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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56) *제2의 조수미를 위하여..*


BY 쟈스민 2001-11-02

우리집엔 딸이 둘이다.

그 중 작은아이가 소프라노 조수미와 이름이 같다 하여
나는 늘 그아이더러 "제2의 조수미가 되어다오"하며
곧잘 우스개 소릴 한다.

그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엄마, 아빠가 엄연히 있으면서도 그랬던 건
직장에 다니는 엄마가 어린아이 둘을 건사하기엔
너무 벅차다는 구실 아닌 구실로 자의 반 타의 반 그렇게 했다.

아이는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시골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일찌기 땅을 밟고 발에 흙을 묻히며 자라게 되었다.

그 아이는 다섯살이 다 되도록
잠에서 깨어 할머니가 안계시면 으레 텃밭으로 달려나가곤 했다.

그당시 우린 서울에서 살고 있었기에
주말마다 아이를 보러 몇시간씩 밀리는 차량의 행렬을 뚫고서
목이 빠져라 보고 싶은 마음을 참아가며
일주일에 한번씩 딸을 보러 다녔다.

큰아이를 데리고 작은 아이를 보러 다니던 시절에
작은아이만 시골에 놓고 오기가 영 마음이 그래서
몇번이나 데리고 가겠다고 의사를 밝혔지만
너무 어린아이를 남의 손에 맡겨서 기르는 것이
영 탐탁치 않으셨던 건지 ...
자식사랑 남다르신 시부모님께선
그 아이를 보내시지 않으려 했다.

나중엔 정이 들어서인지 점차 더 놓기가 어려워 하셨다.

일주일만에 아이를 보고
눈깜짝할사이에 토요일과, 일요일이 가버리고 나면
돌아가는 발걸음이 얼마나 천근 만근이던지 축축 늘어지는
발걸음을 겨우 떼내곤 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지극정성한 보살핌 덕분이었는지
아이는 비교적 건강하고 무탈하게 잘 자랐다.
지금 그 아이는 7살인데 엄마, 아빠와 한 집에서 산지가
이제 겨우 한2년이 된다.

작은아이를 바라볼 때면 난 늘 무언가 빚을 지고 있는 기분이다.

아직은 하나에서 열까지 엄마 손이 가야할 나이이건만
그 아이에게서 보여지는 아이답지 않은 어른스러움 조차
내게 미안한 마음이 일게 한다.

식성은 또 얼마나 좋은지 아무거나 다 잘먹고 ...
통통한 다리로 청바지를 입을 때면 약간 터프해 보이면서도
귀엽기만 하다.

그 아이가 4살때이던가
놀이방에서 애국가를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여러아이들이 동시에 노래를 불렀는데 우리 아이의 목소리가
유난히 컸었나보다.

할아버지께서는 음정, 박자 정확하고, 큰 목소리로
애국가 부르는 걸 보시고는
아이의 음악적 재능을 높이 사서
내게 적극적인 교육을 해주라고 하셨다.

우유빛 뽀얀 피부에 통통하여 조금은 비만이 우려되는
그 아이는 언제나 명랑하다.
어떨때는 섬머슴아처럼 어디서 배웠는지 이상한 춤으로
우리 가족을 웃겨주기도 한다.

성격도 유순하고 ... 웬만큼 아파서는 아프다고 표현도 잘 않고
조용히 참을 줄도 안다.
아이답지 않게 응석도 잘 부리지 않아 언제나 의젓하다.

그런 아이를 보면서 난 또 그 아이와 내가
떨어져서 살아낸 세월들이 떠올라
마음 한구석이 아프기도 하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한번 들은 노래는 음정, 박자가 웬만큼 정확하게
부를줄 안다는 것이다.

그 아이를 보면서
나는 그 아이가 제2의 조수미까지는 아닐지라도
엄마를 닮아 노래를 좋아하고...
노래로 인하여 행복해지는 시간을
가질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들기도 한다.

아이에겐
그 무엇으로 대신할 수 없는 엄마의 사랑이 필요한 건데
할머니의 크신 사랑으로 자라난 아이를 보면서
내가 자식에게 주어야 할 사랑을 다시금 보게 된다.

이제 7살 난 아이는
긴머리가 그렇게도 멋있어 보이고 좋은 지
종종 엉키고 빗질이 어렵다 탓하는 엄마 말에도 별다른 반응없이
거울 쳐다보기에만 열중하곤 한다.

방바닥에 긴 머리카락이 떨어지거나 말거나
그 아인 긴머리가 마냥 좋은가보다.

아침마다 두 아가씨 머리 빗기는 일도 만만치 않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꼬마아가씨들 멋내는 일에
나는 늘 바빠야 한다.

함께 살지 못하고 떨어져서 산 시간들 동안 해 주지 못한것들을
그 아이에게 난 돌려주어야 한다.

그 아이가 제2의 조수미를 꿈꾼다면
내가 그 꿈을 이루도록 힘을 모아 주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못다 준 사랑까지도
이젠 모두 돌려주어야만 한다.

내 마음속의 빚을
나는 아이를 사랑하는 것으로 갚을 것이다.

큰 사랑을 받고 자라난 아이이니
그 사랑을 나눌줄 아는 아이로 자라줄 것임을 믿고 싶다.

나는 오늘도
제2의 조수미를 위하여
사랑의 눈으로 수미를 바라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