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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호박 잡던 날


BY wynyungsoo 2001-11-29

매년 만추의 끝 자락이면 초겨울을 맞을 즈음에서 몸 보심의 보양식의 준비에 부산하다. 몇 일 전에 다녀가시면서 두고가신 늙은 호박을 오늘 잡아서 보신탕을 만들 요량이다. 올해에는 이른 봄부터 늦 가을 까지 지속되는 감뭄의 여파도 크셨으련만, 동부서주하신 아저씨의 정성으로 올해에도 늙은호박의 보양식 맞을 볼수 있게 되어 내심 감사한 마음이다.

아침일찍 큰 그릇에 호박을 앉혀놓고 예리한 식도로 호박 정수리를 살살 돌려가며 뚜껑을 따기시작햇다. 손을 다칠세라 조심조심하면서 도려낸 뚜껑은 아주 동구랗고 예쁜 모양으로 똑 떼어낼 수가 있었다. 해서 넓죽한 수저로 호박속을 파 내고 또 토실토실 영글은 호박씨는 따로 불리해서 물에 씻어서 작은 채반에다 얇게 펴서 널어놓았다.

호박씨가 바짝마르면 팬에 달달 볶아서 병에담아 놓고 심심풀이 땅콩처럼 긴 겨울 내내 보양식으로 먹일 요량이다.(말린 호박씨는 성인병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속을 다 파 놓은 텅빈 호박속에 지난 번 강화에서 사온 수삼을 한 너덧 댓 뿌리를 넣고, 또 황률도 한 줌 넣고, 또 약 대추도 한 줌 넣고, 또 마늘도 등등해서 모두채우면 호박뱃속이 꽈 악차면 도려낸 호박뚜껑을 도로닫아 봉한다.

그런다음에 큰 찜통에서 중탕으로 푸 욱 끓이면서 호박 보양식이 거의익을 무렵에는 은근히 호박탕 맛의 특유의 구수함과 단내가 코를 자극할 때 쯤이면, 센 불을 좀 약한 불로 줄여놓고 좀더 끓이면서 은근히 뜸을 푸 욱 들인다. 그러가다 제일 약한 불로 또 조금 김을 쐬었다가 불을 완전히 끄곤 식히기 시작한다.

거의 식을 무렵 먹기좋을 정도로 따뜻할 때에 찜통 뚜껑을 열고보면 탱탱했었던 호박몰골이 고령의 몰골로 쪼끌쪼글 폭싹 미소로, "아융 나 기죽었네엥@@," 하고있는 호박뚜껑을 조심스레 떼어내면 호박뱃속에 채웠었던 보약들이 그냥 호박의 몰골로 흐믈흐믈하고 국물은 마치 맑고 예쁜 와인색으로 변해져 있음에 구미가 당기며 달콤하고 구수한 감칠맛에 연실 입에 침이 고이게 되니...^^*

시각적인 맛 만으로도 회가 동하는 그런 보양식을 난 매년 이맘 때면 우리집 대들보인 반쪽에게 그윽한 눈빛으로 봉양을 한다. 물론 만드는 나 자신도 맛을 보겠지만, 우선 상수리 진국의 임자는 따로있으니 울며겨자먹기로 나는 늘 후짓국만 맛을 보는 형편이다. 그래도 늘 먹고 남은 찌꺼기나 후짓국만 먹어도 마누라의 성심이 담긴 보양식으로 긴긴 혹한을 무탈하게 보낼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끼게 됨에 내심 편안하니, 그 이상의 기쁨은 더 없으리라는 마음이니...

사실, 만일 집안에 어르신들을 모시고사는 형편이라면 이렇게 철철이 보양식을 남편에게만 해 먹일 수 만은 없을 것이라 생각되면서, 이미 고인이 되신 시부모님들께 때론 괜히 송구한 맘까지 들곤하는 때도 없지않다. 그러니 매년 철철이 보양식을 자신만의 간식으로 포용할 수 있게됨도, 조상님들의 하혜같은 굽어살피심의 은덕이 아닌가 싶음이니, 그저 나 죽었소 하고 안사람으로서의 임무를 묵묵히 수행할 따름이다.

집안에 환자를 모시고 사는 아낙들이 어디 나 뿐이랴!! 그러나 환자의 병간호나 수발은 심신을 다 바쳐서 수행하는 작업이라는 것을, 환자 자신들도 그 힘든 노고를 느끼고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임에, 물론 몸이 아프고 할 때면 만사가 귀찮고 희노애락의 미소도 모두 잿빛의 미소로 다가와서 짜증과 고집도 부려지고 하리라는 것 모르는 바 아니지만은, 신이아닌 이상 환자의 입장에서나, 간호하는 보호자 입장에서나, 피차가 "역지사지" 하는 입장으로 배려하는 사랑심을 요하는 작업임을 명심하여, 인내하는 배려심으로 포용해야 되지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지금 이런 색깔들의 예기는, 몇 일 전에 환자인 남편의 아픔내심을 읽지못하고 겁없이 철부지 행동을 취했었던 자신의 처사가, 한없이 부끄럽게 생각됨에, 오늘 이 아침에 남편의 보양식을 만들면서도 나 자신이 이렇게 싫어지며 몸이 한줌으로 수축되는 느낌까지들며 그렇게 미울 수가없다. 앞으로는 부끄러운 절차를 되풀이하는 일 없도록 인내와 고진감뇌로 노력을 할 것이며 한 가정의 안 사람으로써의 임무에 적극 충실할 것이다.

그리고 그날 황량한 벌판의 무밭에서 공짜로 얻어온 ?슘의 원조인 무청들을 오늘 깨끗히 씻어서 소쿠리에 건져놓았다. 들통의 물이 펄펄끓으면 잡아온 무청들을 집어넣어서 본연의 색보다 더 짙은 유록색으로 탄생이 되면 물기가 다 빠진다음에, 한 번 조리해서 먹을 만큼의 양으로 갈라서 비닐봉지에 담아 냉동실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긴긴겨울 내내 칼슘인 영양식으로 대용할 예정이다. ^*월매나 맛이 있을꼬옹^^*

사실 무청 시레기는 줄줄이 엮어서 추녀 끝에 매달아놓고 매서운 겨울에 찬바람을 맞아가며 말린 시레기가 맛이 더 짙다고 한다. 그러나 매달아 말릴 장소도 적당치않으니! 그리고 또 신성한 바람이 아닌 공해의 미소인 끈적이는 바람으로 말려질테니, 그 또한 건강식에 별로 바람직한 작업이 아닐지니, 난 그냥 아예 삶아서 그렇게 저장해 놓고 활용하고 있음이니 번거러움도 덜게됨에, 나만의 노하우로 내 삶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고 하겠다.

"여보!! 오늘은 호박을 잡아서 당신건강식을 만들요량이니 일찍 들어오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