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초등학생의 뇌진탕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407

스타만 예명쓰냐?


BY 풀씨 2000-07-29

70년대 문턱 우리가 단발머리 소녀였을 때다

진학의 꿈을 안고 향학열에 불타있을 그 당시

한 반에 명물들은 꼭 있기 마련

우리반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름이 가 오자 였는데 어느날 영어 선생님께서

첫 수업을 시작하면서 출석부를 체크해가며 호명할때마다

일어서 보라고 하셨다 일명 얼굴익히기 를 하신다는

말씀이었는데 가 오자 이름을 부르시다 말고

칠판에 고딕체로 그 애 이름을 쓰시고는

"가 자 오 자"네 딱 그 한마디에 우리는 순간

폭소를 터뜨렸다

그 후 그애는 "가자 오자"로 불리웠고 깊은 의미는 없었다

그애는 당시 멜로영화나 눈물샘을 자극하는 국산영화를

소위 도둑관람을 하고 와서는 꼭 그 뒷날 실연을

해보이곤 했는데 별다른 호기심꺼리가 궁했던

우리는 점심시간이면 그 애 책상주변에 모여

그애가 보여주는 실감나는 연기구경을 실컷 할수있었다

당시 윤 정희,문희,남정임,등 세여배우 트로이카

시대였던 그때 한반에 꼭 ?p명은 패가 갈리어

윤정희편,문희편 나뉘어서 열띤 공방전을 벌이곤 했는데

우리의 주인공은 늘 윤 정희 편이었던 관계로

주전자에 물을 떠다놓고 눈자위를 적셔가며 열연을

보이며 침을 튀기며 윤 정희에 대한 우월성을

톤 높게 강조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그 무렵 부터 남학생을

사귄것 같았는데 두발에 대한 규율이 엄했던 당시에도

앞머리를 잘라 애교머리를 하고 다녔고 눈썹다듬는 것은

기본이고 손톱도 굳은살을 파내어 예쁘게 매만지고 다녔다

교복도 항상 반지르 하게 잘 다려 입고 케미슈즈를

신었는데 항상 반질반질 손질도 잘해 다니는

깔끔한 친구였다

그 당시 이름만 대면 알수있는 두 조미료 회사간의

불튀나는 시장점유율 쟁탈전의 일환으로 사은품을 걸고

엽서 받기를 했는데 제품에 대한 ?p가지 설문에 응해

주면 선착순 ?p명에게 T셔츠를 준다는 광고를 보고

그 애는 즉각 응모해서 코발트색 티셔츠를 받았다면서

학교에 가지고와 패션쇼를 하는가 하면 당시 유행하던

극장쇼를 보고나서 꼭 한차례 리사이틀을 벌여 우리를

즐겁게 해 주기도 했다

트위스트,고고,허슬, 에서 뽕짝,팝,까지 그애가

보여주는 쇼맨쉽은 대단했었다

그렇게 천방지축 헤매던 가 오자는 어느날인가 부터

말수가 적어지며 갑자기 성숙한 여인네의 모습을

보이더니 ?p?p 아이들은 실연했다느니, 사귀던 남학생이

다른 여학생을 좋아한다더라 는 등의 말로

뒤숭숭한 분위기가 시작되고 우리는 한동안

생기없는 그 애의 모습으로 인해 교실전체가 암울해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두어달 시간이 흘렀고

우리는 묵시적인 가운데 그 애가 예전 모습을

찾기를 갈구했는지도 모른다

그 친구의 침묵은 두어달 정도에서 깨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역민방의 음악프로가 크게 기여했던 셈인데

중앙방송의 "별이 빛나는 밤에"와 같은 시간대에

편성된 "한 밤의 음악 편지"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거의 별밤과 같은 성격의 프로로 사연과 신청곡을

보내주는 그런 프로였다

그러던 하루

"오늘 밤에 꼭 들어 봐라 너것들하고 듣고

싶다고 보냈다마 아마 오늘쯤 방송 될끼다"

그리고는 시간을 가르켜 주었다

우리는 갑자기 잠자는 시간을 조율해야 했다

트랜지스타 라듸오를 끌어안고 각자 방에서 별밤의

애청자가 되어 그 프로를 청취했다

그런데 말이다 분명 내가 아는 친구들 이름과

내 이름도 나왔는데 뭔가 이상했다 사연은 간단했다

"지금 쯤 시험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을

자야,숙이, 희야,하고 듣고 싶다"는 그런 내용이었던것

같은데 보내는 사람이 "신 수강"이라고 했다

우리는 뒷날 등교 하자 마자 그애가 오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드디어 주인공이 나타나고 책상위에 가방을 놓자마자

"이 봐라 어제 저녁에 내가 신청한 음악 잘 들었나"

하며 주위에둘러선 우리에게 한마디 던??다

"그란데 듣긴 들었는데 니 이름이 안나오고

신 뭐라 쿠던데 누고?"

우리가 가장 궁금한 사항을 질문했다

그 애는 너무도 태연히

" 내 예명이다 우찌 가 오자 라고 방송 타겠노

예명을 지었다 아이가"

우리는 놀랬다

가명이니 예명이니 그런것은 스타들이나 쓰고

고민상담실 같은 곳에 실명을 못올리고 가명을 쓰는것은

봤지만 우리의 친구가 쓰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므로

우리는 전부 입을 벌린채 한동안 말을 잊었던것 같다

그런데 진짜 놀랠일은 ?p일후 일어났다

그날도 등교시간에 맞춰 교실에 들어갔더니 왠일로

우리의 신 수강이가 교단에 서 있었다

애들이 교탁 주변에 몰려잇었고 나도 호기심에 가방을

내려놓고 가봤더니 그 애는 자기 책가방을 거꾸로

치켜들더니 교탁위에 뭔가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엽서 쪼가리 부터 향기나는 편지지까지 다양한

편지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100여통 가까운 편지였다

방송을 듣고 보내온 것인데 그애는 ?p장 들고

낭독을 했다 우리 반 애들 모두 호기심 얼린

표정으로 감탄을 연발하며 편지 읽느라 그날 아침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그런데 말이다 내용인즉슨 거의가 이름이 너무

예쁘다였다 지금에야 신 수강 이름이 뭐가 예쁘냐고

하겠지만 당시 흔한말로 길을 가다가

"순아,숙아, 희야, 자야,"하고 부르면 여자 ?p이 돌아본다던

시절 아닌가

신 수강 이름 하나가 주는 파장은 참으로 컸다

요즘말로 신 수강 신드롬이었는데 너도 나도 가명 짓느라

열을 올리고 방송국에 엽서 띄우느라 암튼 가관이도

아니었다

만약 그 애가 본명을 썼드라면 ?p장의 편지를 받았을지는

예측할수 없지만 말이다

아무튼 우리 주인공은 1년 넘은 세월을

신 수강으로 살다가 대입을 치렀고

지금은 너무나 평범한 아줌마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