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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라는 것은......**


BY ylovej3 2001-12-14

** 장애라는 것은......**

** 장애라는 것은......**

  첫눈 내리는 오늘, 
  그 포슬포슬한 감촉을 얼굴에 느끼며 큰 아이와 한의원에 갔습니다.
  아이가 기침 때문에 요 며칠 고생을 하고 있거든요.

  아이와 한의원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낯익은 그녀가 출입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었고, 
  나는 그녀의 8개월된 사내아기가 잘 크고 있는지를,
  그녀는 찬웅이가 반듯하다는 말을 꺼내며 둘이서 한동안 수다를 떨었습니다.

  나와 얘기하는 내내 눈웃음이 예쁜 그녀에게선 행복이 묻어 나왔고,
  그녀와 마주한 나도 그 행복이 마치 내 것인냥 즐겁기만 했습니다. 
 

  진찰을 받고 한의원을 나와 집으로 걸어오며,
  처음 그녀를 보았던 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습니다.


  작년 봄 어느 날.
  잠결에 목을 삐끗한 나는 침을 맞으러 이 한의원에 왔었습니다.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목의 통증 때문에 조금은 우울한 기분으로 
  대기실 벽에 기대어 앉아있었지요.

  그러던 중에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출입문을 열고 들어왔고, 
  그녀와 나는 눈이 마주쳤습니다.

  낯선 나에게 환히 웃으며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네는 그녀를 앞에 두고 
  난 어설프게 웃어 보이며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난감해했습니다.

  수습 안된 어설픈 내 표정을 뒤로하고, 
  그녀는 간호사실을 거쳐 곧바로 탕제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녀도 나처럼 환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척 뜻밖이었지요.


  그녀는 다리를 심하게 절뚝였고 몸이 조금 비틀어져 있는 장애인이었는데, 
  만삭의 몸이었습니다.

  내가 앉은자리에서 탕제실 안의 그녀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만삭인 몸으로 부지런히 왔다갔다하며 한약재료를 저울에 달고, 
  하얀 종이위에 재료를 하나 하나 정성스레 놓았습니다. 

  그녀의 손놀림과 몸놀림은 아주 익숙해서 그 곳에서 일을 한지 꽤 오래된 것 같았습니다.

  나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몇 갈래의 생각 끝에 매달려 있었지요.

  '이 곳 한의사는 마음이 참 따뜻한 사람이구나. 
  아니면 그녀의 실력이 아주 뛰어나니까 취직이 되었겠지.
  얼굴은 참 예쁜데...... 
  사고를 당한 걸까? 아님 선천적일까?
  불편한 몸인데도 참 부지런히 움직이는구나.....'

  자기 일에 열심인 그녀를 보면서,
  목이 삐끗해 불편했던 내 맘과 몸은 어디론가 숨어버렸지요.

  그녀를 첨 만난 며칠 후에 그녀와 한 교회에 다닌다는 이웃으로부터 
  그녀 얘길 듣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그 한의원의 직원이 아니라 원장의 부인이었고,
  그녀에게는 초등학생인 두 아들이 있고, 지금 뱃속에 있는 아이는 셋째인데,
  그 아이마저 아들이라 무척 낙심해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불편한 몸을 아들과 딸은 이해를 하겠지만 며느리가 이해를 하겠냐며
  그래서 무척 딸이 갖고 싶었다고 안타까워했다는 얘기였지요.
  그리고 남편이 집에만 있지말고 한의원에서 일을 거들어 달라고 
  자꾸 불러낸다고 했습니다.
  장애는 불편한 것이지 절대 부끄러운 게 아니니 숨어있지 말아라고 당부하면서요.


  이웃에게 얘기를 전해들으며,
  이 부부의 깊은 사랑이 내 맘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상대에 대한 믿음과 배려가 깔린 사랑이라서
  쉽게 변하거나 퇴색하지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사랑이 있으니 그녀의 얼굴이 그리도 환할 수 있었구나,
  몸 성한 나보다 훨씬 여유로와 보였구나, 하는 괜한 부러움이 일었습니다.

  그 후,
  근처 슈퍼에서나 한의원에서 그녀를 몇 번 더 만나게 되었을 때,
  난 오지랖넓은 아줌니마냥 호호거리며 먼저 인사를 건네었고, 
  그녀도 친숙히 받아주었지요.

  그리고 첫 눈 내린 오늘,
  이웃의 두 아줌니는 한의원안에서 작은 웃음꽃을 또 한 번 피웠고,
  집으로 오는 길에도 그 여운이 남았던 나는,
  지금도 가슴에 차오른 만족감이 쉽사리 가시질 않습니다.

  혹시, 나의 이런 맘이,
  지금껏 내리는 첫눈 때문은 아닐까요?^^*

  
  2001. 12월  첫눈 내려 행복한 淸顔愛語

* 듣고 계신 곡은 < 이장희-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 장애라는 것은......**
첫눈 오는 날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하늘의 별을 몇 섬이고 따올 수 있지 노래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새들이 꾸는 겨울꿈 같은 건 신비하지도 않아 첫눈 오는 날 당산 전철역 오르는 계단 위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 가슴 속에 촛불 하나씩 켜들고 허공 속으로 지친 발걸음 옮기는 사람들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다닥다닥 뒤엉긴 이웃들의 슬픔 새로 순금빛 강물 하나 흐른다네 노래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이 세상 모든 고통의 알몸들이 사과꽃 향기를 날린다네. 詩 곽재구
** 장애라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