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정씨는 직장 다닌답시고 살림에는 도저히 젬뱅인 서른을 훌쩍 넘긴 아지매다. 학원 다닐 시간이 없던 그는 어렵게 직장의 양해를 구하고 이번에 운전면허를 땃다. 근데 면허가 나오고부턴 도저히 손발이 근질거려 참을 수가 없는 것이없다. 그의 운전면허는 오토면허라 남편의 수동차는 몰수가 없었고 남편 또한 수동면허 따기까진 운전할 생각 말라며 엄포를 놓은 때문에 도무지 운전대를 잡을 기회가 없었다.
차를 몰고 나가기만 하면 좌악 달릴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그녀는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같은 직장 동료인 남선씨를 꼬드겼다. 남선씨는 2달된 초보운전자인데 아반떼 승용차를 폼나게 운전하며 출퇴근을 하고있었다. 모처럼의 어느 토요일 두 사람은 야외를 한바퀴 드라이브한 후 백화점 쇼핑을 하기로 계획을 잡았다.
두달된 초보운전자와 면허증도 따끈따끈한 왕초보. 이 두 사람은 날씨도 무지하게 좋았던 어느 토요일. 사무실의 모든 스트레스와 집안의 잡다한 살림일과 빽빽거리는 아이를 뒤로한채 시외로 드라이브를 떠났다.
어느 한적한 국도변. 왕초보는 드디어 운전대를 잡았다. 다소 떨리긴 했지만 차는 스르르 잘도 나갔다. "역시 오토쯤은 장난이야" 시원한 바람도 귓가를 간질이고 그녀는 그녀앞에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음을 느꼈다.
그때였다. 남선씨가 느닷없이 외?다. "야. 브 브 브레이크" 희정씨가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남선씨의 두달된 아반떼 승용차의 한쪽 눈탱이가 완전히 박살이 난 것이 아닌가. 느닷없이 들이?S힌 앞에가던 트럭은 다행히 외관상 별 피해가 없는 듯 해보였다. 앞차의 트럭 아저씨 내려서 보더니 "많이 부서졌네요, 조심하셔야죠" 하더니 이내 차몰고 가버린다.
이일을 우째. 순식간에 기가 죽어버린 희정씨. 그렇지만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기엔 기분이 너무나 엉망이었다. 그래서 계획대로 쇼핑을 하기로 했다. 남선씨는 더 이상 운전대를 희정씨에게 줄 생각이 없는듯해 보였다.
복잡한 백화점. 주차장도 전쟁터를 방물케 했다. 더욱이 지하 주차장엔 주차기가 설치되어있다. 남선씨는 안 그래도 자신없는 주차인데 주차기 위에 주차하는건 더욱더 고난도에 속하는 기술이었다. 그래도 남선씨는 희정씨에게 보란 듯이 당당하게 차를 앞으로 주욱뽑아 후진을 좌악. 익숙하게 주차하는 듯 해 보였지만 결과는 쿠당탕탕. 차가 주차기에서 빠지면서 옆차를 처박은 것이었다. 남선씨의 아반떼 승용차는 순식간에 양쪽 눈탱이를 모두 잃어 장님이 되고 말았다. 이럴수가. 하루에 한번 사고나기도 어려운데 두 번씩이나. 완전히 재수 옮붙은 날이었다.
남선씨의 차는 한쪽 남은 라이트 부분마저 완전히 망가졌는데 옆차는 다행히도 기스만 난 듯이 보였다. 그나마 불행중 다행이라는 안도의 한숨도 잠시 "악"하는 남선씨의 비명에 옆차를 쳐다보니 이럴수가. 옆차는 세단 날렵한 외제차였다. 이를 우째. 두 여자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도망갈까 말까. CC카메라가 어디 있을텐데. 여러 가지 생각들이 뇌리를 스쳤다.
저쪽에서 안내원이 오고있었다. 이젠 죽었다. 안내원은 옆차부터 보더니 "외제차를 박으셨군요" 그런다. 그런곤 양쪽 눈탱이가 부서져버린 처참한 남선씨의 차와 공포에 떨고있는 두 여자를 보더니 불쌍해 보였나 보다. 자기도 맡은바 소임을 다해야 하니깐 연락처를 달란다. 그려면서 피해차량이 모르고 그냥 나가면 자기도 모른척 할거니 쇼핑하고 있으란다.
남선씨는 차를 반대쪽에다 멀찌감치 주차해놓았다. 그리곤 백화점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쇼핑이 될 리 만무했다. 둘은 커피숍에서 음료수만 마시며 죽쳤다. 두 사람 사이에선 암말도 오고가지 않았다. 드디어 폐점시간이 되어 "굳바이 굳바이"하는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두 여자는 현장에 가보고 싶어했다. 범죄자는 한번은 법행현장에 나타난다고 햇던가. 저 멀리 멀찌감치서 현장을 보니 분명 '텅"비어있는 것이다. 문제의 검정색 세단은 보이지 않았다.
두 여자는 너무나 즐거운 마음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망가진 아반때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길가의 네온싸인도 찬란하고 라디오의 음악소리도 너무나 경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