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님들의 글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된 지난 일이 있어서 잠깐~~
나이 마흔을 앞둔...그러니까... 중년인가요?
하지만 아직도 불혹이라는 말이 어색한 부끄럼 많은 여인네랍니다.
그것도 제 성격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일이든 잘 저질려 놓고 보는 편이죠.
말이 좀 그렇지만 전 남편의 운전기사가 제 직업입니다.
아무튼 그리 되었어요.
남편을 기다리는 동안 남는 시간이 너무 낭비가 되는 것 같아
생각해 낸 것이 자원봉사라는 것이었어요.
무턱대고 사회복지과로 전화해서 어느 무의탁 한 할머니를
소개 받았어요.
입구 들어서면서 나는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힘이 들었어요.
거동이 힘든 할머니이다 보니 지린네가 그야말로 온 집안 구석구석
베여져 있어서 들어가면서 문부터 열어 두었죠.
그리고 할머니에게 절 소개하는데 참 그렇습디다.
그래서 제가 그랬죠.
할머니 절 딸이라고 생각하세요.
딸 하나 두셨다고 생각하시고 절 편하게 대하셔야 해요.
그리고는 미리 준비해간 편한 옷으로 갈아 입고 청소에다
이불 빨래등을 하기 시작했어요.
한때를 보여 주는 할아버지 사진이며 씽크대에 아직도 웬만한 살림도구들이 즐비하니 들어차 있었어요.
눈물이 왈칵 솟구칠 만큼 짠했어요.
그래서인지 저는 참으로 할머니가 제 시어머니라도 되는 양 보살펴 드리고 싶었죠.
하지만 그건 마음이었어요.
매일 찾아 뵙지도 못하고 일주일에 두어번이 고작이었죠.
그러는 사이에 이웃에 산다는 제 또래의 어떤 아주머니 한분과
인사를 하게 되었어요.
남편이 갑자기 실직을 해서 할 수없이 친정집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는 그 아주머니에겐 제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있더군요.
괜히 마음이 가데요.
잘해주고 싶은 마음,
그런데 전 그러면서 제가 해결할 수 없는 어떤 난처함을 느낄수가 있었어요.
저는 겨우 한두시간 그것도 며칠에 한번씩 들여다 보면서 말은 봉사네
하면서 그 집을 들락거리지만 그 이웃 아주머니는 그 할머니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진정한 손 발이 되어 주고 있었어요.
그 아주머니가 조금만 나보다 어리던지, 아니면 훨신 연세가
있는 분이었으면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거예요.
내가 입고가는 옷, 신발 머리모양 화장품까지 그 아주머니에게
보여질 제 모습이 어찌나 민망하고 난처했던지....
그렇게 들락거리면서 나는 결코 그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마음의 이웃은 될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지요.
할머니는 말동무만 해줘도 좋다하시지만 진정한 이웃이 옆에 있어서 할머니는 그다지 외롭게만 보이지 않았어요.
그 아주머니가 어느날 머리를 자르고 파머를 하고 왔었어요.
그리고 화장품은 안살수 없었다며 한건 그래도 하고 살아야겠더라고 말하는 그 아주머니를 전 잊을 수가 없답니다.
매 식사때 마다 친정엄마 대하듯하면서 할머니 진지를 챙기던 그런 아주머니는 봉사라는 말로 자신을 떠벌리고 다니지 않을 것 같애서 괜히 저 스스로 챙피스럽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님들!!
먼곳에서 누군가를 찾지 마시고 가까운 내 주변부터 찾아보세요.
분명,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가 있을 겁니다.
12월 첫날 마음이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