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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명절증후군.....


BY 깊은샘물 2001-01-25



시댁으로 들어가는 문은 철 대문이다, 그 문은 아주 오래되어서 색칠한 페인트 색깔은 희미하게 보인다. 삐그덕 거리는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나무가 타는 냄새가 향기롭게 났다. 시어머님은 화덕 두 개 앞에 앉아서 불을 지피고 계셨다.

작은 화덕에서는 소꼬리가 하얀 국물을 내면서 끓고, 큰 화덕에서는 부엌일에 쓰일 물이 커다란 양은 솥 가득 펄펄 끓고 있었다. 화덕의 활활 타는 불과 어머니의 모습이 꼭 잔칫날의 풍경 같아 보였다.

평소에는 목소리에 힘이 없어 보이시던 어머니가 유달리 명절날만 돌아오면 아주 큰소리로 말씀을 하신다. 그리고 다른 날과 달리 잔소리도 무척 많아지신다. 아직도 오지 않는 며느리들이 있다는 푸념을 들으면서, 난 부엌으로 향했다.

무슨 날만 되면 우리 큰 형님은 제일 먼저 시댁에 와 계신다. 벌써 여러 가지의 일을 한 흔적들이 많이 보였다. 큰 함지박에는 만두를 만들기 위한 재료들고 가득했다. 불기운이 전혀 없는 썰렁한 부엌에서 만두 속을 만들었을 형님을 뵙자 무척 미안한 생각이 든다..

작년 설날에 아버님께서는 만두를 만들라는 명령을 하셨지만, 며느리들은 소리 없이 슬그머니 지나쳐 버렸다. 결국 작년 설에 하지 않았던 만두를 올해에는 꼭 하게 되었다. 시댁에 가면 언제나 우리 시아버님의 목소리가 하늘같이 높기만 하다.

함지박에 들어 있는 만두 속을 보니 아이들 동화 손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가 생각이 날 정도였다.
" 동서 시장 간 사람들한테 문창시장 큰 수퍼에 가서 만두피 좀 사 오라 고해. "
" 네 형님. "
방으로 들어가서 작은 동서에게 전화를 했다.
" 동서 만두피 좀 사와. "
" 야 ! 너희 아버님이 산 것으로 하면 난리가 난다. "
어머님의 불호령에 결국 우리는 만두피를 만들기로 했다. 큰 양푼에다 밀가루를 치대는데, 쉽게 반죽이 되지 않았다. 힘들어하는 날 보시던 어머니가 말씀을 하신다.
" 야, 힘센 너희 신랑 불러서 반죽 좀 주물르라고 해라 "
남편은 자기는 다른 일로 바쁘니 중학생 조카 남자아이에게 시키라고 한다. 덩치는 어른보다도 더 커버린 조카아이가 있는 힘을 다 해서 조물닥거리니 반죽이 금새 부드러워졌다.

형님들과 동서는 부엌에서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고, 난 어머님, 조카들과 앉아서 만두를 만들기 시작했다. 네 시간 동안이나 꼬박 움직이지 않고 만들었던 것 같다.

열심히 밀대를 굴리면서 만두피를 만들어서 주면 방에 있는 식구들은 너도나도 만두를 만들었다. 꼭 추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편을 만들 듯이 만두를 만들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했다.

처음 두 시간 정도는 열심히 만두 만들기를 하던 아이들이 힘들어서 못하겠다면서 뒤로 물러나자, 그 때부터는 형님과 동서가 들어와서 같이 만들었다.만두가 다 만들어지자 방에서는 이제 다른 주제로 바뀌었다.

남자들이 술 한잔을 먹겠다면서 둥그렇게 앉아서 술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남자들이 술을 다 먹고 나자 우리 집안 여자들도 잠시 쉴 짬이 생겼다.

누군가의 제안으로 우리 식구들은 윷을 놀기로 했다. 아이들도 대 찬성이었다. 윷이 던져지고, 모가 던져질 때 식구들은 큰 고함을 지르면서 좋아했다. 정말 한 참을 재미나게 놀고 있을 때 즘에서야 아버님이 오셨다.

어디에서 누군가와 술을 얼마나 많이 잡수셨는지 얼굴은 빨갛고, 말은 약간 어눌하게 하시면서 큰 형님에게 무어라고 말을 계속 하셨다. 아버님이 큰 형님에게 말씀을 하시는 동안에도 우리는 윷놀이를 계속 하고 있었다.

자손들이 많이 모여서 시끌법적 하게 노는 모습이 아버님이 보시기에도 기분이 좋으셨나보다, 그 날도 아버님은 기분만 좋으시면 가끔 하시는 옛날의 살았던 이야기를 하신다.

" 야 옛날에는 네가 며칠동안 일을 해도 쌀 한 말을 사기가 힘들었어, 그 런디 지금세상은 하루만 일을 해도 살수가 있어, "
오랜만에 식구들이 다 모이는 시간이 되고, 기분이 좋으시면 가끔씩 아버님은 이야기를 아주 오랫동안 하신다.

한참 동안은 큰며느리에게 하시고, 그 다음에는 둘째 며느리에게 하신다.
" 야 둘째야 너는 왜 일요일 날 오지 그렇게 않 오냐. "
" 아버님, 시간이 너무나 없어요, 일요일날 집안 일을 못하면
일 주일 내내 너무나 피곤해요. "

직장 생활을 하시는 둘 째 형님은 시댁에 오기가 힘이 드는 것 같다. 전부 며느리들을 붙잡고 이야기를 하시는 아버님이지만, 나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한 번도 하신 적은 없으시다.

우리 아버님이 이런 저런 푸념을 늘어놓으시는 시간이 되면 웬 지 내 마음은 이상해지고 만다.
' 아버님은 왜 나에게 아무런 말씀이 없으실까. ' 생각을 하면서 나는 금새 우울해지고 만다. 아버님도 언젠가 나의 손도 한 번 잡으시면서 ' 셋째야 힘들지 ' 라고 말씀을 해 주시길 은근히 난 바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아버님은 내가 마음이 들지 않는 건지 속타는 이 며느리의 마음은 잘 모르시고 계속 따른 며느리들 칭찬만 하신다.
아버님의 일장 연설이 있을 때 마다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서 가슴앓이를 하게 된다. 아버님한테 인정을 받으려고 효도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웬지 나하고 아버님과는 많은 거리감이 있다는 것이 느껴지곤 해서 슬퍼진다.
아버님의 일장 연설이 막 시작이 되고, 내 존제는 희미해진다는 느낌이 들 때 난 슬그머니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언제나 저녁 설거지가 끝나고 나면 노래방에 가서 형제들끼리 즐기는 시간을 가지는데. 난 그 냥 집으로 오고 말았다.

수술한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좀 피곤하다는 핑계로 집으로 간다고 하니 남편은 차로 태워다 주었다. 몇 분전에 사람들의 소리로 가득한 공간에서 갑자기 조용한 공간으로 이동을 한 느낌이 참 쓸쓸하게 느껴졌다.

이 달에도 난 딸아이의 교육비가 아까워서 유치원에 보내지 않았다. 그렇게 아끼고 아낀 돈으로 부모님 생활비를 드리고 명절 용돈을 또 따로 드렸다. 아마도 다른 형제들 가난한 호주머니 사정을 염려한 남편이 돈을 더 많이 드린 것 같다.

남편에게 돈을 받아서 두둑해진 지갑에서 아버님은 손자 손녀들에게 세배돈을 미리 주셨다. 그리고 또 큰 형님에게는 따로 이십 만원을 주셨다. 거절도 하지 않고 돈을 받아서 챙기는 큰 형님이 왜 그렇게 야속하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결국 효자인 내 남편은 어머니 아버님의 명절 품위 유지비를 위해서 많은 돈을 준비하고, 효자아들의 며느리 난 웬지 속 쓰리는 마음이 되고 말았다. 꼭 속이 쓰릴 것까지는 없는데도 내 마음이 좁아 터져서인지 자꾸만 속이 상하다는 생각이 들고 나만 힘들게 산다는 느낌이 들고 만다.

명절 날 음식을 만드는 시간은 무척이나 즐겁고 좋으면서도, 이런 저런 일이 생기고 나면 난 우울이라는 것이 찾아와서 날 괴롭히고 만다. 아마도 이런 마음들을 두고 명절 증후군이라고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