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해서 시집에 가니 식구들이 많다.
할머니, 아버지,어머니, 오 남매에 나까지 더하니 계산에 둔한 나는 밥상 차리려면 숟가락 세기가 어렵다.
숟가락 세서 놓는 것은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실력이니 좀 어렵긴 해도 그럭 저럭 해 낸다.
더 어려운 것은 시집과 친정의 문화 차이다.
이런 것을 '문화의 충격'이라고 부르는가 보다.
우선 밥 먹는 것 부터 다르다.
친정에서는 어른이 먼저 숟 가락을 들어야 식사가 시작된다고 했다.
시집의 어른이신 할머니는 방 안에 앉아 있다가도 밥 상이 들어 가면 밖으로 나간다.
마당에 있는 수도에서 손도 씻고, 텃 밭에 침을 ?b어 거름도 더 하고, 집도 한 바퀴 돌아 안심하고 밥을 먹어도 되는 지 확인하고 들어온다.
밥도 식고, 국도 식고, 찌게도 식어 있다.
다른 가족들은 할머니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식사를 한다.
여자는 제외하고.
그 밥상에는 할머니를 제외한 여자들의 자리는 없다.
수저만 한 쪽 구석에 놓여 있을 뿐.
식구는 아홉인 데 시어머니는 밥상을 하나만 놓는다.
십 이 인용 교자상이라고 하지만 할머니와 남자들로 빈 자리가 없다.
굳이 좁혀 않으면 자리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할머니도 남자들도 모른 척 한다.
머리가 나빠서 정말 모르는 것인 지, 인간성이 나빠서 모르는 척 하는 것인 지, 밥 먹는 문화가 저질인지 모르지만 그 들은 여자들을 위해 자리를 좁혀 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나는 밥 먹을 자리가 없어서 슬몃 서러워진다.
내가 시집을 온 것인 지, 먹을 밥이 없어 거지질을 온 것인 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스쳐간다.
밥을 다 먹고 일어서는 남자들이 생길 즈음 여자들의 식사가 시작된다.
그 것도 밥상에서가 아니고 방 바닥에서.
남자들이 나가고 밥상에 빈 자리가 생겨도 시어머니 밥상에서 먹다 남은 반찬 그릇 하나 내려 놓고 방 바닥을 고수한다.
오랫 동안 그런 문화에서 살아서일까, 이 집의 고명 딸 시누도 별 다른 불만이 없어 보인다.
먹다 남은 반찬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 것도 서러운데, 한 두 번도 아니고 번번히 방 바닥에 앉아 밥을 먹으려니 '이게 아닌데...'하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 우리 밥상에서 먹어요."하고 제의를 한다.
그냥 방 바닥에서 먹자고 한다.
나는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다.
딸딸딸, 끝으로 아들 간신히 얻은 집의 셋째 딸이지만 친정 아버지는 남 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니 누나는 막내 딸이니까 어리광을 부려도 되지만 너는 남의 집 큰 아들이니까 안 된다."라고.
남자들 물도 떠다 바치고, 방 바닥에 앉으니 친정이 더욱 그립다.
나는 누나고 너는 동생이니 물 떠오라고 하면 물 떠다 주던 남 동생 생각도 난다.
시어머니 방 바닥에서 밥을 먹거나 말거나 당신 좋을 대로 해도 좋지만 나는 정말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바닥에서 드세요, 저는 상에서 먹겠습니다."
그리고 방 바닥에 있던 밥 그릇, 국 그릇을 상 위에 올렸다.
그 날 시어머니하고 시누는 방 바닥에서 나는 상에서 밥 먹었다.
그 다음 부터 우리 시어머니 상 두 개 씩 차렸다는 옛날 이야기...
나 아직도 가끔씩 궁금하다.
혹시 시할머니 밥상만 들어 가면 일어나 나가시던 이유가 여자가 먼저 수저 들기가 쑥스러우셨던 것은 아니었을까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