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에서 돌아오는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할아버지가 가까이 올 때 까지 기다려 인사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할아버지를 보면 달려가 그 앞에 서서 허리를 90도 각도로 굽혀 인사를 해야 했다.
긴 외출에서 돌아오기라도 하면 일단 밖에서 그렇게 인사하고 방 안에 들어와 다시 큰 절을 하였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할아버지가 요구하던 예절을 요구하지 않았다.
허리를 90도 각도로 굽히지 않고 고개만 까딱하는 인사도 문제 삼지 않았다.
말로만 하는 인사도 버릇없다 하지 않았다.
큰 절 같은 것은 받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농담을 하고 버릇없이 굴어도 그저 ‘허허’ 하고 웃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예절의 형식을 전혀 요구하지 않았다.
난 그런 아버지가 좋았다.
할아버지와 달리 그런 아버지에게는 마냥 어리광을 부릴 수 있어 좋았다.
옆에 앉아 어깨로 아버지를 툭툭 치고, 아버지 입에 들어가는 상추 쌈을 빼앗아 먹기도 하였다.
막내 딸의 버릇없음을 묵인하는 아버지를 보고 동네 사람들은 아버지가 달리 보인다고 하였다.
점잖고 무서운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비난의 말일 수 있는 말이었다.
아버지는 늙어서 세상을 떠났고 철 없던 막내 딸은 오십을 바라본다.
아버지가 날 키운 방법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생각해 본다.
할아버지는 내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하는 것도 생각해 본다.
가족이란 가족구성원의 장.단점을 서로 환히 아는 사이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장점이 많은 사람들이었지만 장점 만큼 단점도 소유한 사람이었다.
깍듯한 예절을 중시한 할아버지의 단점을 발견했을 때와 너그러운 아버지의 단점을 발견했을 때 내가 느끼는 기분은 전혀 달랐다.
할아버지의 단점을 발견한 나는 할아버지가 이중인격을 소유한 사람처럼 생각되어 실망스러웠다.
아버지의 단점을 발견했을 때는 그 보다 훨씬 너그러웠다.
우리 아버지도 인간이니까 단점도 있을 수 있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족 사이에 깍듯한 예절을 지키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적당히 버릇없이 키웠다.
같은 공간에 머물면서 그저 편안한 사이이고 싶었다.
난 남편이 출근할 때 ‘다녀 오세요’ 하고 인사하지 않는다.
그 보다는 뒤에서 슬그머니 안아본다.
그리고 귀에다 속삭인다.
“내가 보고 싶어도 꾹 참고 일 잘해!”]
이런 엄마를 보고 자라서인지 우리 아들은 제 아빠를 껴안고 등을 툭툭 두들기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엄마의 볼과 제 볼을 비비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기도 한다.
딸은 엄마 아빠랑 꼭 껴 안는 것으로 인사 한다.
난 우리 아들과 딸의 인사하는 방법이 깍듯한 우리 전래의 인사보다 좋다.
엄마가 실수를 해도 너그럽게 이해해 줄 것 같아 좋다.
내가 울 아버지의 실수에 너그러울 수 있었듯이…
아이들이 예절의 형식에 구애되기 보다 그 근본 정신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을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마음이 예절이라는 것만 기억한다면 그 형식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험이 있다.
고마운 미국 할머니가 있었다.
집에 초대해서 식사를 함께 하고 즐거운 이야기도 나누었다.
헤어질 시간이 되어 그 할머니는 즐겁고 고마웠다고 하면서 작별의 인사를 하려고 날 포옹 하였다.
그런 인사 방법에 익숙치 않은 나는 나도 모르게 몸이 조그맣게 움츠러 들었다.
정중한 한국식 인사 방법에 너무도 오랫동안 익숙해 있었던 것이다.
내가 몸을 움츠리자 그 할머니 표정이 이상해졌다.
내가 자기를 싫어하는 것으로 오해한 것 같았다.
‘아차’ 싶었지만 변명을 늘어 놓기도 우스운 일 같아 그만 두었다.
우리 아이들은 다른 나라 사람과 인사를 나눌 기회가 우리보다 많을 것이다.
지나치게 우리 예절의 형식에 얽매어 융통성을 잃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