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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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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의 주인공처럼 ...


BY 통통감자 2000-10-11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와이퍼를 움직이지 않고도 운전할 수 있을 만큼 간간히 내리는 비.

출근 시간을 훨씬 지나 도로변에는 스산한 기분마져 든다.


낙엽이 뒹구는 모습이 마치 지나간 블란서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하다.

깃세운 버버리를 걸쳐 입은 잘생긴 남자배우가 우수에 찬 눈빛으로

도로 끝을 응시하고 있다.



정오가 다가오는데도 어스름한 하늘은 시간을 잊게 한다.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다.

기다란 다갈색 플레어 스커트에 허리위로 올라온 체크무늬 슈트를 입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가 바람에 엉기어진다.


2차선 좁은 도로에 깜박이를 켜둔체 잠깐 머리를 기대어본다.

횅하니 펼쳐진 논바닥에는 어깨까지 자란 억새들이 빼곡하고,

군데군데 빨간깃발이 꽃혀있다.

지금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향해 가고 있나?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빠진다.


와이퍼를 움직여서 워셔액을 뿌려본다.

다시금 말끔해진 정면을 응시하며,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FM 방송을 듣는다.

정갈한 목소리의 진행자는 OO 필 하모니 공연 실황을 설명하고 있다.

슬며시 눈을 감고 등받이를 누여본다.

깊은 잠에 빠지는 것처럼 머리속이 무겁다.

몸이 한없이 한없이 내려가고 있다.

주위는 어둡고, 갑자기 끝도 없이 추락하는 공포가 엄습해온다.



> 띠리리리... 띠리리리...

적막을 깨는 휴대폰 소리

> 지금 뭐하고 있어.
거기가 어디야?
2시에 약속있는 거 잊었어?


오후 1시.

이크! 큰일이다.

오늘 오후에 손님이 오기로 되어있는데,...

백미러를 돌려 얼굴을 추스린다.

청바지에 빨간티를 입었다.

삐죽삐죽 빼어나온 짧은 머리칼을 청모자 속에 억지로 집어넣고, 다시 핸들을 잡는다.

조급한 마음에 오른발에 힘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