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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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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맞은 기억


BY 얀~ 2001-10-25

도둑 맞은 기억

코흘리개 동무의 전화다.
"미안해 오늘 송금 못하겠다"
"무슨 일 있니?"
"식당에 도둑이 들어서 말야"
"그래 신경 쓰지 말고"
"경찰서 왔다오니 시간 빼앗기네"
"그래 더 큰일 안 벌어진걸 다행이라 생각하자"
"응 그래"
친구도 기억을 하려나. 올해 가든하던 동네 친구가 목숨을 잃었다. 서로 말은 오가지 않아도 친구도 알 것이다.
장사를 하면서 소소히 도둑을 만났다. 결혼하고 딸이 네 살 때였다. 옆 가게가 식당이었는데 아주머니가 허둥대며 전화를 받으란 것이다.
"무슨 전화요?"
"경찰서래 확인 할 게 있다는데"
"무슨 일로?"
"남편에 관한 일이래"
"남편요?"
남편은 점심을 먹고 삼십분 전에 나갔다. 무슨 일인가 싶어 급하게 옆 식당에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여기 경찰서인데요"
"어디 경찰서요?"
"남편이 이정철씨인가요?"
"네 맞는데요"
"뭐 걱정은 말아요 지금 연락을 받고 나가는 중인데..."
"무슨 말씀이세요 무슨 연락요?"
전화가 뚝하니 끊어진다. '이상한 전화네' 생각하면서 가게에 들어섰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휴대전화의 벨이 하번씩 울릴 때마다 심장이 조여온다. 신호가 떨어진다.
"여보 별일 없지?"
"무슨 일?"
"경찰서라고 전화가 왔었거든"
"무슨 소리야"
"응 괜찮음 다행이고"
가슴을 진정하고 잠든 딸아이를 본다. 그런데 뭔가가 없어진 듯하다. 수제금고 자리가 비어있지 않은가. 또 한번 가슴이 울렁인다. 정신이 아득해 진다. 금고에 패물하고 아침에 받은 수표하고 통장이 몽땅 들어있지 않은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아무래도 도둑이야 금고가 없어졌어"
"뭐?"
"그 속에 패물도 있고 수표도 있고 통장도 몽땅 들었는데"
"일단 은행에 전화를 하고 카드사에도 연락하고..."
"알았어"
경찰서에 신고를 했다. 일단은 찾을까 싶어서다. 정신 없이 각 은행에 전화를 걸었다. 떨리는 손으로 분실 신고를 내놓고 한숨 돌리고 나니 경찰서에서 차가 왔다. 서까지 가자는 거였다. 옆집에 아이를 맡기고 차에 올랐다. 경찰이 묻는다.
"어떤 걸 잃어버렸죠"
"패물하고 수표하고 통장이요"
"돈은 얼마 들어 있었죠?"
"수표 십만원권 열장하고 현금 합치면 대충 백삼십만원정도네요"
"패물은 어느 정도 있었죠?"
"네?"
"돈으로 계산하면 말이죠"
아이 둘 백일 돌 때 받은 금반지와 패물들을 떠올리며 분통이 터진다. 일일이 어떻게 돈으로 환산한단 말인가.
"대충 삼백만원정도"
시계를 본다. 경찰은 자판을 톡톡 치며 서류를 정리하고 있다. 분통이 터진다. 돈도 돈이지만 아이를 맡기고 한시간 넘게 붙들려 있는 것이다. 머리를 꾹꾹 눌러본다. 잃어버리고 시간 뺏기고 아이는 걱정이고...
경찰차를 타고 가게에 와서 생각해 본다. 거의 한달 동안 추리를 해봤다. 꿈에서도 추리를 하는 통에 잠을 못잤다.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았는지 남편의 이름은 어떻게 알았는지 단독 범행인지 아니면...
'사람 상하지 안아 다행이야'란 말과 '액땜했다 쳐'란 말로 망각하게 됐다. 세월을 이길 장사가 없나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했던가 수제금고 대신 대형금고가 들여졌다.
올 여름 남편은 바빠서 가게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나 역시 주변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집에 가서 잠자는 시간도 빠듯했다. 늦잠을 자고 시간이 촉박해 남편과 밥도 못 먹고 가게에 나왔다. 일하는 사람이 가게 앞에서 기다린다 생각하니 급했다. 부랴부랴 가게문을 열고 들어섰다. 순간 야릇한 느낌이 들었다.
"여보 도둑 맞았다"
"무슨 도둑"
제품들이 약간씩 없어져 남편은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오디오 두 대, 전자렌지 두 대, 비디오 두 대, 드라이기 면도기..."
"아무래도 이 동네 애들인갑다. 딱 두 살림 훔쳐갔네"
"그러네"
금고에 눈이 간다. 웃음이 나왔다.
"왜 웃어?"
"금고는 그대로네!"
"그나마 다행이네"
"일이나 잘 갔다와 조심하구"
"후후후"
커피를 느긋하게 마신다. 경찰서고 뭐고 주변 사람이고 알리지 말자. 알려봐야 소용도 없구. 액땜했다 치자. 사람 안다친거 다행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