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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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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외출


BY 얀~ 2001-12-09

적응 못하는 것 중 하나가,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거다. 왠지 모임이나 거창한 세미나에 간다 생각하면 몸이 거부를 하지만, 점점 나아지겠지 싶어 나섰다. 10년 동안 몸에 배인 장사에도 힘겹다 느끼는데, 겁부터 내는 내가 소심하다 생각한다.
1시 30분 약속인데 좌석버스 안에서 초조하다. 제품 하나 받아 놓느라 시간을 지체했다. 예인이란 레스토랑인데 첨가는 길이라 헤매긴 했으나, 도심에 나는 비둘기와 꾸며진 도심 한복판의 공원이 좋았다.
들어서니 만나 보고 싶었던, 선생님이 있었다. 몇 년만인가. 오랫동안 만나진 못했지만 거리감은 없었다. '이제는 살만 한가보네'란 말에 웃음만 나왔다. 대화 중간에 '돈 벌을 만큼 벌었군, 그럴수록 건강 유의하고...' 울컥 목이 매인다. 오랫동안 투병 중인데도 변함 없이 씩씩한 모습이 좋았고, 더군다나 걱정까지 해주니.

오랜만에 만난 분들, 톡톡 튀는 말이 꼬리를 문다. 첫눈 오는 날 만나고 싶은 사람에 대해. '그 좋다던 사람 다 내쳤지만, 펑펑 첫눈이 쏟아진 날 전화가 기다려지더라, 기다리다 전화를 걸려고 생각하니 만만한 상대가 없더라.' 하신다. 난 전화를 했다. 한 분은 흐려진 봉숭아물들인 손톱에 대해 이메일을 써주고, 우리들까지 낭만이 없다면...이라고 말했던 분이라 전화를 드렸다. 고백하시길 첫눈이 쏟아지는 날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받는 게 첨이라 하신다. 친구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한전 감독에게 옥신각신 기가 죽고, 엉망이 되어버린 일을 하소연한 친구다. 격려차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함께 나눌 수 있음이 좋지 않은가. 그 친구는 '펑펑 눈이 온께 좋아 불거따'라고 했다.

동인지 회원의 시상식 장소로 옮겼다. 실은 직접 얼굴을 접한 적이 없었고, 즐거운 자리이니 문협 행사장에 갔다. 생소한 얼굴들을 바라보며 세미나를 들었다. 입구에서 챙긴 책 6권을 가방에 넣으려니 가방을 차지하고 있는 책들 때문에 넣을 수가 없었다. 젤 두꺼운 건 꺼내 무릎에 올렸다 살짝 살짝 읽었다. 넘기는데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려 있던, 시가 눈에 띤다. 이봉직님의 시다. 애기 스님이란 제목이다. 큰스님 손에는/큰 목탁.//애기 스님 손에는 작은 목탁.//큰스님/목탁 소리에/온 산이/깨어나고...//애기 스님/목탁 소리에/한 마리 산새가/깨어나고...// 즐겁게 읽었던 시라 맛나게 읽었던 기억에 후훗~ 웃음이 지어졌다. 포퍼먼스도 보고 시간이 늦어져 그냥 나왔다. 나와서 전화를 걸었다
'저녁 안 먹고 그냥 들어가려고 나왔어'
'이왕 나간 김에 걱정말고 있다 와'
'알았어' 행사장에 다시 들어가려니 쑥스럽다. 이왕 왔으니 이봉직님이나 만나보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얼굴을 모르니 회원을 찾았다. 딱 두 번째지만 함께 술을 마시고, 포옹하고 헤어진 분이다. '자주 와라 알았지'란 말을 들으며 이끌려 문협 회장님과 악수를 하고, 이봉직님 앞에 데려다 주더니 '이젠 둘이 알아서.'란 말과 함께 자리를 뜬다. 모르는데 ㅡ.ㅡ^
'혹 얀~ 아세요?'
'노래 올린 분?'
'네' 동인지 전 총무가 와서 말했다.
'내가 총무 하는 7년 동안 얼굴 안 보여준 분'
'푸핫핫핫' 웃음뒤에
'실명 밝히면 맛있는 거 사준다고 해서 기다렸어요'
' 핫핫핫' 뷔페 음식과 후식으로 커피도 마셨고, 명함을 받아들고 나섰다. 만나서 얼굴도 익혀야겠지만, 요즘 홈페이지가 있어 편하다.

가족이나 친척, 이웃도 중요하다. 하지만 속내를 털어놓지 못하는 말들을 받아주고 가슴에 있는 말들을 글로 쓸 때가 있다. 글을 통해서 위로하고 격려하고, 통하는 바가 있으면 행복하다. 나오는 데 엘리베이터 앞에서 동인활동을 같이 했던 분을 만났다. '예전 모습과 변함이 없네'란 말을 던진다. 잠시의 만남이었지만 반갑고 글로 통해 있음이 행복하다.

좌석버스에서 내렸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책가방이 무거워, 나올래?'
'어딘데'
'버스 정류장'
'알았어'
남편이 내 가방을 매고, 손에 책을 받아든다. 집에 거의 다 도착했는데, 모 회장님을 만났다. 끌려 들어가 갈비에 소주를 몇 잔 받아 마셨다. 집에 들어서 남편은 침대에 누워 영화를 보고, 난 딸의 책상에 앉아 라디오를 들으며 책을 본다. 행복하다. 정말 부자가 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