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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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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이야기...[10] 찌게가 보글보글 끓고...


BY ns05030414 2001-12-12

겨울이면 방 가운데 놋쇠 화로에 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두부와 돼지고기를 넣고 끓인 김치 찌게,
하얀 두부가 동동 떠다니는 청국장 찌게가 입 안에 침이 고이도록 맛있게 끓고 있었다.
그 화로를 가운데 두고 두 개의 상이 놓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겸상을 하고 아버지와 우리들은 또 다른 하나의 상에 둘러 앉았다.

식사시간마다 할아버지는 말씀하였다.
과식하지 말라고.
장수하는 동물인 학은 결코 위를 가득 채우는 법이 없고 팔 할 정도만 채운다고 하였다.
한 숟가락 더 먹었으면 할 때 숟가락을 놓으라고.
멍청한 사람이 밥 많이 먹는다고.
밥은 배부르라고 먹는 게 아니라고 하였다.
단지 허기지지 않도록 먹는 것이라고…
당신도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과식하는 법이 없었다.
하긴 노동하고는 평생 거리가 먼 사람이었으니 식사량이 적을 수 밖에 없기도 하였다.

할아버지에게 밥 먹을 때 마다 들은 이 말은 평생을 살면서 소중한 재산이 되었다.
맛있는 음식이 잔뜩 차려진 상을 보면, 내 머리 속엔 자동적으로 경고의 메시지가 떠 오른다.
‘과식하지 말아야지…’
‘배부르게 먹는 것은 미련한 짓이지.’
결혼 후 이 십 년이 넘었지만 임신했을 때를 제외하곤, 체중이 결혼 전 보다 2킬로 이상을 더 나가 본 적도 덜 나가 본 적도 없다.
할아버지 덕이다.
식사 때 마다 적게 먹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귀가 아리도록 들려 준 할아버지 덕이다.

아버지랑 같이 둘러 앉은 식탁은 자리가 넉넉하지 않았다.
서로 끼어 앉다 보면 상 모서리에 앉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었다.
어머니는 이 것을 싫어하였다.
상 모서리에 앉아서 먹으면 남에게 모난 소리를 듣게 된다고…
당신의 아들이, 딸이 남에게 행여 모난 소리를 들을까 봐 어머니는 상 모서리엔 앉지 말라고 하였다.
어머니의 말을 들은 아버지는 괜찮다고 하였다.
사람이 살면서 남에게 모난 소리를 듣고 삭힐 줄도 알아야 하고,
필요하면 남에게 모난 소리를 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는 지 그 때는 이해하지 못 했다.
그러나 살면서 살면서, 아버지가 한 말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 지 알았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도 삭혀야 할 때, 아버지가 생각났다.
화가 나는 대신 웃음이 나왔다.
이런 게 사는 것이라고 그 때 아버지가 가르친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에…
그리고 아버지 말대로 잘 삭혀야지 하고 다짐했다.
아버지가 잘 삭힐 줄 알아야 한다고 했기에…
남이 듣기 싫을 줄 알지만 필요하다면 할 말도 하려고 노력했다.
할 말 하고 사는 나는 가슴에 쌓이는 게 적어서 항상 편안한 마음으로 살 수 있음을 알았다.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할 말 하고 산다는 게 살수록 가슴 뿌듯해지는 일 임도 알았다.

식사 시간은 그저 밥만 먹는 시간이 아니다.
가족들 사이에 삶의 지혜가 전해지는 시간이다.
할아버지, 아버지처럼 나도 아이들이 살면서 두고두고 고맙게 여길 지혜를 제대로 알려주고 있는 지 자신을 돌아본다.
아이들이 살면서 이 엄마의 가르침을 떠 올리는 순간들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