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14세 미만 아동의 SNS 계정 보유 금지 법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41

이사에 대한 추억


BY 얀~ 2001-10-23

이사에 대한 추억

직장 생활하는 동안 이사가 많았다. 아파트 모델 하우스였는데 새로운 분양이 시작되면 새롭게 시작하였고 분양이 끝나면 축소해서 건설현장의 임시 사무실로 옮겨졌다. 도움의 손길이 있어 건설현장의 포크레인도 동원되었다. 금고가 무거워 사람의 손으론 도저히 옮기기 곤란해서.
은행 업무를 보고 사무실로 가는 길, 농협 신축 사옥을 짓는 현장에 들린 적이 있었다. 넓은 사무실 끝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여직원이 별로 없는 터라 그리운 얼굴을 보려 들린 것인데 포근한 느낌을 받았는지 동생처럼 챙겨주시는 분이 계셨다. 옆 의자에 앉았다.
"건설 현장 사람하고 결혼하면 혼수 많이 하지 말어"
"네?"
"딱 택시 분량에 싣도록"
"네!"
한쪽 일이 정리되면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했다. 그에 따라서 이사도 잦았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친구와 차 한잔 마시며 얼굴 보러 가면 낮잠을 곤하게 자는 과장님을 비롯해 기사들은 표적이 되었다. 친구에게 루즈를 빌려 얼굴에 장난질을 쳤다.
현장 사무실을 막 나서는데 말수가 적은 총각이 들어섰다. 몇 차례 차를 마시자고 했지만 기회를 번번히 놓쳤다.
"사무실서 급하게 과장님이 찾으시던데"
"그래요..?"
"빨리 가봐 큰일났군"
유니폼을 입으면 보폭이 작아져 종종거리며 달려갔다.
"과장님 찾으셨어요?"
"...."
이상한 듯 바라보신다.
"과장님이 급하게 찾는다고 이충수님이 말하던데...?"
"그랬어. 그 친구 외국으로 나가게 됐다고 인사차 왔었어"
"외국에요?"
떠나면서 말을 나누진 못했지만 오래도록 남아 있다. 많이 떠나고 새로운 사람이 온다. 오래 버티지 못하고 비어있는 책상을 보면 왠지 서글퍼졌다.
사업이 완료되고 딴 회사로 가면서 업무 파악에 바빠 쉽게 잊혀져 갔다. 파견 직원들이 빠져나가고 여직원 하나와 남겨져 있다가 현장으로 이사를 갔었다. 남자직원은 없었지만 정리도 빨랐고 걱정도 없었다.
현장과는 다른 업무니 출근 시간도 달랐다. 아침 8시 20분 출근을 하면 과장님이 이층 난간에서 소리쳤다.
"참 팔자 좋다 놀러 다니는 거지?"
"아녀요"
챙 넓은 모자를 쓰고 다녔다. 현장 밥을 아침 점심 저녁까지 한솥밥을 먹는 일이 많아졌다. 땀 흘리는 사람을 지켜보는 것이 행복이었다. 아파트 층수가 올라가고 외부 도색과 실내가 정리되었다. 황토 흙엔 보도블럭이 깔리고 나무가 심겨지고 정리를 앞두고 나니 요술같았다. 직장에서의 마지막 이사가 남아있었다.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없는 곳 잘 꾸며진 건설기술연구소로 들어갔다. 차 한잔 들고 창으로 내다뵈는 사람들의 땀과 욕이 섞인 말 그리고 끈끈한 정이 없는 말끔한 공간이었다. 이층과 일층이 뚫려 있는 난간에 기대어 넓은 창으로 하늘을 보면서 마지막 직장을 정리했다.
직장을 그만 두고 이십일 동안 지금의 남편과 함께 새로운 장소로 이동이 시작되었다. 9평의 공간에 매장과 방과 부엌이 딸린 보금자리를 틀었다. 바쁘고 힘겹고 어려운 나날이었지만 처음으로 내 공간이란 설렘이 강하게 남아 있다. 줄자로 재고 나무를 잘라 사포질을 하고 도색을 하고 못질을 하고 장판을 깔았다. 9평 공간에서 시작해 집을 사서 이사를 했지만, 9평 공간에서의 시작처럼 설렘은 없다.
대지 134평에 소나무가 있는 정원, 미니 이층으로 꾸며진 집이다. 제일 존경하는 부부에게 집을 보여드린적이 있다. 이사를 몇 일 앞둔 시점에.
"읍내동 아파트 이사갈 때 좋아서 잠도 이루지 못했는데.."
"....."
"몇 일 동안 좋아서 집안 이곳저곳을 보고 또 보고 그랬어"
"....."
감각이 없다. 좋은 건지 어떤 건지.
7년 만에 모임에 참석했더니 회장님이 12월 모임을 집에서 하자신다. 좋은 집에 사니 초대하라 한다. 사실 집이 좋은지 모르겠다. 넓고 커졌지만 커질수록 욕심으로 채워져 있고 '행복하지'하고 묻는 말마다 그렇지 못해 유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