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더니 찬 바람이
옷깃으로 스며들어 성큼 겨울이 코 앞에 다가온 느낌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들도 이제는 입었던 옷이 많이 떨어져서
맨몸에 내리는 비를 맞으며 서 있는 모습이 한결 추워보인다.
내일은 수능시험일인데 계절은 어김없이 또 추위를 몰고 와서
많은 수험생들과 그 가족들의 졸인 마음을 더 졸이게 하려나보다.
내가 업고 다녔던 딸도 벌써 자라서 내일 온 종일 씨름을
할 생각을 하니 내가 긴장이 되고 추워온다. 부모로서
충분한 뒷바라지를 해주지 못해서 안쓰럽기도 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준비를 했으니 담담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그 결과에
따라서 진로를 선택할 것이다.
저의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엄마가 입덧이 심해서 잘 먹지도
못하고나서 체중이 평균보다 적게 태어나서 많이 걱정했었다.
몸도 약하고 키고 자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해서. 그런데
키도 작은편이 아니고 체중은 평균 이상이 되어서 여간 다행이
아니다. 감사할 뿐이다.
성격도 원만하고 사춘기도 지났는 지 모르게 지나가서 별로
부모 속을 썩이지 않았다. 아직 지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모르게 지나갔는 지는 모르겠다. 동생과 한 살 차이라서 부모의
사랑을 동생에게 빼았겼는데 동생을 미워하지 않고 동생이라면
끔찍히 챙겨서 누나 노릇을 잘 했다.
부모와 자식의 만남이야말로 천생연분이라고 할 수있고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는 가야말로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가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아빠로 비쳐질까 생각하고 가능
하면 편안하고 자유스러운 아빠가 되려고 노력한다. 그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기왕이면 좋은 아빠가
되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생각이고 아이들도 커가면서 생각도 자라고
판단이 있을 것이다. 그들 나름대로 좋은 아빠, 엄마의 기준이
생길테니 그것을 부모가 어찌 강요할 수 있겠는가.
이제 세월이 흘러 자신들이 엄마, 아빠가 되면 그 때는 저희들의
아빠와 엄마가 어떤 아빠, 엄마였는지 느낄 수 있겠지...
나는 딸 아들에게 무엇이 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길 바란다. 또 성적이 좋던
나쁘던 끝까지 격려하고 믿어준다. 누구나 자식이 우수한 성적과
뛰어난 능력을 가졌으면 하고 바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마음
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또 그 바램이 따라주지 못해서 자식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나는 우리 집 아이들에게 편안하고, 자유롭고, 또 끔찍히 자신들을
사랑했던 아버지로 기억되길 바란다.
오늘밤 딸은 편안히 잠을 자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인생의 진로에
영향을 미칠 시험을 앞두고 긴장이 되겠지. 부모인 나도 긴장이
되는데 당사자인 딸은 당연히 불면의 밤이 될 것이다.
그러나, 딸아 편안히 자거라. 비록 부모로서 충분한 뒷바라지를
못해주었지만 너는 최선을 다했고 이제 겸허히 그 결과를 받아
드리면 되는 것이다.
안녕, 내일 아침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나서 수험장으로 향하길
바란다.
아컴 가족 여러분의 수험생들도 편안한 잠을 자고 내일 시험을 잘
치루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