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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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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가 향기'(4)


BY 정화 2001-11-16

그 남자는 하루 이틀 우리 가게에 드나 들기 시작 하더니
우리집에 매일 오다 시피 하였다.

그러면서 장사는 잘 되느냐
옛날에 물건 하러 다닐때 늘 보았다 느니 하며 묻지도 않는 말을
자주 하였다.

나는 이런 사람 일수록 올바른 눈으로 처다 보지 않았다.
대답도 잘 해주지 않고 나 할 말만 하였다.

편견이 사람을 한없이 오만하게 만드는지 나는 남자로 인해서
혹독한 마음의 겨울을 맛보고 서야 알았다.

하나님 께서 이러한 섭리를 통해서 나의 편견을 가차없이
깨뜨리셨다 고 생각 한다.

나는 뭐 이런 사람이 있나
알고 싶은게 왜 그렇게 많냐 하며
소 닭 처다 보듯 하였다.

언젠가는 비가 몹시 오는날
와서는 책을 읽는 나에게
책 읽는 모습이 아주 좋아 보인다고 말을 시켰다.
그러면서 나를 존경 한다고 해서 나는 속으로
존경 씩이나 하며 콧 방귀를 뀌었다.

이 남자는 처음 부터 나에 대해서 다른 사람으로 부터 듣고는
많이 알고 있었다.

그러면 이사람에 대해서 읽는 분들이 빨리 이해 할수 있게
설명을 한다면

이남자는 내가 남자에 대해서 편견이 있듯이 여자에 대한 편견이
심했다.

그이유는 어머니가 속아서 남의집 재취로 들어가서 그 사람을 낳았고
사춘기 쯤 되어서 아버지가 돌아 가셔서
어머니와 둘이 살기를 원했는데
어머니는 거부하고 또 다른 남자와 살게 되어서 혼자서 외롭고
힘들게 살아서 여자에 대한 편견이 심한 이유였다.

그렇게 외롭게 직장 다니며 살다가 선을 보게 되었는데 첫눈에
반해서 결혼한 여자가 지금은 이혼한 전부인 이다.

아들 하나를 낳아서 지금은 군대에 갔다.

자랄때 맘껏 받지 못한 사랑의 한을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과
살면서 풀어 가고 있을때 불행은 또 이사람의
뒷통수를 때렸다.

아내가 둘째 아이를 가지고 몸이 좋지 않아서 산부인과 에서
진찰을 받았는데 뜻밖에 융모 상피암에 걸려서 젊은 나이에
여자의 상징인 자궁을 들어 내고 말았는데...
여자의 할일을 못하는 아내...
처갓집 에서도...

자라면서 고생 많이 했는데 젊고 좋은 여자 말해 ?테니 결혼 하여
아이 더 낳고 행복하게 살라고...

아내가 애원해서 내키지 않았지만 이혼하고 혼자 산다고 하였다.

내가 존경 스러운 이유는 젊어서 혼자 되어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
자기 자신은 아랑곳 하지않고 헌신 하는 것이 그 이유 였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남자 들은 믿을게 못되지...
어떻게 그말을 믿냐 하며 관심도 없었다.

내친구나 친정 에서는 딸 둘을 결혼 시켰으니 좋은 사람 있으면
친구를 사귀든지 더 늙기전에 재혼 하라고 하였다.

이말에 대한 나의 대답은 미쳤나?

개울가에 판판한 돌은 집에 가져다가 항아리나 받쳐 놓지 남자는
뭐하게 하며...
얼마 안있어 후회할 말만 골라 가며 했다.

그러던 1998년 작은딸 결혼 시키고 얼마 안있어
아들이 제 여자친구 집에서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고 하며
결혼을 해야 될것 같다고 하는 것이였다.

나는 안된다고 네가 30살 되어서 간다고 해놓고 무슨 소리...

장인 장모 되실분이 얼른 하자고 한다고.

얼마나 걱정을 하며 지냈던지...

딸 결혼 시킬??는 너무나도 홀가분한 기분 이였는데.

가슴 깊은 곳에서 설명 할수 없는 공허함 으로 인하여 나의 가슴은
커다랗게 구멍이 뻥 뚤렸다.

그 무엇 으로도 치료가 안되고 새벽장을 보러 가면서도 울면서
종점까지 가고 어쩌다 아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를 가려고
지름길로 가다가도 내눈엔 눈물이 쉬지않고 흘렀다.

그러는 중에도 이남자는 지금은 양재에 이사가서 살고 있다고...

혹시 서울갔다 오는 길에 들리라고...

자기집 전화번호도 써놓고 가기도 하고

내가 혹시 서울 갔다오면 어떻게 알았는지...

어저께 혹시나 하고 나의 전화를 기다렸다고...

늘 다정 다감하게 다가 왔다.

노는날 서울에 와서 양재 숲 에서 같이 걸어 보자며 늘 관심을 기울였다.

나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나의 고민도 시작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