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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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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를 보면서...


BY 들꽃편지 2001-11-19

이끼를 보면서...
이끼를 키운적이 있었습니다.

몇년전에 강원도 어느 산사에 갔었습니다.
먼 길을 걸어걸어 산사가는 길은...
이름모를 야생화와
굽이쳐 흐르던 계곡과
우거진 나무들과
그늘진 산자락과 그들 틈사이로 푸르무리한 돌들이 많았습니다.
돌위엔 이끼가 소복하게 붙어 있더군요.
그 중에서 두주먹만하고 귀엽게 생긴
돌멩이를 골라 귀하게 안아서
까만 비닐봉지에 넣어 살살살 들고 왔습니다.

내 옆자리에 놓고 굴러가지 못하게 꼭 잡고서 먼 길을 달려 집으로 와서는
창안 유리 항아리 위에 올려 놓고
매일 매일 물을 주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한번
점심 커피를 마신 뒤에 또 한번
밤에...문무기로 샥샥 물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 이끼와 마주 보며
한참씩 공상을 하곤 했습니다.
혼자라도 혼자가 아닌 듯...
이끼와 마주보며 살았습니다.

몇달이 지나다보니 이끼는
산사가는 길에 놓여있던 그 싱그런 모습을 잃어가고 말았습니다.
힘이 하나도 없이 누렇게 바짝 말라가고,

늦가을 가랑잎처럼 퍼석거리더니 결국엔 돌멩이만 남아버렸습니다.
겨울 우리 아버지 무덤처럼 그렇게...

후회를 했습니다.
그 곳에 살고 싶어하던 이끼였을텐데...
내 눈에 띠고 내 손에 들려졌을 때
이끼는 이끼는...얼마나 가슴이 졸아들었을까?
후회를 했을땐 이미 늦어버린 시간입니다.
세상일이 다 그러합니다.
늦어버린 시간에 눈물을 흘리며 후회를 합니다.
그리고 원망을 하고 증오를 합니다.
다시는 도리킬 수 없는 줄 알면서도 책임감 없는 후회라는 단어를 씁니다.

푸르른 이끼를 보면서 지난 세월의 무상함을 봅니다.
누구를 탓하며
누구를 그리워하며
누구를 미워하며
누구를 기다리는지....

아무상념도 할 수 없는 공허한 상태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을 때가 마음편했을지도 모릅니다.
힐끗 멀끗 기웃거리고
이것저것 가지다 보니 너무 많은 것을 끌어앉게 되었고
끝나지 않을 욕심의 한계를 알게되었습니다.

버림...
떠나버리고 떠나 보내고...
갈 사람 가고 잊을 건 잊고...
내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데...

이끼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을겁니다.
그늘진 응달에서 평생을 살면서도 햇볕을 원망하지 않았고
자신을 키워야할 물이 부족했어도 하늘을 미워하지 않았고
겨우 떨어지는 자잘한 흙에서 양분을 걸러 먹고 이따금 씻어주는바람을 맞으며 살아가고 있었을겁니다.

싱그런 이끼 사진을 보니 내가 키웠던 이끼가 떠올라 한 장의 글을 씁니다.
넋두리고 독백이고 두리번거림이였습니다.
후회는 이미 늦었습니다.
그래도..후회스럽습니다.

지금 이끼를 키우던 돌멩이는 오이지 담글때 쓰고 있습니다.
오이가 물위로 뜨지 않게 눌러 놓는 역활을 톡톡히 하고 있지만
돌멩이는 속으로 그럴겁니다.
'짜거워 죽을 것 같으니 날 내 고향으로 돌리 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