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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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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긴 잠..


BY 봄비내린아침 2001-11-06

큰 녀석 언제부터인지 자전거타령을 시작했더랬다.
사촌형이 타는 기어변속이 되는 자전거를 탐하며 사 달라고 졸라대었었지만, 시력이 나빠 안경도 끼고 다니고 더우기 운동신경이 그다지 좋지않은터라 미루고 미루기를 몇번.

휴일오후,
신랑과 함께 나가 아이가 원하는 자전거를 사주었다.
절대로 큰길가로 끌고나가지않는다는 조건 붙여 꼭꼭 약속을 하면서..
너무 기뻐 얼굴가득 행복함이 젖어나는 큰아이에 반해, 작은아이 얼굴엔 부러움과 불만이 거득하다.
2년쯤 안타고 세워둔 보조바퀴달린 자전거를 끄집어내어 체인도 갈고 안장도 높이고 보조바퀴떼고 연녹색 바구니까지 떼어 깨끗이 손을 봐주니 그제사 흐릿하게 웃었다.
덧붙여 거듭 다짐하기를, 저도 3학년이 되면 형과같은 자전거를 사주기로...

둘은 해으름이 내릴때까지, 제법 쌀쌀해진 늦가을추위에 아랑곳않고 서툰 두바퀴자전거 운전연습에 몰두하였다.

잠들기 전에 큰녀석 내게 귓말로 부탁하기를
"엄마, 새벽 다섯시에 나 깨워줘!"
"알았어"
묻지않고 선뜻 그러마고 답했다.
종종 그런일이 있기때문이다.
큰아이는 나나 저희 아빠를 닮지않아 잠이 많은 편도 아니고, 신경도 꽤 예민한 편이다.
전날 읽지못한 책을 읽거나, 학교수업이며 학원시간에 쫓겨 다 보지 못한 비디오를 보거나, 꼭 보고싶은 티비프로를 녹화했다가 보기위해서 올해 4학년인 큰녀석은 종종 새벽잠을 부비며 일어나곤한다..

그러려니 했었다.
그리고, 그 모닝콜을 제대로 해주지않으면 그날은 온집안이 시끄럽기 때문에 다음날 아침 나는 정확하게 다섯시에 녀석의 잠을 깨워주었다.

그리고 아직 이른시간이라 나는 다시이불속으로 들어갔는데..
소란한 소리에 눈을 떠니, 새벽바람에 볼이 꽁꽁 언 두녀석이 현관문을 밀고 들어온다.
"어디갔다와?"
"자전거 연습하러..."
"뭐?"

한 한달전쯤부터 나도 신랑힘을 빌어 운전연수를 받았다.
운전대를 처음 잡아본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운전이 하고싶어진다.
그 마음 같으리라 생각하며 그냥 웃었다.
아침을 챙겨먹고도 한참 시간이 남자 가방을 등에 멘 두 녀석 다시 아래로 내려가 삼십여분 자전거를 타다가 학교로 갔다.
내려다 보니, 제법 속도를 내며 방향을 잡아가는듯 하다.

낮에 외출할 일이 생겼다.
밖에있는 틈틈 집으로 전화를 했으나 통 받질않는다.
짐작키를, 자전거를 타나부다..생각했는데..

8시쯤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와 초인종을 누르니 묵묵부답이다.
열쇠구멍에 들어간 열쇠는 좌우 움직여주질않으니, 안전콕크를 눌러둔 모양이다.
한시간이 넘도록 문을 두들겨도 보고, 목청높여 불러도 보고, 벨도 수십번 눌러보았지만 철문안에선 한밤중이다.
아래로 내려와 올려다보니 불은 훤하게 켜진채로 고요만이 내리고있다.
관리실에 들러, 인터폰도 해보았건만 역시나 소식이 없다.
쌀쌀한 날씨에 한시간여를 발 동동 구르며, 애를 태웠더니 으스스하니 피로와 긴장감이 몰려왔다.
할 수 없이 택시를 타고 가까운 동생네로 갔다.

퇴근해서 돌아온 신랑과 교대로 새벽두시가 넘도록 전화를 해댔건만, 너무나 달콤하고 곤한 잠에 빠진 녀석들은 여전히 묵묵부답..
설핏 눈을 붙였다가 다시 전화하기를 수십번.

새벽다섯시, 단음만 계속되던 전화기에서 금방깬 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따주는 큰녀석, 사태파악을 위해 내 얼굴과 아빠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눈만 굴리고 있다.
이제, 곧 불호령이 떨어질 것을 미리 짐작한 눈치다.
꽤많은 작은녀석은 미꾸라지 빠지듯 눈을 부비고 저희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잠든채 하여 굳이 벌받지않으려는 심보이다.
애써, 굳은 표정으로 큰아이 손을 올려 벌을 세워놓고는 방으로 들어서며 신랑은 씽긋 웃는다. 기가 차기도 했지만 아이가 무사함에 안도하는 그런 웃음을 우리는 웃을수밖에..

아침에 등교를 시키며 두 아이에게 말했다.
"오늘부터 안전콕크 눌러지말아!"
씨익 웃으며 내 눈을 마주보던 두 녀석..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그 날 아침, 녀석들은 길고 달콤한 잠을 자고 난 개운함으로 큰 소리를 내 지르며 가벼운 등교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