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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나무와 작은 책 한 권


BY 들꽃편지 2001-10-14

가을이 촉촉히 젖어듭니다.

며칠전 이틀동안 내린비가 가을안에 들어왔었습니다.
우산을 접고 지하철 간이 책방에서
겉표지에 하얀 들국화가 살아있는 듯한 작은 책을 샀습니다.

가을이 젖어있었습니다.
들국화도 비에 젖고
나무들도 비에 젖어 가을을 흡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단풍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온 뒤에 가을이 하루가 다르게 물이 듭니다.
맨처음 가을 햇살은 노란빛이 였다가
지금은 붉은빛이 많이 섞여 있습니다.
얼마뒤엔 가을빛은 갈색이 될겁니다.
그러면 가을은 낙엽되어 바닥에 떨어질 것이고...

바쁜, 그러면서도 홀로되어 서 있을때가 많습니다.
나무도 홀로 서서는 가을을 맞이하듯
홀로 되어 서서는 같은 동질감을 느끼는 나무를 올려다 봅니다.
한쪽부터 단풍은 붉은 물이 들고 있었습니다.
오늘 그걸 알았습니다.
한꺼번에 불이 타듯 단풍이 드는것이 아니고
한쪽 가지부터 단풍은 차츰차츰이 물이 든다는 것을...
오늘 그걸 유심히 보았습니다.

비온 뒤에 처음으로 즐기는 산책이었습니다.

나무들이 달라보였습니다.
길가에 더 이상 자라지 않는 풀들이 마른잎으로 사그러져갑니다.


작은 책 을 머리맡에 두고 밤마다 몇페이지씩 읽다가 잠을 잡니다.
가을이 놀다간 논두렁 길을 아이 둘이 걸어가는 사진이 있습니다.
책을 펼칠 때마다 한번씩 더 보고 못읽은 책 장을 넘깁니다.

나무를 보면서 가을의 깊이를 재고 가을의 흐름을 읽습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무는 말이 없습니다.
나무가 아름다운 건 그래서 일겁니다.
불평이나 심통이나 욕심을 부리지않습니다.
키가 크면 자신의 키만큼 비를 맞고 햇볕을 먹습니다.
작은 나무는 자신의 몸만큼 받아들이며
하루를 살고 한 달을 살고 일년을 삽니다.
그리하여 아주 천천히 자신을 키워갑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바꿀 생각도 하지 않고 곧게 한 길로 걸어갑니다.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른 여자의 자식을 받아서 키운 딸아이가 사춘기를 험악하게 넘을 때
사춘기의 딸을 키우고 있는 엄마의 마음을 아는 까닭일겁니다.
시를 속으로 읽고 속으로 음미합니다.
그리곤 침대 위에 올려 놓고 잠을 자면
책은 하루내내 그 자리에 누워서는 꼼짝을 하지 않습니다.
청소를 하다가 책을 발견하면 아! 이 책이 여기 있었지하곤선
한번 들었다가 다시 제자리에 놓아두고 안방문을 닫습니다.

나무에게도 그런답니다.
항상 그 자리에 놓아 두고 계절이 흘러갑니다.
나무밑을 빠르게 지나다니면서 가끔 아주 가끔 한번씩 올려다 보고선
그 길을 닫곤 했습니다.
다음날 같을 길을 가면서도 무심할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 연두색 새잎이 나고 부드러운 꽃이 피고
무성한 초록잎이 가지를 덮고 나뭇잎에 가을햇살이 물들 때
유심히 나무를 올려다 봅니다.
눈이 하얗게 내린 어느 겨울엔 또 한참씩 나무를 올려다봅니다.
그리고 한 해가 감을 알아차리고 내 나이를 보게됩니다.

일주일이 넘도록 이 곳에 오지 못했습니다.
용서하소서...
일주일이 넘도록 우울했습니다.
이해하소서...
일주일이 넘도록 미워했습니다.
사랑하게하소서..

붉게 물들고 있는 나무들에게...
내 마음도 물들고 싶답니다.
홀로서있는 나무들에게...
같은 나와 서있고 싶지 않습니까?

몇달만에 책 한 권을 샀습니다.
내가 많이 삭막했습니다
내가 많이 게을렀습니다.
내가 많이 여유롭지 못했습니다.

한쪽한쪽 좋은 글들만 실어 놓은 작은 책에게...
나도 한 줄의 일기라도 쓰고 싶습니다.
나도 같이 좋은 글을 쓰고 싶답니다.

나뭇잎은 차츰차츰 한쪽부터 물이듭니다.
책도 한 장 한 장 읽다보면 마지막 장을 넘기게됩니다.
순리대로 살려고합니다.
거슬러 올라갔던 지난날이 상처로 남았지만
나무를 올려다 보며 천천히 살려고 합니다.
책을 보며 여유를 찾고 있습니다.
침대 위에서 작은 책 한 권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안방으로 들어가야겠습니다.