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14세 미만 아동의 SNS 계정 보유 금지 법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10

변두리에서 겨울 아침의 회상(4)


BY 영광댁 2001-01-16

삶의 변두리에서

겨울 아침의 회상 (4)

뻥새야.
너희들이 자는 목화솜 요 위에 등짝을 부렸더니 따뜻하더라.
18도로 고정이 되어 있는데 바깥 날씨가 보통이 넘나보지.
짝이 잘 맞은 샷슈 유리창에 바람한 점 들어 올 수 없이 보온 장치가 다 되어 있어도
바람은 늘 들나들기 마련이지.사람사는 것이 한줄기 바람이니까.
잠이 쑤욱 쑥 빠지는 것 같더라. 늪에 몸이 빠지는 것같더라니.
지난번 윗집 형아네서 2층 침대 가져가라는데 네 대답만 하고서 어물쩡하다가
다른 사람이 가져갔다는 소리를 듣고 내심 좋아했단다.
너희들이야 뛰기도 좋고 놀기도 좋고 하겠지만 어째 쉬 마음이 가지 않더라니
그래도 요즘 같은 날들이 얼마나 좋으니, 요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맛도 있고..

엄마가 너희들만 했을때는 요 밑에는 늘 젖은 것들이 들어가 있었단다.
양말짝은 기본이였지, 마르기를 기다리며 들어가 있었던 것들이 양말짝들 뿐이였을까?

엄마가 어제 빨래를 삶고 그 삶은 물로 여기저기 부엌 세간들도 닦고 , 세시간을 엎드려 빨래를하였던가. 마음 안정이 안되거나, 한 여름 산꼭대기 위에 있는 미류나무처럼 마음이
흔들릴 때 그렇게 빨래를 하곤 했단다. 그러니 그렇게도 미련하게 너희들을 키우면서도
천기저귀를 날이면 날마다 빨래판에 코박고 벅 벅 문질러 빨았겠지.
다 키우고 나서도 멀쩡하던 천기저귀를 두고 아까워 하기도 했고...
세 시간 이상을 빨래를 하고 나서 탈수를 시도 했더니 여느 집이라고 추위가 침입하지
않았겠어. 상습범처럼 얼지 않으면 안되는 집에서 살았으니까. 더운 물 한 바가지로 언
세탁기 바닥을 풀어서 탈수를 해내고 빨래들을 탈수해 냈단다.
어제 엄마가 한 말 들었지?
세탁기야 너무 고맙다 . 그렇게 물 줄줄 나던 것을 이렇게 가실가실하게 말려 토해내다니...
얼마나 좋은 세상에 사는지 몰라. 3분 탈수에 엄마가 친 방안 빨랫줄에 널린 빨래들은
이제보니 다 말랐구나. 밖이 저리 엄동이여도 잘 말라지는 빨래를 보면서 얘기했던가...

아무리 물빠진 옷들도 다 얼음이 되곤 했다고. 손가락으로 치면 탁탁 거렸단다.
잘 언 천들을 부러 찢으려고 구부리기야 했겠니. 한번씩 재미삼아 양손으로 구부려 보던
것들이 뚝 뚝 부러지고 말았으니까. 물론 외할머니께서 누구냐 하면 다들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지.물이 빠지는 부분으로 옷에도 고드름이 길게 길게 열리곤 하였더니라.
겨울에는 정말 옷빠는 것이 참 힘들었단다. 그러니 옷들도 참 오래도 입었고...
때국놈 되겠다 갈아입자, 하는 소리들도 많이 들었지, 때국놈들이 사는 곳은 워낙 추워서
한번 입으면 다 떨어져야 벗는다고 했으니까.
엇그제 출근하던 길에 밑바닥이 너덜거리는 짤순이를 누가 버렸더구나. 짤순이라고 네가
알겠니.탈수만 되던 가전제품이였는데 80년대 초순쯤 결혼한 둘째 이모가 지금 외할머니 집으로 짤순이를 한 대 사보냈어.일도 안하고 편하게 사는 도시생활에 자기만 좋은 것 쓰면 늘 엄마나 동생 생각난다고, 얼마나 잘 먹고 사는 것도 아니면서 색다른 음식만 차려두고도
엄마나 동생들 생각에 당연한 것들을 미안해 하며 살던 이모가 보내준 짤순이는 동네에서
인기가 얼마나 많았는지 아니. 참 마음 따순 그 이모. 외할머니는 그 이모더러 늘 면목없다시지. 엄마도 면목없기는 마찬가지야. 자기 자식들은 시장 물건 옷 사다입히면서 늘 외할머니 용돈 챙기고 동생들 건사하는 것 보면서, 유비현덕이 한 말이 생각나더라.
"형제는 수족과 같아서 한 번 잃으면 다시는 ?을 수 없다"는 말. 이모는 지금도 그러잖니?
늘 엄마를 챙기는 거, 그래서 엄마가 더 씩씩한 거 같애. 사랑을 햇빛처럼 받고 사는데
용감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지 않으면 안되지.

손을 대지 않아도 빨래 다 되어 탈수되어 건조되어 나오는 빨래들을 보면서 외할머니는
가끔 쓸쓸해하셔. 너그들은 참 좋은 세상에 사는구나.
정말 좋은 세상에 산단다. 외할머니 시대처럼 동구밖으로 물을 길러 가는 것도 아니고.
얼음짱에 맨손으로 빨래를 하는 것도 아니고 , 아침마다 무쇠솥에 보리 얹어 부엌바닥에
앉아 불때는 것도 아니고... 쭈시 빗자루 깔고 앉아 불을 쬐면 얼굴은 벌겋게 탈 것 같고
등짝은 한데의 바람같은 추위도 없으니... 그래서 엄마가 그러잖니,,.
날마다 게을러 지는구나. 에고 부끄러워라. 부끄러워라 하는 소리 너도 들었지?
추울수록 조금 더 부지런해져야지. 결심하는 새벽이란다.
오늘은 영하 18도 밖에 안된단다. 네 아빠가 그러더라, 18도 밖에 안된다고.
새벽엔 그쯤 되겠지. 낮에는 좀 따뜻해질거고.
새벽을 달려 아침을 여는 사람들에게 건강이 함께 하기를 기도하자꾸나.
이렇게 따뜻하게 잘 사는거 감사하며 살자꾸나.

1/15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