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남편이 술이 곤드레 만드레 취해서 전화를 했다.
"나 지금 들어가니까 택시비 준비해서 기다리고 있어."
무작정 전화 해서 택시비 들고 기다리라고....
'이 인간이 차 끊어지기 전에 들어오지 않고...'
'요즘 아파트 분양금 때문에 힘들어 죽겠구만...'
속으로 씩씩거리며 밖에 나가 기다리니 택시 하나가
미끄러지듯 내 앞에 선다.
택시비로 거금 35000원을 지불하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남편 낑낑매고 침대에 눕혀놨다.
"술을 데체 얼마나 마신거야?~~돈두 많다,돈두 많어..~~"
"너무 그러지마라~~"
"뭐라구?... 이 사람이 정말........"
"직원들 하고 고기 좀 먹고했으니
돈좀 나올꺼야,뿜빠이 하기로 했거든.."
"얼만데 뿜빠이를 한다는거야?..."
술먹은 사람하고 실랑이 해 봐야 내 입만 아프니
깨면 보자 하고 벼르고 있는데
남편이 대뜸 한마디 던진다.
"자갸~~돈 걱정 하지마...자기 부자니까.."
엉~~이게 무슨 소리야...
"도데체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무슨 얘기 하는거야..."
"자기 요즘 돈 때문에 신경 많이 쓰이지?"
애 크기 전에 조금 넓은 아파트로 이사하려고
쬐그만 아파트 하나 팔고 대출을 받고보니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
분양금 때문에 요즘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지만
남편한테 그런 티를 낸적은 없는데,
난데없이 그런 얘길 하니
영문을 몰라 의아해 하고 있는데...
"어떻게 잘 되겠지...넘 걱정하지마"
"어떻게 잘 되다니...한달에 나가는 이자가 얼만데..."
살면서 돈 얘기 안하고 살려고 했는데
그것도 뜻대로 되지는 않는지...
속이 상한다.
무턱대고 저질러 놓고 보니 이것 저것 걱정도 많은
요즘이었다.
"자갸~~나 잘못되도 자기랑 연희 먹고 사는덴 지장없을거야"
"무슨 소리야? 데체..."
"나 죽어도 생명보험에서 돈 나오지,연금에서 나오지,
또 국민연금에서 나오지...."
그말을 하고 바로 남편은 잠속으로 빠져든다.
"아니~~자기 무슨 말을 하는거야...자기 없으면 다 무슨 소용이야?"
이 사람이 갑자기 이런 말을 왜 하는지....
자기 없어도 우리 두 모녀 걱정없이 살라고 그런걸 들은건가
생각하니 한쪽 가슴이 미어지는건 왜인지....
어느새 골아떨어진 남편의 얼굴을 보니
측은하고 힘들어 보인다.
워낙 동안인 얼굴이었는데,이 사람도 이제 나이를 먹는구나...
하나 둘 주름살도 보이고 귀 밑으로 흰머리도
이젠 제법 많이 보인다.
한창 권태기 때는 그런것도 안 보이고 답답한 성격으로
트러블도 많아 부딪히기도 많이 했는데....
나도 나이를 먹는건가....
이제 이 사람이 불쌍해 보이는 맘이 다 든다.
측은지심이란 말이 이런걸 두고 하는 말인가...
얼마전 새로 다른 부서로 발령받고 한동안 힘들어 해도
따뜻한 말한마디 못 해준게 생선가시 걸린것 마냥
맘에 걸린다.
한참을 그렇게 잠든 남편의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여러가지 상념에 젖게 된다.
회사에서도 한참 힘든 시기이고 맘적으로도 책임이 막중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짠한게 이제야 정이란게 뭔지,
결혼하고 지금껏 그렇게 착한 아내는 아니었다는 생각에
그렇게 지친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남편의 얼굴을 한번 쓸어 보고 머리 한번 넘겨본다.
'자기야~~그렇게 넘 힘들어 하지마...
우리 함께 노력하자...나 더 잘할께...
그리고 다신 그런 얘기 하지말고...
우리 한텐 그 무엇보다 자기가 소중하니까...'
잠들어 있는 그의 얼굴을 보며 낮게 속삭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