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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97

친정엄마


BY ylovej3 2001-12-12

친정엄마



  친정엄마께서 다녀가셨습니다.

  엄마 보고싶다,고 아이처럼 며칠동안 졸랐더니, '내가 니 때메 몬살겠다' 시며 
  힘든 걸음을 하셨습니다.

  우리 집에 사흘 계시다가, 서울 남동생 집에도 한 번 들렀다가 부산으로 내려간다고 
  하셨는데, 마침 김장철이라서 '온 김에 김장이나 하자'고 맘을 잡으시고는 
  일 주일 넘게 계셨습니다. 

 
  그렇게 김장 해 주시고 아이들과 놀아 주시고 집안에 웃음을 선물하시고, 
  서울 남동생 집에도 들렀다가 며칠 전에 부산으로 내려 가셨습니다.
  지금은 창원 언니네에서 김장을 해 주고 계신가봅니다.
  (딸들은 죄다 도둑이라고, 답답하면 엄마 찾는다더니......에궁.^^)


  엄마가 장사를 하실 때만 해도 자식들 집에 다녀가시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자식들이 조른다고 시간을 낼 수도 없을뿐더러, 엄마 마음만 불편하실 것 같아
  아예 '다녀가시라'는 말씀을 드리지도 않았지요.

  하루라도 가겟문을 닫으면 큰일이 나는 것처럼 안절부절하는 분이셨거든요.

  이젠 모두 옛이야기가 되어 버렸습니다만. 


  2년 전, 친정 집 앞으로 큰 도로가 생기면서 가게가 헐려버렸습니다.

  이십 년 전에 선친과 함께 손수 지으신 집이 한 순간에 허물어지고, 
  삼십 년 넘게 꾸려오신 가게가 없어지는 날,
  엄마는 당신의 젊음과 고단한 삶이 되살아나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마셨지요. 

  선친 돌아가시고는 혼자서 억척스레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해 오셨던 보금자리와 
  생계수단이었으니 그 맘이 어떠실는지 반쯤은 헤아려집니다.


  엄마는 남자 중학교 앞에서 30년 넘게 문방구를 하셨습니다.

  문방구라고 해봐야 5평도 채 안되는 공간에 학용품을 진열해 놓고, 
  한 쪽면에는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갖추어 학생들이 군것질도 할 수 있는 
  아담한 가게였지요.


  집의 한쪽 귀퉁이를 차지한 가게라 행인들의 눈에는 쉽게 띄지 않지만,
  그 학교 학생들은 애용하지 않을래도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높은 언덕위에 자리한 그 학교 정문 앞에는 우리 집만 덩그러니 마주하고 있었으니, 
  문방구도 당연히 우리 집 하나 뿐이었습니다.

  30년 넘게 그야말로 경쟁상대 없이 독점하다시피 가게를 꾸리셨는데,
  (굳이 경쟁상대를 꼽으라면 학교내의 매점 정도겠지요.^^)
  혼자서 장사를 하시는터라 별다른 욕심 내지 않고, 즐겁게 하셨지요.


  엄마는 올해로 연세가 일흔 넷입니다.

  그렇지만 10년 이상은 젊어 보이시는 외모에, 성격도 활달하시고,
  큰 목소리로 늘 웃음을 만들어 내시는 분이시지요.

  당신은 태연스레 말씀하시는데, 상대방은 눈물 찔끔거리며 웃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엄마의 유머는, 일상 생활에서 묻어 나오는 꾸밈이 없는 자연스런 웃음입니다.


  남들이 '왜 그리 젊어 보이시냐'고 물어보면 엄마의 대답은 한결 같습니다.

  "낙찬적인 성격 땜시 글타"

  그 낙.찬.적.인.을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씀하시는 모습에 자신감이 넘칩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엄마는 그다지 낙천적이지 못하시답니다.
  특히 자식들이 '아프다'는 말 앞에서는 ......


  자식들 중 누군가가 몸살이 났다,는 말만 들어도 걱정으로 잠 못 이루십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해서는,
  '병원에 다녀왔냐, 약은 먹었냐, 밥은 꼭 챙겨 먹어라......' 

  수시로 확인을 하시는터라, 아픈자식이 오히려 민망하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올 여름 오빠가 암 선고를 받았을 때,
  엄마는 그 소식을 접한 날부터 오빠가 완치되어 퇴원하는 날까지,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정화수 떠놓고 두 손 모아 빌고는, 
  근처 절에 가셔서 몇 시간씩 절을 하셨다고 합니다.

  오빠의 기적에 가까운 결과에는,
  엄마의 지극한 정성이 제일 큰 몫을 했다고 저는 믿습니다.

  얘기가 옆길로 새어버렸네요.^^


  결혼 전, 가끔 엄마를 도와 가게 일을 거들기도 했는데,
  그럴 때 학생들과 친구되어 농담을 주고받는 엄마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엄마의 친한 친구들은 주로,

  공부 못하는 학생,
  집이 가난해서 학용품을 제대로 사지 못하는 학생,
  불량스러워 선생님들께 찍힌 학생들이었지요.

  이런 학생들을 유난히 아끼시는 엄마는,
  과자도 챙겨주시고, 학용품도 싸게 주시고, 점심도 함께 먹자는 둥, 
  다독이기도 하셨지만,

  공부 못한다고 나무라시고, '문디손'이라며 욕도 하시고, 학생주임에게
  다 일러준다며 협박도 곧 잘 하셨지요.

  (요즘 학생들에게 그랬다간 '엽기할머니'로 불렸을텐데......^^)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엄마와 함께 가게를 보는데, 어느 학생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엄마 그 학생을 부르더니 말씀하시길,

  "OO 야, 요번에 시험 잘 친나?"

  ".........."

  "와? 니 요번에도 꼴찌핸나?"

  "아닌데예. 내 뒤에 몇 명 더 있는데예" 

  "맨 명이나 더 인노?"

  "잘 모르겠어예"

  "개안타. 솔직카게 얘기해바라."

  "두 명 더 있는데예~~~"

  "내 그럴 줄 알아따. 거기 꼴찌지 머꼬?  꼴찌가 따로인나?"

  "할머니는......" 학생이 살짝 눈을 흘깁니다.

  "나는 니가 맨날 까자만 사묵지 말고 학용품 사는 것도 쫌 바쓰면 조케따"

  "저번에 시험치는 날, 컴퓨터용 싸인펜 샀는데예"

  "머시라카노......거기, 틀린기다. 학생이 시험치기 전에 준비물을 다 챙겨야지, 
  시험치는 날 정신엄시 그런 거 사는 놈이 어딘노?
  내사 그런 놈치고 공부 잘하는 놈 못바따. 맨날 까자만 사묵지 말고......알건나?
  어서 가서 공부해라. 공부해서 남 주는 거 아이다, 얼능 교실에 들어가라"

  "예~~~"

  그 학생 화가 날 만도 한데 순순히 대답하고 후다닥 뛰쳐나갔습니다.

  난 두 사람의 대화가 우습기도 하고 무안키도 해서 웃고만 있는데, 
  엄마가 그 학생 뛰어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덧붙입니다.

  "맨날 꼴찌하는 놈인데도 맘은 참 착하데이. 
  내가 머라캐도 눈도 꿈쩍 안한다. 바라 ,나중에 집에 갈 때 또 올끼다"

  정말 그 학생은 하교길에 우리 집에 또 들렀습니다.^^;

  엄마가 주는 무안과 꾸지람 속엔 자기를 아끼는 마음이 들어있다는 걸
  그 학생은 벌써 알고 있었나 봅니다.

  ..............................


  엄마는 가게를 그만두신 지금,

  그 동안 가고싶어도 시간이 없어 못 갔던 자식들 집을,
  이제는 자식들의 은근한 협박^^에 못이기는 척 하며 놀러오십니다.

  '나쁜 년, 앉아서 엄마 오라 가라한다'는 욕을 한 됫박 하시면서 말입니다.^^


  나쁜 딸년의 바램은, 

  칠순 넘으신 엄마가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지금처럼 혼자 기차표 끊어서 자식들 집에 이렇게 놀러 다닐 수 있기를,

  저희 집에 오실 때마다 '나쁜 년'이라고 욕을 해대시면 나쁜 딸년은
  '엄마 욕은 꿀맛'이라고 계속 대꾸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내 아이들이 장성할 때까지 친정엄마가  곁에 계셨으면 하는......
  욕심도 내어 봅니다. 


  2001. 12. 11  淸顔愛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