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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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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롱 각시, 실크 각시...


BY ns05030414 2001-11-05

"여보, 집이 이게 뭐요? 정리 좀 하고 삽시다."
퇴근해서 돌아 온 남편은 이마가 찡그려진다.
"미안해요, 여보... 내 하던 일 끝내고 금방 치울께..."
남편이 집에 돌아 오면 정리 되었을 때 보다는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았다.
뭔가 직접 만들기를 좋아하는 여편은 자기가 하는 일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를 때가 많다.

"이거 얼마야?"
남편은 여편이 시장에서 돌아 오면 가끔 물건 값을 물을 때가 있다.
"몰라."
여편은 이런 경우 물건 값을 기억하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다.
"내가 그렇게 어려운 것을 어떻게 알아... 당신은 이상한 사람이야... 그렇게 어려운 것만 나한테 물어보고..."
여편은 살림하는 여자가 물건값을 모르는 것에 대해 당당하다.
오히려 남편을 이상한 사람 취급이다.
물건값은 값을 지불할 때만 필요한 것이고 그 다음은 골치 아프게 기억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여편의 지론이다.

"여보, 당신 아이들 공부에 신경 좀 써야 되지 않우?"
남들은 학원이다, 과외다, 난리라는 데 여편은 도무지 그런 것에 신경도 쓰는 것 같지 않다.
"그냥 두세요. 지금 안 놀면 언제 놀겠수?..."
여편은 천하태평이다.
아이들 피아노도 바이올린도 쬐끔하더니 그만 두었다.
이유라는 게 아이들이 그만하고 싶다고 했다는 것이다.
엄마라는 사람이 아이들을 얼르고 야단이라도 쳐서 계속하게 해야 되는 것 아닌가?...
여편의 이유는 이렇다.
그런 것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은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하기 싫어하면 연습하는 동안 불행할거란다.
악기를 습득하는 게 일 이 년 걸리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과 그런 일로 실랑이 하고 싶지도 않단다.
내일만 날이 아니고 오늘도 날인데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할 수는 없다나...

아뭏든 남편이 보기에 여편은 보통 엉터리가 아니다.
그래서 남편은 언제 부터인지 모르지만 여편을 '나이롱 각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집에서 만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여편이 나이롱 각시라고 흉보기 시작했다.
말만 번지르르하지 실제는 엉터리라는 뜻이다.

남편의 나이롱 각시라는 호칭이 반복되자 여편은 듣기싫었다.
그렇다고 농담처럼 말하는 남편에게 화를 낼 수도 없고 정색하고 그만 두라고 하는 것도 웃습다.

여편은 때로 맛있는 음식을 해 내는 재주가 있다.
남편이 그 음식에 흡족한 표정을 지을 때 여편은 말한다.
"여보, 나 실크 각시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할 줄 알고 말이야..."
기분 좋은 남편의 대답은 뻔하다.
"그러엄!..."

여편에겐 시부모를 웃기는 재주가 있다.
철이 있는 듯 없는 듯 애교를 떨어 무뚝뚝한 시부모를 웃긴다.
시부모가 기분 좋아할 때 여편은 남편의 턱 밑에 대고 말한다.
"여보, 나 실크 각시지?... 시부모한테 잘 하잖아..."
남편이라고 싫을 리는 만무하다.
"그러엄, 당신이 실크 각시지..."

여편은 자기 옷을 편하고 예쁘게 만들어 입기도 한다.
남편이 돌아 오면 입고서 한 바탕 돌고 나서 말한다.
"여보, 나 실크 각시지? 이런 옷 사려면 얼마나 비싼 줄 알아? 이렇게 알뜰한 나는 분명 실크 각시지?.."
여편에게 비싼 옷을 사 줄 수 없는 월급쟁이 남편은 동의할 수 밖에 없다.
"맞아, 당신은 실크 각시야..."

이불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여편은 실크 각시임을 주장하고 남편은 동의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몇 년이 흐르고 남편은 '나이롱 각시'를 잊고 여편을 '실크 각시'로 부르기 시작했다.

여편은 비로소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런 것을 보고 세뇌라고 하는 거야. 내가 널 세뇌하는 줄 몰랐을거다, 남편아...'
그리고 여편은 그 열매를 즐기기로 하였다.

"여보, 난 실크라서 안돼. 실크는 함부로 하면 안돼. 조심조심해야 된다구..."
여편이 원하지 않는 일을 남편이 원할 때 여편이 쓰는 말이다.
남편의 말투가 거칠 때도 사용한다.
그리고 한 마디 덧 붙인다.
"나 실크하지 말고 폴리에스텔할까?"
그 속에 또 무슨 꿍꿍이가 들어 있는 지 짐작할 수 없는 남편은 울며 겨자먹기로 대답할 수 밖에 없다.
"아니, 그냥 실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