에서 속삭이는 것들에 충실하게 살았겠구나!하는 부러움 .
내 아이 들이 저렇게 한순간도 가슴 속에서 속삭이는 것들에
외면하지 말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삶이 될까?하는
생각을 했단다.
사랑스런 나의 아이들아,
오늘도 고맙게 잘 자라주었구나 .....
벌써 새벽이네. 밝아올 아침에 만나자..
-가을날의 수호천사.-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