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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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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만들줄 아는 남편


BY 雪里 2001-12-12


작은 코펠에다 씻어온 쌀을 넣고 물을 잡아 놓으며
"여기 준비 해 놓고 가요!"
"알았어"

이것으로 점심식사 준비 완료.
나는 편안하게 내시간을 갖다가 오면 되는거다.
오전 시간은 내가 맡아 쓰기로 했으니까.

점심식사 시간전까지를 오전으로 계산하고 있는 나는,
조금이라도 내시간을 늘려 쓰고 싶어서
허겁지겁 시간차 타는 사람처럼 가게를 나선다.

화실에서의 시간은 초특급으로 지나간다.
먹갈아서 붓이 손에 익을만해지면 두어시간이 훌딱 지나가 버려서
항상 아쉬운 마음으로 뒷정리를 하고 오니까.

오늘도 나는 새로 받은 체본을 몇번 해보다가
한시가 넘어서야 정리를 하고 왔다.
이제 오느냐며 밉지 않게 흘기는 그이의 눈총은
지금이 오전이냐는 물음까지 한꺼번에 말하고 있다.

까만 서리밤콩을 섞은 밥은 난로 위에서
뜸이 잘 들어가고 있었다.
코펠 뚜껑을 열어 들고 그이의 얼굴을보다, 밥을 보다...

라면도 못 끌이던 이사람이
이젠 밥을 만들어 내 놓은 것이다.
비록 물까지 다 잡아준 밥 이지만
제때에 불을 줄여서 난로위에 올려놓아
라면 보다 훨씬 어려운(?) 밥을 만들어 놓고
뚜껑을 열고 들여다보는 내게
"어때? 잘했지?"라는 질문 담긴 눈으로 나를 본다.

다 늙어가며 밥하는거 배운 남자가 신통하고
마누라 시키는 대로 하는 고마움에 기분 좋아서
콧등까지 찡그리며 미소 섞인 애교를 보여준다.
"자기 밥 잘 했다, 정말!"

냉장고에 있는 밑반찬 꺼내서 점심식사를 하며
닮아가고 있는 우리둘이 우스워서
그냥 이대로가 고마와서,
수저를 물고 내가 항상 못생겼다고 놀려대던 그이의 눈을 본다.
못생겼지만 선해 보인다고 혼자 생각했다.

밥하는거 가르쳤으니
이젠 반찬 만드는걸 가르쳐야겠는데
종류가 많은 반찬중에서
뭘 먼저 가르쳐야 하는건지, 어떤 식으로 가르쳐야
내 속심 안들키고 가르칠 수 있을지.

시켜서 하는것은 좋던것도 싫어진다던 그이에게
본인도 알아채지 못하게 하나씩 가르치면
늙어서는 주방 주인자릴 그이에게
넘겨 줄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즐겁다.
주방 주인이 바뀔걸 생각하면.
룰루 랄라~~~~~ㅋㄷㅋ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