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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의 뇌진탕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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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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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이웃(2)


BY 이화 2001-11-08

옆방 총각이 현관문을 톡톡 두드린다.
짖어대는 강아지들 속에서 문을 여니
키 작은 총각 얼굴이 내 눈앞에 마주보인다.
...조금 민망스럽다.

쌍꺼풀 없이 작고 찢어진 눈에 튀어나온 광대뼈,
추운 자연환경으로부터 체온을 보호하기 위한
얇은 입술, 북방 기마민족의 혈통을 이어 받았다는
고대 한민족 우리 조상의 얼굴이 이랬을 것 같다.

밤새 보일러를 돌려도 방이 하나도 따습지 않단다.
수도도 고장이 나서 물조차 나오지 않는다며
새주인인 교회에 대신 연락을 좀 해달란다.
목수인 이 총각은 새벽 다섯시에 나가면 밤 아홉시가
지나야 귀가하니 내가 도와줄 수 밖에 없지.

나 : 혹시...보일러 에어는 뺐어요?

총각: 에...뭐요? 그게 뭡네까?

나 : 방바닥에 보일러 선 있잖아요
거기 물이 들어가잖아요
거기 공기(일부러 영어를 안씀)가 들어가면
방이 안 따뜻해서 보름에 한번 정도 빼줘야 하거든요

총각: 그게 어디 있습네까?

나 : (말 꺼낸 것이 후회가 됨)
그럼...라디에터나 벨브 어디 있어요?

총각: 보일러는 한번 뜯어봤슴다
이상이 없던데...

나 :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저...같이 일하시는 분들에게 물어보세요
보일러에 에어가 찼는데 어떻게 빼느냐구요
그러면 가르쳐 주실거예요

총각: 아...감사함다 아주머이

그런데 이 총각 에어가 뭔지도 모르고 따라서
뭔지도 모르는 에어 빼지도 못하고 결국은 다음날
내가 교회에 연락을 하여 수리담당이라는 사찰집사
영감이 오게 되었다.

역시나 드라이버 하나 달랑 들고 온 집사 영감님-
누전이 된다 해도, 대문이 고장나도,
보일러가 고장나도,수도가 물이 새도
언제나 들고오는 공포의 만능 드라이버-

영감님은 조작법도 모르면서 이 드라이버로
보일러를 텅텅 치고, 물이 줄줄 흐르는 수도관을
땅땅 쳐보고, 누전이 된다는데 우리집의 애?J은 창틀을
괜히 툭툭 치면서 왜 누전이 되지?...
이러다가 고쳐주는거 없이 그냥 돌아간다.

따라서 옆집 총각네 집도 만능 드라이버를 든 영감님의
출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수리인 상태이며
지금까지 수도는 새고 있고 총각은 전기요를 깔고
생활하고 있다.

그날 저녁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어서 외출을 하고 오니
식탁 위에 못보던 탐스런 바나나가 한송이 있었다.
내가 나간 다음 옆방 총각이 아주머이 고맙다며
들고온 것이라 한다. 그런데 표정을 보니 총각과
남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듯 하였다.

남편 : 흐흐흐흐흐흐......

나 : 왜? 무슨 일이우?

남편 : 빨리 통일이 되긴 되야 해

나 : 뜬금없이 통일은 무슨?

남편 : 옆집 총각이 말야...흐흐흐흐흐흐...

바나나를 들고 온 총각이 남편에게 뜬금없이
어떻게 됩네까? 하더란다.
성씨를 묻는구나...나름대로 해석한 남편은
저는 김갑니다...대답을 했단다.

그랬더니 총각이 답답한 사람 다 본다는 식으로
남편을 쳐다보더니 아...그게 아니고 어떻게 됩네까?
또 묻더란다. 그래서 남편은 또 아, 내가 이집 남편인줄
모르는구나...싶어서 내가 이 집 주인입니다...했단다.

이 총각, 콧김을 한번 탱 내쉬더니
그거이 아니고...그 왜...있쟎습네까?
나는 서룬 넷이야요...하더란다.
나이를 물어보는 질문이었던 것이다.

지겹게도 말이 없는 남편은 자신이 겪은 일이 지금도
생각나는지 답지 않게 허리를 꺽으며 웃어댔다.
그러더니 나에게 아주머이는 어떻게 됩네까?...하고
총각 말투를 흉내내어 묻는다.
나도 웃으며 서룬 야?弩潔傷?...

다음 날 낮에 또 총각이 찾아왔다.
바나나를 받아서 그런지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이 총각 등 뒤에서 솥뚜껑만한 두툼한 손을
내밀더니 내 손바닥 위에 메추리알 같은 것을
다섯개 쥐어주는게 아닌가.

중국에서 가져온 우황청심환이란다.
밤에 아주머이 아이들이 기침을 많이 하던데
이거 먹으면 잘 듣는다고 먹이란다.
그리고 약 필요한거 있으면 자기한테 다 말하란다.

우황청심환은 촛농을 입혀서 삶은 메추리알을
까놓은 것처럼 생겼다. 한약 내음이 향긋하니 풍긴다.
저녁에 퇴근한 남편과 나는 종지에 담은 우황청심환을
앞에 두고 심각하니 머리를 맞댔다.

남편 : 아무리 옆집이지만 우리 애들 기침소리까지 들린다...

나 : 그러니까 당신, 짐승처럼 고만 달려들어!

남편 : 어허...이사람이 지금 무슨 소리 하는거야?

나 : 애들이 한번 켁! 하는 기침소리 듣고
우황청심환을 들고 올 정도면
밤에 당신 용쓰는 소린들 안들리겠수?

남편 : 어허...그거야 부부가 살면서 그런 소리 안낼 수 있나?
당신...그렇다고 나 거부하면 안돼

나 : 어이구...감기도 안걸린 애들 사래기침도 다 들리니
지금까지 혼자 사는 총각이 얼마나 심란했을꼬?

남편 : 총각 아니래

나 : 결혼 했대?

남편 : 중국에 부인하구 딸, 아들이 있대
근데 아들은 자기가 전화해도 아버지인줄도 모른대

나 : 왜?

남편 : 아들이 한살일 때 한국에 나왔는데 그 아들이
다섯살 됐다면서 자식이 아버지도 모르는거 보면
얼른 들어가야지...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나...
그런 생각이 든다네.

나 : ......

남편 : (무릎을 탁 치며)
여보,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 : ???????

남편 : 내가 작아서 못입는 옷 있잖아
(살 빼서 입겠다고 버리지도 않고
품고 있는 옷이 한 트럭은 됨)
저 총각이 목수니까 작업복이 많이 필요할거 아냐
(모두 메이커에 한두번 입은 것들임)
그거 정리해서 작업복으로 쓰라고 주자

나 : 어머...당신이 그런 생각을 다 했어?

남편 : 그럼~
우리가 성의로 받긴 받았는데
꼭 되갚는 것도 이상하고 말이야
비싸니까 옷도 자주 못 사입을텐데
서로가 좋은 일 아니겠어?

나 : ^^

그런데 일층에 사는 조선족 아저씨도 마음이 쓰여
옷을 두집에 나눠서 주나 어쩌나...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