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5학기만 다니고 나면 다 받는 석사학위를..
난 7학기를 다 다니고서야, 이제 겨우 논문작성에 들어간다.
그것도 제목에 제동이 걸려 이제서야..
어쩌면
난 공부에 일가견(一家見)이 없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국민학교에서 부터 중학교까지 모든과목이 미미미미미~
올'미'인 경우가 아마도 내 말곤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중학교에서도 '미'이듯
고등학교에서도 마찬가지로 반에서도 중간, 전체석차에서도 중간~
더하지도 못하지도 않은 중간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물론 꾸준하게 공부도 안해 보았지만 어쩌다 벼락치기 공부를 해서
시험을 치루워도 중간 이상에서 벗어나질 못했었다.
사형제 중 유일한 여자로 태워나..
점차 진학의 문제에서 집안의 걱정스러운 막내딸로 자라게 되었다.
위로 오빠셋은 일등을 놓친적 없이 그렇게..그렇게..
서울대로 또 유학길로 오르면서 나름대로 진로가 보장되고..
난
내가 원하는 학과와 상관없이 성적에 맞추워서 겨우 턱거리하듯 붙은 여대에서 그저 그렇게 다니다가 88서울올림픽자원봉사를 하면서 조금씩 내가 하고 싶은 길이 이걸까??
란 생각도 했었다.
그렇게
무의미한 학창시절을 보내고
졸업과 동시에 xx스카우트 단체에 입사하면서 조금씩 내가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알것만 같았을때.
그것두 잠깐..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그만두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취미생활에서 봉사로
센타일로 이어지면서 또다시 나를 찾아 등록했던 대학원...
파릇~파릇~
금방이라도 툭 터질 것 같은 싱싱한 젊음옆에 곱사리끼워
머리에서 발끝까지 빠른 회전에 난 전천후 세탁기처럼 둔하기만 했었다. ~
그렇게
어렵사이 자손심을 구겨가며 물어도 보고
때론 못마시는 맥주도 사죠 가며....
머리회전 보단 경험과 이해로 여기까지 오면서
참으로 길고도 멀었구나 생각을 해 본다,
의논도 없이 대학원에 등록했던점.
또 그것이 불만이었던 점
그래서 많이도 힘들게 했던 남편..
늦었지만 이해해 준 남편에게
고마움과 기쁨을 주고 싶어진다.
석사학위를 따서
내가 무엇이 되기 보다
지금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되고 양질의 교육이 된다면
더 없는 바램이고 나에게도 있어서 삶의 질이 윤택해 진다면 더 없는
좋은 결과로 만족해야 겠다.
어제 뉴스에서
입시상품을 보면서
입시때마다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
진로...합격...
원하는길 잘 선택해서 쓰시길 바라는 맘으로 일기쓰듯 적어 봅니다.
써 놓구 보니 부끄럽기도 하네요...
참!! 호수님 리플 감사했어요.
그리고 따뜻한 님의 마음 늘 느끼고 있습니다.
호수님 뵐때마다 느끼는 마음이지만 참으로 따뜻한 사람이란 생각을 하곤 합니다. 늘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